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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산 마르코 성당 외관이 잘 보이는 장소에 서셨나요? 처음에는 정면 모자이크를 먼저 설명드릴 테니까 잘 보이는 쪽으로 움직이면서 들어주셔도 좋습니다. 보시다시피 성당 외관이 굉장히 화려한 만큼 볼거리도, 설명드릴 것도 많은 곳인데요. 대략 10분 가까이 설명을 드릴 예정이기 때문에 편하게 이야기 따라 움직이면서 보시면 좋겠어요. 성당 정면을 장식하는 다섯 개의 문, 그 위 모자이크 중에서 가장 오른쪽의 모자이크부터 보겠습니다.
가장 오른쪽 끝에 있는 모자이크 속에는 이슬람 터번을 쓴 사람들이 코를 막고, 손사래를 치면서 무언가를 꺼려하는 모습이 보이는 모자이크 장면이 있는데요. 불쾌해하는 이슬람인들 앞에는 바구니 뚜껑을 열어 보이는 두 남자가 서있습니다. 사실 저 바구니 안에는 오늘 이 성당의 주인공이자 이 투어의 주인공인 산 마르코의 유해가 들어있었습니다. 산 마르코는 신약성서 4대 복음서 중 하나인 마가복음의 저자 성 마가를 의미하죠? 오늘은 ‘산 마르코’로 통일해서 말씀을 지금부터 드리겠습니다. 산 마르코는 약 68년 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독교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는데요.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유해를 모신 성당이 점점 알렉산드리아 내의 이슬람 세력이 강해지면서 훼손당할 위기에 처해지자, 이를 알게 된 두 명의 베네치아 상인들이 산 마르코의 유해를 위험에서 구출하기로 마음을 먹은 겁니다. 그런데 유해를 당당히 들고나갈 수 없으니 어찌해야 되나 고민을 하다가 꾀를 낸 거죠. 이슬람인들이 불결하다 여기는 돼지 즉, 돼지고기로 성인의 유해를 덮어서 세관을 속입니다. 모자이크는 바로 그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오른쪽에서 두 번째 장면에는 828년 무사히 베네치아에 도착한 산 마르코의 유해와 이를 맞이하는 베네치아 성직자와 사람들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고요.
가운데에는 주 출입구이기 때문에 잠시 이야기와 관계없이, 주 출입구를 장식하는 ‘최후의 심판’의 모자이크가 19세기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확실히 가장 마지막에 제작되어서 그런지 묘사가 굉장히 화려하죠?
이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네 번째 모자이크는 산 마르코의 유해를 맞이하는 베네치아 총독 ‘도제’와 귀족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요. 산 마르코가 어느 위치에서 움직이지 않자 그 자리에 성당을 짓도록 하는데 바로 그곳이 잠시 후 성당 안에서 소개해드릴 성인의 무덤 위치이고, 기원 후 832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한 성당이 바로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성당입니다.
그런데 9세기 처음 지어졌던 성당은 이후에 화재로 한 번 불탔고요. 1063년부터 다시 지어진 성당이 현재 성당의 기초가 되었는데 첫 성당의 모습은 바로 왼쪽 모자이크에서 즉, 마지막 모자이크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요. 방금 전까지 소개해드렸던 내용의 모자이크들은 전부 17세기에 다시 만들어진 모자이크였지만, 지금 소개해드리는 다섯 번째 모자이크는 13세기에 처음 만들어졌던 모자이크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모자이크 가까이 가셔서, 또는 자료사진을 확대해서 보시면 현재의 모습과 비슷한 듯 디테일이 다른 걸 찾을 수가 있는데요. 한가운데 주출입구 즉, 지금의 최후의 심판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자이크를 비롯한 장식들이 조금 더 다른 걸 알 수가 있고요.
그 와중에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남아있는 중요한 유물 한 가지가 보이는데, 바로 성당 테라스를 장식하고 있는 가운데 네 마리의 말, ‘콰드리가’는 옛 모자이크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이 콰드리가를 비롯해서 산 마르코를 장식하는 작품들과 독특한 건축양식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소개드려볼까요?
자, 우리 눈앞에 있는 산 마르코 성당과 자료 사진을 한 번 비교해 보실까요? 자료 사진은 현재 터키 이스탄불에 남아있는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아 소피아’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옛날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티움에서 만들어졌는데요. 원래는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기며 짓기 시작했던 걸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완공을 했죠. 산마르코 성당의 돔이 좀 더 동그랗게 봉긋 솟아오르긴 했지만, 사실 지금 산 마르코 성당의 돔은 13세기에 추가한 것으로 그 내부에는 아야 소피아의 돔과 거의 흡사한 형태로 만들어졌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베네치아는 이 도시 국가가 건설되는 순간부터 비잔틴 즉, 그러니까 동로마 제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동방무역을 하며 점점 힘을 키워나갔는데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역시 동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성당은 828년 산 마르코의 유해를 모셔다 성당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어느 유럽 성당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지어지고 장식되었는데요.
특히, 이 성당이 가장 화려하게 장식되고 지금 모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계기가 1204년에 제4차 십자군 원정이었습니다. 총 8번의 십자군 원정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평가를 받고 있는 제4차 십자군 원정은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을 공격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는데요. 십자군 원정군은 원래 자신들의 목적지인 이집트까지 가는 배편을 베네치아에 의뢰했는데 계획 없이 무모한 자신감을 가지고 너무 많은 선박을 의뢰했다가 베네치아에게 빚을 지고 말았던 거죠. 베네치아 역시 십자군 원정이 성공하면 점령지의 절반을 식민지로 확보할 수 있다는 계약을 하고 투자를 했던 건데, 결국 제4차 십자군 원정은 베네치아의 채무를 갚아야 하는 원정군이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예루살렘이 아닌 동로마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게 된 어이없는 결과를 낳았던 겁니다.
콘스탄티노플은 화염에 휩싸였고 약 4일 동안 어마어마한 약탈이 이어졌기 때문에 동로마의 예술품은 지금의 이스탄불이 아닌 오히려 베네치아에 더 많이 남아있다고 할 정도인데요. 그 대표적인 예술품 중 하나가 바로 현재 성당 정면을 장식하고 있는 네 마리의 말 청동상 ‘콰드리가’입니다. 일단 먼저 말씀드릴 건 성당 바깥에 나와있는 건 모작이에요 여러분. 진품은 테라스 안쪽 산 마르코 성당 박물관에서 따로 관람할 수 있는데요. 진품이 의외로 정말 멋져서 혹시 ‘진품 꼭 보고 싶다!’ 하시는 분은 이따 잊지 마시고 박물관을 별도 입장하셔야 합니다. 실제로 저 청동마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요. 어떤 학자들은 ‘로마 네로 전차 경기장에 있던 걸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할 때 가져간 것이다.’ 하는 사람도 있고요. 또 그리스 히오스 섬에 있던 걸 테오도시우스 2세가 또 콘스탄티노플 경기장 히포드럼으로 옮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사실 어찌 됐든 동로마에 있던 걸 베네치아로 가지고 왔다는 말인데요.
무려 1254년부터 이 자리를 지켰던 이 네 마리의 말, 콰드리가는 1797년 나폴레옹이 또 감탄을 하면서 파리로 가져가 루브르 박물관 옆 카루젤 개선문 위를 장식하기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1815년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오긴 했지만, 로마 그리고 동로마 그리고 베네치아와 파리까지 문화의 흐름을 따라 여행을 했던 상징과도 같은 예술 작품이 바로 이 콰드리가입니다.
하지만 이뿐이겠습니까? 성당 구석구석 남아있는 이 흔적들이 있는데요. 성당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쭉 따라 두칼레 궁전까지 거의 다 와갈 때 성당 모퉁이 벽에 이집트산 반암 붉은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서로 끌어안고 있는 네 명의 황제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3세기경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제안한 사두정치를 통해 4명의 황제가 로마를 통치했던 때를 상징하는 조각이에요. 이 또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가 있던 거를 베네치아가 약탈해서 이곳을 장식하고 있고요. 그 와중에 가장 오른쪽의 조각은 원래 발이 깨졌었는데, 1980년에 나머지 발 조각 부분이 이스탄불에서 뒤늦게 발견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스탄불에서 이 부분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 보시는 것처럼 남겨져 있어요.
이 생뚱맞아 보이는 조각뿐 아니라 자세히 보면 사실 산 마르코 성당의 기둥은 똑같이 생긴 게 거의 없어요. 다양한 색의 다양한 굵기, 모양, 장식의 기둥들인데요. 콘스탄티노플 함락 후, 약 500여 개가 넘는 다양한 건축물의 기둥을 가지고 왔다는데 이걸 재단에서 성당 앞에 끼워놓은 흔적을 보면 새삼 이 성당이 다시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앞에서 설명드린 내용 때문에 어떤 분은 약탈품 전시장으로 보일 수도 있고, 또 반대로 ‘지중해를 장악했던 유럽의 가장 강력한 해상 국가였던 베네치아의 힘이 느껴지는 건축물이다.’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하는 걸로 하고요. 덕분에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보기 드문 비잔틴 건축을 만나고 있네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정말 이 성당이 독특한 점은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점령한 이후인 1807년이 되어서야 바티칸의 영향을 받는 주교자 성당으로 승격되었다는 점이에요. 그전까지는 전략적으로 총독의 개인 성당 위치를 유지했거든요. 그전까지는 베네치아의 주교자 성당은 물고기 모양인 베네치아에서도 꼬리 쪽에 해당하는 ‘산 피에트로 디 카스텔로’라는 성당이었는데요. 이 말인즉슨, ‘교황이여, 베네치아에 간섭할 생각하지 말라!’라는 뜻이었습니다. 베네치아인들은 기독교인들이긴 했지만, 그들이 거래하는 사람은 유럽 기독교인뿐 아니라 저 바다 너머 종교와 문화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교황의 종교적인 지도력은 명목상으로 인정은 하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베네치아 자체적으로 행사하겠다, 종교와 실리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고자 했던 그 선택이 이렇게 건축물의 위치에도 영향을 미친 셈입니다. 덕분에 유럽 사회에서 드물게 베네치아는 중세를 휩쓸었던 마녀사냥과 종교 재판이 전혀 없었고요. 이후,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사이의 다툼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종교와 별도로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꽃피웠던 곳이 바로 베네치아였고요. 교황청의 금서로 지정한 ‘루터’나 ‘에라스무스’, ‘마키아벨리’ 책이 유통되는 곳이 바로 베네치아였답니다.
기독교인이 되어, 종교와 문화적으로 자유로웠던 베네치아의 옛 모습을 상상해 보면서 이제 성당 안에 있는 천지창조 모자이크를 보러 갈까요? 지도를 첨부하였으니 확인해 주세요.
00:00 산 마르코 성당의 모자이크 설명 시작
00:36 첫 번째 모자이크
01:55 두 번째 모자이크
02:08 세 번째 모자이크
02:26 네 번째 모자이크
02:55 다섯 번째 모자이크
03:27 모자이크 설명 마무리
03:45 산 마르코 성당의 작품 및 건축양식 설명 시작
04:09 산 마르코 성당와 아야 소피아(하기아 소피아) 바교
05:20 제4차 십자군 원정
06:20 네 마리의 말 청동상, 콰드리가
07:28 카루젤 개선문 위를 장식했던 콰드리가
07:58 네 명의 황제 조각상
08:49 산 마르코 성당의 기둥
09:16 작품 및 건축양식 설명 마무리
09:41 산 마르코 성당의 독특한 특징
11:24 산 마르코 대성당 앞 ⭢ 천지창조 모자이크 지도
여행자로 유럽에 날아왔다 역사와 예술을 이야기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 현지 가이드로 활동한 것이 어느새 9년!
웅장한 건축물만 봐도 감탄을 자아내는 이탈리아지만, 역사 속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해드릴때마다 눈이 동그래지는 여행자를 만나는게 너무 즐거워요.
알면 알수록 더욱 놀랍고 흥미로운 역사와 예술 이야기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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