
이름부터 '막대기'인 빵
바게트는 프랑스어로 막대기나 지팡이를 뜻하는 말에서 왔어요. 파리 빵집 진열대에 꽂혀 있는 가늘고 긴 모양 그대로 이름이 붙은 셈이에요. 그런데 이 모양이 언제,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요.
나폴레옹 시대 병사들이 바지 주머니에 넣어 다니기 좋게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 장작처럼 지게에 실어 팔기 편한 빵이었다는 설도 있어요. 빵집 앞에서 꺼내기 좋은 이야깃거리지만, 가장 유력하게 꼽히는 건 훨씬 현실적인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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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 작업을 금지하자 빵이 길어졌다
18세기 제빵사들은 아침 식탁에 빵을 올리기 위해 밤새 오븐 앞을 지켰어요. 그러다 1920년 프랑스에서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빵 굽는 일을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면서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크게 줄었죠.

짧아진 시간 안에 빵을 구워 내는 해법이 반죽을 가늘고 길게 늘이는 것이었어요. 가늘고 길게 만들면 굽는 시간이 짧아지니까요. 지금 파리 어느 빵집에서든 이른 아침에 갓 구운 바게트를 만날 수 있는 배경에는 이 규제가 있는 셈이에요.
법으로 정해진 '전통 바게트'의 조건
파리 빵집마다 바게트가 엇비슷한 데에는 법도 한몫해요. 프랑스는 1993년 법령으로 '전통 프랑스 빵(pain de tradition française)'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조건을 정했어요. 이 이름을 붙이려면 밀가루·물·소금에 효모나 천연 발효종만으로 반죽해야 하고, 첨가물을 넣거나 반죽을 얼려서도 안 돼요.

빵집 진열대에서 'tradition'이라고 적힌 바게트가 바로 이 조건을 지킨 빵이에요. 일반 바게트도 대개 길이 55~65cm, 무게 250g 안팎으로 만들어져서 어느 동네 빵집에서 사도 모양이 비슷해요.
2022년 11월 30일에는 '바게트의 장인 기술과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올랐어요. 프랑스 문화부는 동네 전통 빵집이 꾸준히 줄어드는 상황을 등재 이유로 들었어요. 진열대에서 트라디시옹 바게트를 발견하면 일반 바게트와 함께 사서 맛을 비교해 보세요.
- '전통 프랑스 빵' 재료: 밀가루·물·소금, 효모 또는 천연 발효종
- 첨가물과 냉동 반죽은 쓸 수 없어요
- 일반 바게트의 흔한 크기: 길이 55~65cm, 무게 250g 안팎(법정 규격은 아니에요)
빵값이 하루 일당의 90%였던 시절
왜 굳이 법으로 규격을 정했을까요. 답은 프랑스 혁명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흉년이 이어지면서 주식인 빵값이 하루 일당의 90%까지 치솟았고, 여기에 소금세까지 붙었어요. 빵 재료에 소금이 들어가니 세금은 고스란히 빵값에 얹혔는데, 정작 귀족과 고위 관리는 이 세금을 면제받았죠.
빵은 신분을 드러내는 표식이기도 했어요. 평민은 껍질째 빻은 곡식으로 만든 딱딱한 검은 빵을, 귀족은 흰 밀가루로 만든 부드러운 빵에 버터를 듬뿍 얹어 먹었어요. 평민이 흰 빵을 먹으면 처벌받을 정도였고요. 이런 불평등이 쌓여 혁명으로 이어진 큰 흐름은 가이드북의 '파리, 중세 성장에서 프랑스 혁명과 오스만 개조까지' 챕터에서 더 넓게 다뤄요.
모두가 같은 빵을 먹어야 한다
혁명 뒤인 1793년, 국민공회는 모든 시민이 평등하다는 원칙에 따라 모두가 같은 빵을 먹어야 한다고 선언했어요. 프랑스 전역에서 한 가지 규격의 빵만 팔 수 있게 됐고, 이것이 오늘날 바게트 규격의 출발점이에요.
가격은 정부가 정하지 않아요. 1987년부터 빵값은 빵집이 자유롭게 정하는데, 빵집끼리 경쟁이 치열해서 바게트는 보통 1유로 안팎이에요. 물가가 만만치 않은 파리에서 바게트만큼은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이유예요. 파리 식비 전반이 궁금하다면 '파리 물가 : 숙소비와 하루 식비 예산 정리' 챕터를 함께 보세요.
빵 하나에 담긴 자유와 평등
정리하면, 바게트의 길쭉한 모양은 노동 시간 규제에서, 똑같은 크기와 재료는 혁명기의 평등 선언에서, 저렴한 가격은 그 정신을 지키려는 정책에서 나왔어요. 파리 빵집에서 바게트를 집어 들 때 이 세 가지를 떠올리면 흔한 빵이 조금 다르게 보일 거예요.
한국인이 밥심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면 프랑스인은 바게트로 시작한다고 할 만큼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는 빵이에요. 파리에 머무는 동안 한 번쯤은 동네 빵집 바게트를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고 그대로 맛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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