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세에서 인상주의만 보고 나오면 아쉬운 이유
오르세 미술관 하면 인상주의 화가들을 먼저 떠올리기 쉬워요. 그런데 이 미술관에는 인상주의가 등장하기 전, 그림의 주제를 통째로 바꿔 놓은 흐름이 함께 걸려 있어요. 바로 사실주의예요. 인상주의 방으로 곧장 올라가기 전에 사실주의 그림을 먼저 보면, 뒤에 이어지는 그림들이 왜 그렇게 새로웠는지가 훨씬 또렷하게 읽혀요.
인상주의 명작을 고르는 법은 가이드북의 '오르세 미술관, 인상주의 명작 감상 가이드' 챕터에 정리돼 있어요. 이 글은 그 앞 세대인 사실주의, 그리고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의 그림을 어떻게 보면 좋을지에 집중해요.
'사실주의'라는 이름이 만드는 오해
사실주의, 즉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사진처럼 아주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을 상상하기 쉬워요. 그런데 이 이름은 묘사의 정밀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에요. 화가가 자기 눈으로 관찰한 현실을 과장이나 미화 없이 그대로 화폭에 옮긴다는 태도를 뜻해요.
19세기 당시 대부분의 화가는 신화 속 인물이나 성경의 한 장면처럼 옛날이야기를 그렸어요. 사실주의 화가들은 그 대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생활상을 담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주제도 농부처럼 주변에서 흔히 보는 사람, 눈앞의 자연과 사물 같은 평범한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오르세에서 사실주의 그림 앞에 섰을 때 '이 장면은 특별할 게 없는데?'라는 느낌이 든다면, 그게 바로 화가가 의도한 지점이에요.
신고전주의도 낭만주의도 아닌 제3의 길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에 반발하면서 나타났어요. 그렇다면 낭만주의와 대척점에 있던 신고전주의와 닮았을 법도 한데, 실제로는 둘 중 어느 쪽과도 비슷하지 않아요. 신고전주의가 추구한 이상적인 아름다움도, 낭만주의의 과장된 감정도 모두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의 삶을 그리려 했기 때문이에요. 세 양식을 한 줄씩 정리해 두면 그림 앞에서 구분이 쉬워져요.
루브르에서 신화와 역사를 다룬 대작들을 본 다음 날 오르세에 오면 이 차이가 눈에 확 들어와요. 루브르 쪽 관람 요령은 '루브르 박물관 가이드: 작품과 관람 팁' 챕터를 참고하세요.
- 신고전주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신화와 역사 속 장면을 즐겨 그렸어요
- 낭만주의: 감정을 과장해서 극적으로 표현했어요
- 사실주의: 두 가지를 모두 거부하고, 관찰한 동시대의 평범한 삶을 그대로 그렸어요
이름을 스스로 지은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
미술 양식의 이름은 대개 다른 사람이 붙여요. 후대 사람들이 공통된 특징을 보고 이름 짓기도 하고, 바르비종파나 인상주의처럼 비평가가 부른 말이 그대로 굳어지기도 하죠. 사실주의는 그 점에서 특이해요. 대표 화가인 귀스타브 쿠르베가 스스로를 사실주의 화가라고 불렀고, 그래서 '사실주의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돌을 깨는 노동자를 그린 「돌 깨는 사람들」이 쿠르베의 대표작으로 자주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영웅도 신도 아닌, 길에서 마주칠 법한 사람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세웠기 때문이에요. 쿠르베의 그림을 볼 때는 '누가 그려졌는가'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도움이 돼요.
오르세에서 쿠르베 그림 앞에 섰을 때 볼 것
쿠르베의 그림은 파격적인 것과 평범해 보이는 것이 섞여 있어요. 어느 쪽이든 '화가 자신이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와 '몸을 얼마나 이상화하지 않았는지'를 기준으로 보면 사실주의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이해돼요. 아래 세 점은 그 기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그림이에요.
이 세 점을 본 뒤에 밀레나 드가의 그림으로 넘어가면, 같은 미술관 안에서 그림의 주제가 어떻게 옮겨 가는지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요. 사실주의를 출발점으로 잡는 관람 순서가 오르세를 처음 찾는 분께 특히 잘 맞는 이유예요.
- 「부상당한 남자」: 피를 흘리며 누운 남자를 그린 그림이에요. 초상화는 남에게 의뢰받아 그리는 그림인데, 자신을 다친 모습으로 그려 달라고 주문할 사람은 없겠죠. 그래서 이 그림은 쿠르베 자신의 자화상이에요.
- 「화가의 아틀리에」: 화면 한가운데에서 그림을 그리는 남자가 쿠르베 본인이에요. 주위 인물들의 몸이 완벽한 비율이 아니라 실제 사람처럼 그려진 점을 눈여겨보세요.
- 「세상의 기원」: 쿠르베의 누드화 가운데서도 손꼽히게 파격적인 작품이에요. 아무 정보 없이 마주치면 당황하기 쉬우니, 동행이 있다면 미리 알아 두는 편이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