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장 큰 대도시 중 하나로 성장
파리가 어떻게 비약적으로 발전했냐면, 우리가 여행할 파리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들이 이때 생깁니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이 때 건설이 시작되었구요. 루브르 박물관의 시초가 되는 요새도, 생샤펠 성당 도 전부 이때 건설되었습니다.
건축 뿐 아니라 교육적으로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 예로 12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파리 대학교가 등장합니다. 이렇게 13세기 경,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큰 대도시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파리 중세시대의 흑역사(백년전쟁과 흑사병)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좋지 못한 사건들도 많았죠. 대표적으로 흑사병과 백년전쟁입니다.
14세기에는 흑사병이 창궐해 초반에만 인구의 4분의 1을 잃었고 또 프랑스 역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백년전쟁에 고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백년전쟁’ 은 많이 들어보셨을텐데요.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 116년간의 전쟁입니다. 왜 프랑스와 영국이 전쟁을 하게 됐냐면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분쟁 때문이에요. 프랑스의 샤를 4세가 사망하게 되는데 자식이 없었어요. 근데 갑자기 영국 왕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 왕위를 이어받겠다며 주장한거죠.
아니 영국 왕이 왜 여기서 나와? 그도 그만의 논리가 있습니다. 에드워드 3세가 사실 샤를 4세의 조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프랑스 당연히 거절 합니다.
그런데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영토였던 기엔지방의 공작이면서 퐁티외의 백작이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기엔 지역의 영토 분쟁이 심각해 졌죠.

100년간의 전쟁의 결론은, 프랑스가 이겼습니다. 프랑스가 이 지역을 재 정복하면서 길었던 백년 전쟁은 종결 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유럽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중세 봉건 제도가 끝나고, 근대 국민 국가의 형성을 했다고 보는데요. 왕권은 강화되었고 국민 의식이 형성되었습니다.
절대왕정
그 후로 쭉 프랑스의 전성시대가 펼쳐집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 마리앙투아네트, 루이 14세, 태양의 왕 전부 들어보셨죠?
마리앙투아네트가 했다는 망언들.. ‘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프랑스 혁명
얼마나 당시 민중들이 힘들었냐면, 참다 못한 민중들. 프랑스 혁명을 일으킵니다. 더 이상은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봉기를 든거죠. 이걸 프랑스 혁명 이라고 해요. 그 중 에서도 파리는 프랑스 혁명의 중심지 였습니다.
결국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를 콩코드광장의 단두대에서 처형합니다. 이 후로도 프랑스 혁명은 10년간 지속되다가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혁명이 끝나게 됩니다.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에요. 절대 왕정이 가고 근대적 공화정을 수립했기 때문이에요. 이 말이 무슨 뜻이냐면 ‘현대 민주 주의의 기초를 마련했다’ 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나폴레옹 3세의 파리 도시화 계획
아까 프랑스혁명이 나폴레옹의 쿠테타로 끝났다고 말씀드렸죠? 나폴레옹이 오랜기간 집권합니다. 그러면서 나폴레옹 3세가 파리의 대규모 도시 개조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1853년부터 1870년까지 넓은 대로 건설, 공원과 광장 조성, 하수도 시스템 개선, 건물 및 기념물 건설 등을 하며 도시의 인프라를 탄탄히 구축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파리의 모습의 대부분을 갖췄다고 볼 수 있어요.
또한 이 도시계획으로 인해 12구 였던 파리는 20구를 가진 현재의 행정구역을 가지게 되었으며 파리 건축의 특징인 오스만 양식이 바로 이 때 나타나게 됩니다. 이는 프로젝트를 총괄한 조르주 외젠 오스만의 이름을 따서 짓게 되었죠. 현재 파리 건물의 60프로가 오스만 양식을 따르고 있어 이는 파리의 상징적인 건축 스타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