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여행 가이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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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여행 가이드북 · 전체 46개 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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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피렌체의 르네상스와 이탈리아 통일운동

2-3. 르네상스

앞서 말씀드렸던 신흥 상인 귀족 가문과 도시 시민들의 사회적 참여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흑사병의 발발은 도시 자체에서는 위기였지만 오히려 사람의 존재가 더더욱 귀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매일 접하는 환경에서 오히려 죽음 그리고 또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이런 피렌체의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변화는 제일 먼저 '문학'으로 표출이 되는데, 예를 들면 단테의 <신곡>,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같은 책들이 피렌체에서 출간이 됩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동시에 그들이 묻히는 장소인 성당에 부유해진 신흥 부유층을 비롯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문을, 또 개인을 위한 그림, '예술 작품'으로 다른 가문과의 차별화를 원하기도 하죠.

이런 환경에서 특히나 피렌체가 더욱더 이런 변화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건 문화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던'메디치 가문'이 바로 이거 피렌체에 있었기 때문인데 여기에 관련해서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다음 챕터에서 메디치 가문에 대해서 별도로 다루는 걸로 하겠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르네상스 시대의 피렌체

다만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시기, 피렌체는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도시 국가이자 이러한 부를 상인들, 그리고 시민들이 기반이 돼서 다른 어떤 곳보다 새로운 문화적인 바람이 불고 있었던 곳 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천재들의 도시' 라고 하는 별명이 생길 만큼 다양한 예술가들이 많이 활동할 수 있는 배경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도시 전체가 화려하게 꽃 피던 르네상스 시기 그리고 등장한 강력한 지도자 메디치 가문의 지휘 아래 점차 번성을 하면서15세기와 16세기 피렌체는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뭐든 영원한 건 사실 없나 봐요. 평범한 상인 가문에서 시작했던 이 메디치 가문이 교황을 세 명이나 배출하고 프랑스 왕비를 두 명이나 배출하는 등 유럽의 왕가들과 혼인을 하면서 유럽 최고의 명문 가문까지 올라갔던 이 메디치 가문도 결국 17세기 중반 후사가 없이 가문이 막을 내리게 되는데결국 1737년 피렌체의 지배권은 지금은 오스트리아라고 부르는,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로 넘어가게 됩니다.

2-4. 이탈리아통일운동 (리소르지멘토)

19세기 후반 리사나멘토(재정비) 중 인 레푸블리카 광장
19세기 후반 리사나멘토(재정비) 중 인 레푸블리카 광장

그렇게 18세기 초중반 오스트리아의 속령 중 하나가 되었던 피렌체지만, 약 한 세기가 지나서 19세기 중반부터 '리소르지멘토', 즉 부흥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일어나면서 1865년부터 1870년까지 5년 동안 피렌체가 '수도'였던 적이 있어요. 물론 이후에는 여러분이 지금 아시는 것처럼 이탈리아의 수도는 로마로 바뀌긴 했지만요. 그런데 약 5년간 수도였던 영향으로 현재까지 이탈리아의 표준어는 현재 수도 로마어가 아닌 '피렌체어'가 표준어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어? 피렌체어? 이게 다른가?' 생각하실 수 있는데, 5세기경에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19세기까지 1400년 가까이 다 다른 도시 국가로서 존재했던 이탈리아다 보니까 지역색이 강한 만큼 원래 각 지역끼리 토착어로 말을 하면 서로 소통이 어려울 만큼 정말 언어가 다 다릅니다. 이제는 통일된 지 150여 년 정도 됐다 보니까 젊은이들은 간극이 좀 덜하지만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통일 이탈리아어의 표준어는 피렌체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피렌체는 이탈리아 안에서도 '문화적 자부심'이 특히 강하다고 느껴졌던 곳이였어요. 로마에 살면서도 물론 그런 부분이 있긴 했지만 로마는 유적이 약간 시민들의 삶과 그래도 조금은 거리가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워낙 특히 로마 유적들이 더 오래된 유적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어요.

그리고 베네치아는 이 역시 제 개인적인 인상이긴 하지만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별도로, 동시에 섬이고 또 관광객이 너무 많다 보니까 현지인들이 종종 버겁다고 해야 될까요? 오버투어리즘의 아무래도 단점이겠죠. 그런 부분 때문인지 종종 여행자들에게 베네치아인들이 배타적이다라고 하는 인상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요.

그런데 피렌체는 이탈리아 대도시들 중에서도 도시와 현지인과 관광객의 심리적인 거리감이 제일 멀지 않게, 가깝게 느껴졌던 곳 이었습니다. ‘그만큼 현지인들도 이 도시의 문화적 혜택을 평상시에 많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피렌체의 가장 기본적이지만 역사적인 배경들을 알다 보면, 여행을 하면서 이런 역사적인 이야기들이 피렌체 여행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설명을 드릴 게 너무 많아서 추리고 추렸지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메디치 가문'에 대해서 다음 챕터에서 별도로 조금만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드려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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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6개 챕터 전체피렌체의 다른 챕터까지 모두 읽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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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챕터

  • 메디치 가문 후손 : 위대한 자 로렌초부터 코시모 1세, 마지막 상속녀까지
  • 피렌체 숙소 위치 추천 : 기차역·두오모 근처·아르노 강변 체크포인트
  •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피렌체 패스 구입 가이드
  • 피렌체 필수명소, 두오모 외에 어디를 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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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이탈리아 표준어가 로마어가 아닌 피렌체어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약 5년간 수도였던 영향으로 현재까지 이탈리아의 표준어는 현재 수도 로마어가 아닌 '피렌체어'가 표준어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Q피렌체가 이탈리아의 수도였던 시기가 있나요?

1865년부터 1870년까지 5년 동안 피렌체가 '수도'였던 적이 있어요.

Q메디치 가문은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나요?

이 메디치 가문도 결국 17세기 중반 후사가 없이 가문이 막을 내리게 되는데결국 1737년 피렌체의 지배권은 지금은 오스트리아라고 부르는,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로 넘어가게 됩니다.

Q흑사병은 피렌체 르네상스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흑사병의 발발은 도시 자체에서는 위기였지만 오히려 사람의 존재가 더더욱 귀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