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르세에서 밀레 앞을 그냥 지나치게 되는 이유
오르세 미술관에 가는 사람 대부분은 모네와 르누아르, 고흐를 보러 가요. 그래서 인상주의 전시실로 곧장 향하고, 그 앞에 걸린 어두운 색조의 풍경화와 농촌 그림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 유명하다는 건 알아도, 이 그림이 왜 여기 있고 인상주의와 어떤 관계인지까지는 모른 채 지나치기 쉬워요.
이 그림들을 그린 화가들을 묶어 '바르비종파'라고 불러요. 인상주의가 왜 밝은 야외 풍경을 그리게 됐는지 이해하려면, 바로 앞 세대인 이들의 이야기를 알아두는 게 도움이 돼요. 오르세 전체 관람 순서는 가이드북의 '오르세 미술관, 인상주의 명작 감상 가이드' 챕터에 정리돼 있으니, 이 글에서는 바르비종파 한 갈래만 짚어볼게요.
풍경화가 그림 취급을 못 받던 시절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풍경화는 순위가 낮은 장르였어요. 풍경만 그려서는 인정받기 어려웠고, 신화나 성경 속 인물이 등장하거나 고대 로마·그리스 유적이 배경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작품으로 대접받았어요. 자연은 어디까지나 인물을 돋보이게 하는 무대였던 셈이에요.
이런 분위기에서 테오도르 루소라는 화가가 사람도 신화도 없이 자연 자체가 주인공인 풍경화를 들고 나왔어요. 당시 화가의 등용문이던 살롱전 심사위원들은 이 그림을 받아주지 않았고, 루소는 1837년부터 13년 동안 계속 낙선해 '낙선의 대가'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까지 얻었어요.
파리 근교 숲으로 들어간 화가들
루소는 살롱전 취향에 맞추는 대신 자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쪽을 택했어요. 파리에서 50km쯤 떨어진 퐁텐블로 숲은 당시로서는 드물게 야생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 있던 곳이었고, 루소는 그 숲 가장자리의 작은 마을 바르비종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의 대표작 「아프르몽의 참나무」도 이 숲을 그린 그림이에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화가들이 하나둘 바르비종으로 모여들었고, 1830년대 후반부터 1870년대까지 이곳에 머물며 활동한 풍경화가들을 통틀어 바르비종파라고 불러요. 화가들이 묵던 여인숙 오베르주 간느는 2025년 8월 기준으로 바르비종파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파리에서 근교로 나가는 이동 수단은 가이드북의 '파리 트램·기차·시외버스·자전거 이용법' 챕터를 참고하세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사이 어디쯤
바르비종파는 미술사에서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의 중간쯤에 놓여요. 규범과 이상을 중시하던 신고전주의에 반발해 나온 낭만주의는 색채와 분위기, 숭고한 아름다움을 추구했고 중세나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즐겨 그렸어요. 그 뒤로 환상보다 현실을 그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사실주의가 등장해요.
바르비종파는 자연을 순수하게 동경한다는 점에서는 낭만주의에, 눈앞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 그린다는 점에서는 사실주의에 가까워요. 그래서 책에 따라 사실주의 화가로 분류되기도 해요. 인상주의가 아예 야외로 나가 빛의 변화를 그리기 시작한 건 이 흐름의 다음 장이라고 보면 이해가 쉬워요.
그림 앞에서 이렇게 보면 달라 보이는 것들
바르비종파 화가들은 모두 자연을 그렸지만 관심사는 제각각이었어요. 오르세에서 이 그림들을 볼 때 아래 기준으로 나눠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던 풍경화가 조금씩 구분되기 시작해요.
- 화면 안에 사람이 있는지 먼저 살펴보세요. 자연 자체에 집중한 그림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관심을 둔 그림은 출발점이 달라요.
-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은 후자 쪽이에요. 풍경보다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의 모습이 화면의 중심에 있어요.
- 역동적인 장면이나 이국적인 풍경, 동물이 함께 있는 풍경도 바르비종파 안에서 갈라진 갈래예요.
- 백여 명에 이르는 바르비종파 화가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이는 극소수예요. '바르비종의 일곱 별'로 불리는 화가들의 이름표를 눈여겨보세요.
- 어두운 색조가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이 그림들이 숲에 머물며 관찰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세요. 인상주의의 밝은 화면이 왜 새로웠는지 비교가 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