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코사모 일 베키오

그렇다면 이 메디치 가문은 상인 가문, 은행가로서 ‘어떻게 피렌체를 지배하게 되고, 르네상스라는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피렌체에서 꽃피우게 했을까?’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리고 싶은 인물은 '코시모 일 베키오'입니다. 피렌체 얘기하다 보면 '베키오' 되게 많이 나오거든요. 코시모 일 베키오, 베키오 궁전, 베키오 다리. '오래된' 영어로 '올드'에 해당하는 분인데, 나중에 코시모 1세라고 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서 같은 이름이지만 코시모 일 베키오, 영어로 하면 코시모 엘더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사진14]에는 코시모 일 베키오 대신 '코시모' 뒤에 '파테르 파트리아에' 라고 적혀 있습니다. 라틴어로 ‘국가의 아버지’, 여기에선'피렌체의 아버지' 라는 의미에서 '국부 코시모' 라고 기록이 되어 있어요.
코시모 일 베키오, 원래 국부 코시모라는 인물은 굉장히 능력 있는 사업가, 은행가였었습니다. 이미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키고 있었던 메디치 은행을 유럽 최고의 은행으로 확장시켰던 인물이 바로 국부 코시모라는 인물이었어요. 능력 있는 사업가, 은행가인 동시에 기본적으로 젊을 때부터 ' 인문학적인 학구열'이 굉장히 높았다고 해요. 그래서 젊을 때보다 수많은 희귀 장서들을 수집하는 건 물론 나중에는 학자들이 이걸 연구하고 교류할 수 있는 모임을 주최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피렌체 전체의 교회와 수도원을 비롯해서 중요한 장소들을 장식, 보수하는 데 수많은 예술가들을 불러서 이 작업들을 맡기게 됩니다.

이때 특히 코시모 일 베키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예술가 중 하나가 조각가 '도나텔로'입니다. 초기 르네상스 조각에 있어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도나텔로죠. 피렌체 출신의 미켈란젤로 역시 어린 시절부터 많이 보았을 도나텔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에서 자랐으니깐요. 제가 개인적으로 도나텔로를 좋아해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 국부 코시모의 정말 안목이 굉장히 높았다 라고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또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 도나텔로는 메디치 가문의 성당인 산 로렌초 성당 지하에 코시모, 이 국부 코시모와 함께 묻혀 있을 정도로 아낌을 받았어요.
뿐만 아니라 미켈로초,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같은 건축가, 또 필리포 리피같은 재능 있는 화가와 수많은 예술가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후원하면서 초기 르네상스 예술의 토양을 다졌던 인물입니다. 그 흔적들 역시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세례당이라든가, 또 메디치 가문의 저택이었던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두오모의 쿠폴라를 비롯해서 곳곳 정말 피렌체의 모든 곳에서 그 흔적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정치적으로 메디치 가문이 사실상 피렌체를 지배하게 되었던 시작이 바로 이 사람 코시모 일 베키오, 국부 코시모 때부터라고 보실 수 있어요.피렌체 내외의 중요한 결정을 사실상 30년간 다 직접 돌보고 결정을 내렸지만 절대 주인공 자리에는 서지 않았답니다. 대신 자신의 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면서'숨은 피렌체의 지배자' 역할 했던 인물입니다.
국부 코시모의 아버지 조반니 데 메디치는 유언으로 아들 코시모에게 '부자와 강한 자에게 거스르지 말되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에게 항상 자비로워야 한다'라고 말을 했었고, 아들 코시모는 이걸 평생을 모토로 삼고 철저히 이를 지켰다고 해요. 그래서 아무리 부유했어도 항상 시내를 다닐 때에는 노새를 타고 다녔고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주인공이어도 그 공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고 철저하게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었던 인물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인기가 정말 많을 수밖에 없기는 해요. 피렌체를 위해 이 부유한 인물이 항상 어딘가를 자비를 들여서 보수하고 장식하고 또 예술가들과 학자들이 항상 모여서 토론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게다가 겸손한 모습으로 노새를 타고 다니는 피렌체 최고의 거부라니. 우리나라 재벌로는 상상이 안 되니 일론 머스크나 아마존 대표가 이런다고 상상을 해 보세요.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대신 달구지 타고 다니는 걸 상상했더니 '내가 실수를 했구나' 라는 생각도 드는데 그렇게 상상을 해보면 '정말 겸손하구나, 대단한 인물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표면적으로는 지배자 역할을 했던 적이 없지만 피렌체 공화국 시민의 지위에서 존경받는 어른 역할을 했던 코시모 일 베키오가 죽었을 때 피렌체인들은 오히려 그의 이름 앞에 피렌체 국가의 아버지라는 의미에서 '파테르 파트리아에', 즉 국부라는 칭호를 주었어요. 유언으로 ‘소박하게 묻히고 싶다’ 는 말을 남겼지만 오히려 더 화려하게 국장으로 장례를 치를 만큼 정말 피렌체인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물론 무덤 역시 메디치 가문의 성당인 산 로렌츠 성당 앞에 아름답게 장식되어서 묻혀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