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 ‘나는 그 도시가 어떤 배경에 세워지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시는 분들 꽤 많으신데 오늘 간략하지만 알면 여행에 도움되는 피렌체의 기본적인 역사 소개를 드려볼까 합니다.
2-1. 고대 로마

‘피렌체’ 라는 도시의 시작을 말할 때 보통 '고대 로마' 부터 이야기합니다. 물론 고대 로마 이전에는 피렌체를 비롯해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 자리를 잡았던 '에트루리아' 라고 하는 도시 국가의 역사 흔적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지명부터가 고대 로마 시대 때의 이름에서 유래해 지금까지 피렌체 라는 이름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플로렌스, 이탈리아어로 피렌체, 라틴어로 플로렌티아 라고 불리우는 이 도시는 가장 먼저 도시가 지어졌던 기원전 80년, 아르노 강가에 병사들을 위한, 즉군인들을 위한 정착지로 도시를 세우게 되면서 '흐름'을 의미하는 라틴어 '플루엔티아'라고 도시를 명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원전 80년, 정착을 시도했다가 결국 결과적으로 정착을 성공한 건 기원전 5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많이 들어본 이름이죠?) 덕분입니다. 즉, 영어로 줄리우스 시저라는 인물이 다시 한번 이 도시에 퇴역한 군인들을 위한 도시 건설을 진행하면서 본격적인 고대 로마 시대의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여행을 하면 고대 로마 도시의 흔적은 사실상 눈에 보이도록 남아있는 게 많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사진3]을 보시면 위쪽으로 두오모 성당이 보이실 거예요. 성당 주변으로는 빨간색 테두리 선이 보일 텐데 그 테두리가 [사진4]와 같은 네모난 '성벽' 형태였습니다.

실제 피렌체 여행을 하다보면 미켈란젤로 언덕을 가는 이런 성벽을 보실 일이 많은데 이 성벽들이 바로 고대 로마 때 건설되었고 피렌체 시가지의 기준, 일부 남아있는 것들을 계속 보수해서 사용을 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그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리고 다시 [사진3]을 보시면 이번에는 도시를 정가운데로 가로지르는 초록색 선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현재 피렌체의 '레푸블리카 광장'이라는 곳입니다.
[사진6]은 현재의 레푸블리카 광장 사진 입니다. 사진 한쪽에 보시면 기둥이 하나 서 있을 거예요. 거기가 바로 로마 시대 때 이 도시의 한 가운데를 표시했던 지점, 그 지점에 기둥을 세워 놓은 겁니다.
또 그 외에도 건물 지하에 일부 고대 로마 때 극장 유적이나 건축물 유적이 발굴되어 그대로 보존 되고 있는 모습을 관람할 수 있는 곳도 있으니까 항상 눈 크게 뜨고 여행하세요. 피렌체를 여행하다 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고대 로마에 이렇게 시작된 피렌체의 중세는 어땠을까?’ 잠시 시간을 한번 훅 뛰어넘어 가보도록 할게요.

2-2. 중세시대

'중세 피렌체'는 11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로마가 멸망하기 전에 종교적으로는 4세기에 이미 주교자가 있는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가 되기도 했는데 사실 무엇보다 '상업의 중심지'로 이야기들 드릴 게 많은 곳이 바로 피렌체입니다.
피렌체는 11세기 당대 최고의 모직물 생산지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좋은 모직물을 생산한다는 건 결국 유럽 귀족들을 자신의 고객으로 만든다는 거죠. 그런데 이걸 누가 만들겠어요? 사람이 만듭니다. 자연스럽게 수공예가 발전을 하면서 피렌체는 수공예뿐 아니라 서비스업, 금융업을 비롯해서 산업 전반이 발전을 하게 돼요.
우리 어릴 때 공부하다 보면 세계사에서 유럽 중세 파트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봉건 제도' 이런 단어 기억나실 거예요. 그런데 이 봉건제도는 토지를 바탕으로 하는 계약관계는 바로 농노와 영주 사이에 있다는 것이 기본이지만 피렌체에서는 농업이 아닌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죠. 또 마찬가지로 산업을 통해서 부유층, 즉 이번에는 기존의 토착 귀족이 아닌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부유층이 생겨나기 시작을 합니다.

중세 말엽의 피렌체의 정세는 바로 1152년 피렌체 공화국이 수립되고 나서 이런 산업의 발전 속에서 기존에 존재했던 '토착 귀족', 그리고 산업을 통해 부유해진 새로운 '신흥 부유층', 그리고 '시민들'과 '도시 노동자들'이 이렇게 함께 대립하기 되는 것이 당시의 정세였다고 하는데 그런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시뇨리아 광장의 '베키오 궁전'입니다.신흥 세력이 결과적으로 승리를 하면서 토착 귀족의 한 저택이 있던 자리를 밀고 그 상징처럼 피렌체 공화국 정부를 위한 건물을 지었던 게 바로 피렌체 청사, 베키오 궁전이거든요.
하지만 상업적으로 발전을 하는 동시에 위기도 왔었죠. 바로 1348년 무려 피렌체 인구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흑사병'이 시작되었던 건데요.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로 인해 또 한편으로는 피렌체인들은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전환점을 맞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