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조각이 왜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을까요
피에타(Pietà)는 '슬픔', '비탄'이라는 뜻이에요. 성모 마리아가 숨을 거둔 아들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장면을 가리키는 말이고, 기독교 미술에서 오래도록 반복돼 온 주제예요. 수많은 조각가가 같은 장면을 만들었지만, 지금 '피에타'라고 하면 대부분 이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떠올려요.

이 작품을 만들 당시 미켈란젤로는 스물네 살의 피렌체 출신 청년이었고, 로마에서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어요. 주문한 사람은 프랑스 출신 추기경이었는데, 주문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조각은 갈 곳을 잃었고 결국 성당 안에 남게 됐어요. 예정에 없던 자리에 놓인 셈인데, 그 덕분에 지금까지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있어요.
첫 번째 시선: 손이 닿은 자리부터
가까이 다가가면 먼저 봐야 할 곳은 얼굴이 아니라 성모의 손이에요. 예수의 몸통을 받치고 있는 손가락이 겨드랑이 살을 살짝 누르고 있어서, 그 부분이 눌린 채로 변형돼 있어요. 대리석이 아니라 실제 피부처럼 보이는 지점이라,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나머지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요.
이런 표현이 가능했던 건 미켈란젤로가 인체 구조를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시신을 직접 해부해 가며 공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예요. 눈으로 따라가 볼 만한 부분을 정리하면 이래요.
- 예수의 다리: 십자가에 못 박혔던 다리의 근육선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요
- 가슴과 옆구리: 갈비뼈와 핏줄이 얇은 피부 아래로 비쳐요
- 성모의 옷자락: 주름 하나하나가 천의 무게와 질감을 따라 흘러요
- 겨드랑이: 손가락이 누른 자리가 살처럼 눌려 있어요
두 번째 시선: 표정은 보는 높이에 따라 달라져요
디테일을 봤다면 이번엔 한 걸음 물러나 두 사람의 얼굴을 비교해 보세요.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인데, 성모의 얼굴에는 격한 감정이 없어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입을 다문 채 아주 차분해요. 슬픔을 밖으로 터뜨리는 대신 기도로 삭이며 부활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읽히고, 그래서 힘없이 늘어진 예수의 몸과 대비가 더 커져요.
예수의 얼굴은 시점을 바꿔 가며 보는 게 좋아요.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고통이 남아 있는 힘든 표정인데, 위쪽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로 보면 평화롭게 잠든 얼굴로 바뀌어요. 같은 조각인데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른 감정이 읽히는 거라, 한자리에서만 보고 지나치기엔 아까운 부분이에요.
세 번째 시선: 성모의 가슴을 가로지르는 띠
마지막으로 볼 곳은 성모의 가슴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띠예요. 여기에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새겨져 있어요. 작품이 공개된 뒤 사람들이 '누가 만들었느냐'고 궁금해했는데, 정작 미켈란젤로 대신 밀라노 출신의 다른 조각가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했다고 해요. 이를 들은 미켈란젤로는 끌과 정을 들고 성당에 몰래 들어가 띠 틈새에 자기 이름을 새겼어요.
새긴 문장은 'MICHEL ANGELUS BONAROTUS FLORENT FACIBAT', 즉 '피렌체 출신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예요. 동명이인과 헷갈리지 않도록 굳이 출신지까지 적었어요. 그런데 성당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는 신은 이 모든 걸 만들고도 어디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이후로는 어떤 작품에도 서명하지 않았다고 전해져요. 그래서 피에타는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면서, 동시에 그의 작품 가운데 서명이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이 됐어요.
바티칸 일정 안에서 피에타에 시간을 남기려면
피에타는 대성당 안에 있으니 박물관 관람과는 별도로 시간을 잡아 두는 게 좋아요. 대성당을 먼저 갈지, 박물관을 먼저 갈지 고민이라면 가이드북의 '바티칸 당일 동선과 준비물' 챕터에 줄이 짧아지는 순서가 정리돼 있고, 박물관 쪽 예매는 '바티칸 박물관 온라인 예매' 챕터를 참고하면 돼요.

조각 앞에서는 순서를 정해 두면 짧은 시간에도 놓치는 게 없어요. 멀리서 전체 구도를 한 번 보고, 가까이 가서 손과 다리의 디테일을 찾고, 자리를 옮겨 가며 예수의 얼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한 다음, 마지막으로 띠 위의 글자를 찾는 식이에요. 사진은 그다음에 찍어도 늦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