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맛없다는 소문, 근거가 있는 이야기예요
영국 음식에 대한 낮은 평가는 여행자 사이의 농담만은 아니에요. 오래전부터 세계 곳곳의 유명 인사들이 기록으로 남겼고, 영국인 스스로도 잘 알아서 농담 소재로 삼을 정도예요. 이웃 프랑스가 요리로 워낙 유명해 비교당하는 면도 있지만, 전통 요리의 폭이 좁다는 점은 영국인들도 대체로 인정하는 부분이에요.
다만 이 평가는 서민이 매일 먹는 일상 음식에 해당하는 이야기예요.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과 베이커리, 외국에서 들어온 음식은 사정이 달라요. 이 차이를 알고 가면 런던에서 무엇을 고를지 훨씬 선명해져요.
넓은 평야가 만든 단순한 조리법
전통 식문화는 그 땅에서 무엇이 나느냐로 정해져요. 영국은 국토가 크지 않지만 평야가 넓어 곡물 재배와 목축에 유리했고, 덕분에 빵과 고기가 늘 풍부했어요. 고기 품질이 나쁘지 않으니 손질을 최소화하고 소금과 후추만 뿌려 통째로 굽는 로스트 비프 같은 요리가 자리 잡았죠. 생선과 감자를 튀기기만 하는 피시 앤 칩스도 같은 맥락이에요.

문제는 이런 방식이 좋은 재료를 매일 구할 수 있을 때만 통한다는 점이에요. 재료가 부실하면 그 맛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덮어줄 향신료도 보완할 조리 과정도 발달하지 않았어요. 고기가 풍부하니 채소를 찾아 나설 이유도 적었고요. 영국인들이 소스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도 밋밋한 맛을 보완하려는 습관에서 나온 거예요.
먹는 즐거움을 금기시한 시대
보통 식문화는 상류층에서 시작해 대중으로 퍼져요. 그런데 16~17세기 영국에서 세력을 키운 청교도는 금욕주의를 바탕으로 쾌락을 부정했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조차 경계했어요. 식사는 즐기는 일이 아니라 살기 위해 양분을 넣는 행위가 됐죠.
이 기조는 산업혁명기에 더 굳어졌어요. 돈도 시간도 부족한 노동자들은 싸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했고, 그 습관이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이어졌어요. 같은 시기 프랑스가 식사를 오래 즐기는 슬로우 푸드 문화를 키운 것과 정반대 방향이었죠. 런던에 파인다이닝은 넘치는데 평범한 동네 식당은 아쉽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 여기에 있어요. 상류층의 식탁과 서민의 식탁 사이에 중간이 비어 있는 셈이에요.
그래서 런던의 집밥은 인도 카레예요
전통 요리가 빈약하다 보니 영국은 외국 음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어요. 흥미로운 건 현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 먹는다는 점이에요.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 중국까지 과거 교류가 있던 지역의 음식이 들어왔고, 그중 가장 깊이 뿌리내린 게 인도 카레예요. 지금은 영국 서민의 일상적인 집밥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죠.
런던에서 이탈리아 레스토랑, 중식당, 일식집, 베트남 쌀국수집은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정작 영국 요리 전문점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저녁 메뉴를 고를 때 영국 전통 요리를 고집하기보다 인도 요리를 한 끼 넣어 보는 게 오히려 현지식에 가까운 선택이에요.
그래도 자신 있는 것, 빵과 디저트와 고급 식당
영국이 확실히 강한 분야가 있어요. 곡물이 잘 자라는 땅에 차를 즐기는 티타임 문화가 더해지면서 베이커리와 디저트가 발달했거든요. 식빵, 머핀, 스콘, 파이, 푸딩, 파운드케이크, 샌드위치까지 모두 영국이 원조예요. 애프터눈 티가 런던 여행의 대표 경험으로 꼽히는 건 우연이 아니에요.

고급 식당 쪽도 탄탄해요. 런던은 세계 금융 중심지라 지불 능력이 있는 손님이 꾸준히 오가고, 그만큼 고가 레스토랑과 뛰어난 셰프가 배출되는 구조예요. 다만 이런 곳에서 영국 전통 요리를 내는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외국 요리를 다뤄요. 구체적인 가게와 메뉴는 가이드북의 '런던 맛집 BEST 6 : 피시앤칩스부터 애프터눈 티까지' 챕터에서 이어서 보시면 돼요.
- 로스트 비프: 일요일에 가족이 모여 먹던 특식. 교회 가기 전 오븐에 넣어 두고 다녀오는 방식이 전통이에요.
- 피시 앤 칩스: 재료 구하기 쉽고 조리가 단순해 서민 음식으로 정착했고, 옛 식민지 지역까지 퍼졌어요.
- 장어 젤리: 삶은 장어를 젤리처럼 굳힌 음식. 노동자들이 파이에 넣어 먹던 간편식으로, 지금은 영국에서도 사라져 가는 중이에요.
- 인도 카레: 원형 그대로 정착한 대표 외래 음식. 런던에서 가장 현지적인 한 끼예요.
알고 먹으면 달라지는 런던의 한 끼
정리하면 영국의 일상 음식이 단조로운 건 풍족한 자연환경, 즐거움을 억누른 종교적 기조, 효율만 남긴 산업화가 겹친 결과예요. 이 사정을 알면 런던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건너뛸지 감이 잡혀요. 아침은 베이커리, 점심은 피시 앤 칩스나 샌드위치, 저녁은 인도 카레나 세계 각국 요리, 그리고 하루쯤 애프터눈 티. 동네별 식당 분위기는 '런던 구역별 여행 : 웨스트엔드·노팅힐·쇼디치' 챕터와 함께 보면 동선 짜기가 수월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