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당 앞에서 놓치기 쉬운 질문 하나
산 마르코 광장에 서면 대부분의 시선은 황금빛 정면과 비둘기, 종탑으로 향해요. 그런데 이 성당이 왜 이 자리에, 이런 규모로 세워졌는지 묻는 여행자는 드물어요. 답은 건축이 아니라 9세기 베네치아가 처한 정치 상황에 있어요.

산 마르코 성당은 복음서 저자인 성 마가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에요. 유골이 베네치아에 도착한 사연, 그리고 그 사연이 기록된 시점을 알고 나면 모자이크가 단순한 장식으로만 보이지 않게 돼요. 성당과 광장의 관람 포인트는 가이드북의 '베네치아 산 마르코 성당과 광장, 왜 꼭 가야 할까요?' 챕터에 정리돼 있으니, 여기서는 그 뒤에 숨은 이야기만 따라가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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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베네치아, 두 제국 사이의 작은 섬
유골이 오기 직전의 베네치아는 동쪽의 비잔틴 제국과 서쪽의 카롤링거 제국 사이에 끼어 있는 힘없는 도시국가였어요. 특히 카롤링거 쪽에서 보낸 수도사들이 베네치아 서쪽 국경 바로 앞에 수도원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위기감이 커졌어요. 겉으로는 종교 시설이지만 실제로는 세력 확장의 신호였던 셈이에요.
지도자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는데, 결론은 군대를 모으거나 무기를 사들이는 것이 아니었어요. 성 마가의 유골을 확보하자는 것이었어요. 당시 유럽에서는 어느 성인의 무덤을 가졌느냐가 도시의 격을 결정했고, 로마가 최고의 도시로 여겨진 이유도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의 무덤이 있기 때문이었거든요. 복음서를 쓴 일급 성인을 모신다는 것은 곧 강대국과 대등한 독립 도시라는 선언이었어요.
돼지고기 아래 숨겨 온 유골, 그리고 100년 뒤의 기록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이래요. 알렉산드리아의 한 교회에 있던 성 마가의 유골이 이슬람 군대의 위협에 놓이자, 마침 그곳에 있던 베네치아 상인이 유골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겠다고 나섰고, 검문을 피하려고 이슬람교도가 꺼리는 돼지고기로 유골을 덮어 배에 실었다는 거예요. 유골이 리알토 항구에 도착하자 시민들은 환호했고, 이를 봉헌하기 위해 성당이 세워졌어요.
흥미로운 점은 이 극적인 이야기가 처음 등장하는 문헌이 유골 도착 뒤 100여 년이 지나서야 쓰였다는 사실이에요. 사건 직후가 아니라, 베네치아가 독립국으로서의 권위를 정당화할 이야기가 절실해진 시점에 기록이 완성된 거예요. 같은 시기에 조용히 잊힌 인물도 있어요. 성 마가 이전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던 성 테오도르예요. 비잔틴 지역의 성인을 내려놓은 것은 곧 우리는 더 이상 비잔틴의 속국이 아니다라는 메시지였어요.
중세 유럽에 성유골이 그토록 많았던 이유
베네치아의 선택은 당시 유럽 전체에 퍼져 있던 흐름의 일부였어요. 샤를마뉴는 넓은 영토를 정복한 뒤 기독교 제단과 토착 신앙의 제단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고, 모든 기독교 제단에는 반드시 성유골이 있어야 한다는 포고령을 내렸어요. 교회 수는 급증하는데 성인의 유골은 한정돼 있으니, 수요에 맞춘 공급자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어요.
- 역사학자 패트릭 기어리는 『거룩한 도둑질』에서 성유골 대부분이 오래된 유골이 대량으로 묻힌 카타콤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봤어요.
- 12세기부터 프랑스에서만 세례 요한의 머리가 세 곳에 있었고, 성 야고보의 유해는 다섯 번 넘게 '발견'됐어요.
- 루터는 산티아고의 성유골이 당나귀나 개의 뼈일지 모른다고 비꼬았고, 칼뱅은 전 세계의 참십자가 조각을 모으면 배 한 척을 만들 수 있다고 썼어요.
- 순례객과 헌금이 걸린 문제였기에 몬세라트의 검은 성모상, 콩크의 성 푸아 황금상, 몽생미셸의 대천사 미카엘처럼 변방에 자리한 성당일수록 성물 확보에 더 열심이었어요.
이 맥락을 알고 성당을 보면 달라지는 것
성당 정면 모자이크에는 성 마가의 유골이 베네치아로 옮겨지는 장면이 담겨 있어요. 이 그림은 신앙의 기록인 동시에 일급 성인을 모신 독립 도시라는 정치 선언이기도 해요. 베네치아 곳곳에서 마주치는 날개 달린 사자가 도시의 상징이 된 것도 성 마가를 상징하는 동물이기 때문이에요.

실제 관람 전에 복장 규정이나 입장 동선 같은 실용 정보가 궁금하다면 '산마르코 대성당, 입구에서 돌아서지 않으려면 알아둘 것들' 챕터를 먼저 읽어 두면 좋아요. 이야기를 알고 들어가면 같은 공간이 전혀 다르게 읽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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