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작, 센강
파리의 역사는 기원전 250년경 켈트족의 일족인 파리시(Parisii) 부족이 센강 주변에 촌락을 건설하면서 부터 시작입니다. 그러다 로마 군대가 정복하게 되며 ‘늪지' 라는 뜻의 ‘루테스(Lutèce)', ‘루테시아(Lutecia)’ 혹은 ‘루테시아 파리시오룸(Lutecia Parisiorum)’ 라고 불리는 도시 다운 도시를 만들게 됩니다. 루테시아가 바로 파리의 근원이라고 볼 수 있죠. 루테시아는 시테섬에서 시작해 센강의 좌안을 중심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루테시아

시테섬? 요새섬!
이 후 로마 제국이 쇠퇴하게 되는데 막강한 군대가 없어지자 이방인들의 위협이 빈번해졌고 루테시아인들은 시테섬 주변에 돌을 쌓아 벽을 만들며 요새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파리는 오랜 기간 동안 시테섬을 중심으로 한 요새 도시로 남아있게 되었죠.

파리 이름을 갖추다
그럼 파리라는 도시 이름은 언제부터 생겼을까요?
3세기초 ‘루테시아’ 라는 이름은 ‘시티바스 파리시오룸(Civitas Parisiorum)’ 으로 바뀌고 그 후 3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드디어 ‘파리’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루테시아 역사이야기를 했는데 오늘날에도 파리 시내에서 과거 루테시아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 주는 중요한 역사적 증거입니다. 몇 가지 소개해드릴게요.
- 루테시아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
: 6번지 근처 바닥에 루테시아 성벽의 흔적이 표시
2. 노트르담 대성당 광장 지하 고고학 박물관(Crypte archéologique du parvis Notre-Dame): 4세기 초 야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된 성벽의 일부를 볼 수 있음
3. 시테 섬(Île de la Cité): 4세기 초에 건설된 루테시아의 방어벽 흔적이 남아 있음
4. 생 자크 거리(Rue Saint-Jacques): 고대 로마 시대의 주요 남북 도로(cardo maximus)였던 이 거리는 루테시아 시대의 도시 구조를 보여줌
5. 클뤼니 박물관(Musée de Cluny): 로마 시대 공중목욕탕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당시 도시 구조의 일부를 볼 수 있음
6. 루테스 원형극장(Arènes de Lutèce): 직접적인 성벽은 아니지만 1세기경 건설된 이 원형극장은 루테시아 시대의 중요한 유적

이 후 프랑크인의 왕인 클로비스 1세가 도시를 점령하고 수도를 리옹에서 파리로 천도합니다. 이 때부터 프랑스 왕가의 시초인 메로빙거 왕조가 시작됩니다.
파리의 중세 시대

자 이제 중세시대로 넘어갑니다.
파리의 중세 시대는 클로비스 1세가 나타난 5세기부터 라고 볼 수 있어요. 중세 초기에는 파리는 작고 제대로 정리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센강 위의 다리도 2개 밖에 없었으며 거리도 이름이 없었고 주택가 한가운데 묘지가 들어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중세 시대 동안 파리는 많이 변화했습니다. 인구 상승, 경제 호황,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 상업의 요지 그리고 예술과 문화, 교육의 도시로 탈바꿈한거죠. 좀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중세 초기 종교적인 건물들을 많이 건설한 클로비스 1세의 메로빙거 왕조, 수도를 야헨(현재 독일)로 천도해 바이킹에 의해 파리를 공격 당했던 카롤링 왕조 그리고 프랑스 찐 역사의 시작인 카페 왕조까지 여러 왕조들을 겪어오며 파리는 격동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잠시 수도를 야헨에 내어주었지만 카페 왕조에 의해 파리는 다시 중요성을 얻게 되었고 12세기 부터 파리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