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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i 지역 소개
먼저 사크레퀘르라는 이름부터 알아보겠습니다. 각각 성스러운 심장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한글로 하면 성심성당이 됩니다. 여기서 심장은 예수의 성스러운 심장을 뜻하구요. 보통 성심성당들의 경우 성모마리아의 심장을 뜻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사크래케리가 지어졌을 무렵에 성당들은 많은 경우 성모마리아 이름을 붙이거나 성모마리아에게 봉헌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류에 대한 성스러운 예수의 사랑을 뜻하는 의미에서 그의 성스러운 심장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로마 가톨릭 순례교성당 사크레퀘르의 공식 명칭은 바실리크 뒤 사카야 입니다. 여느 유럽 성당들처럼 카테드랄이 아니라 바실리크인 이유는 카테드랄이라는 명칭은 교구성당에게 주어지고 바실리카는 교황의 특권으로 몇몇 성당에게 특정하여 주어지는 이름이기 때문인데요. 카테드라라는 단어의 바실리카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왕을 대신해서 판결을 내리던 재판소를 칭하던 명칭으로 폼페이 유적지에 가보면 바실리카 흔적이 남아있기도 할 정도로 기원전부터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로마의 성 베드로바실리카도 있고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바실리카도 있구요. 이렇게 성인들의 무덤 위에 지은 여러 예배당들이 바실리카라는 이름을 갖는 경우가 꽤 있는데요. 교회법에 따라서 메이저와 마이너바실리카로 나뉘기도 하는데 세계적으로 딱 4개의 바실리카만이 메이저 바실리카로 구분이 되고 모두 로마에 있습니다. 이 메이저 바실리카들은 다른 어떤 예배당보다도 우위를 점하는 상급예배당으로 취급을 받구요. 카테드랄들은 상당수가 중세시대에 지어졌는데요. 이 대성당들을 이끌던 주교가 있고 이 주교가 특정 교구를 이끌었던 경우 카테드랄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바실리카인 사크레케르는 따라서 교구성당이 아니라 예수의 성심에 경배하는 순례지이자 독립된 성소로써 성당 같은 것을 성스럽게 명명하는 것을 축성이라고 하는데 사크레케르는 1876년 건축을 시작해서 1910년 완공되었고 1919년 축성되었습니다. 파리에서 가장 높은 지리적 위치인 높이 130미터의 몽마르트 언덕 뷰츠크 목마르트의 꼭대기에 자리하는 사크레퀘르는 에펠탑 다음으로, 파리 시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입니다. 성당 자체가 높기보다는 언덕이 높아서 여기까지 합해서 고도가 두 번째로, 높은 경우인데요. 돔과 종탑의 높이는 91미터로 사크레케르는 해발고도 213미터에 위치합니다. 제가 첫 투어 라이브 가이드로 소개해 드린 에펠탑이 300미터가 넘는 높이로 1등 그다음이 사크레퀘르 그리고 그 뒤를 몽파르나스 타워가 210미터로 근소하게 뒤따르고 있어요. 사크리케르 앞에는 수많은 계단과 전망대 쉼터 만남의 광장의 역할을 하는 언덕이 완만한 경사에 펼쳐져 있는데, 이곳에 오르시면 남쪽으로 약 30킬로미터 전방에 이르는 멋진 전경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파리의 예쁜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서 이곳을 찾으시는 분들도 많아요. 안베르 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소피 지역에서 피가리나 아베세스 역을 거쳐오는 경우 아베세스 역 바로 앞에 있는 짙은 푸른색의 사랑의 벽 앞에서 기념사진도 꼭 하나 남겨보세요. 이 벽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사랑한다는 표현을 큰 벽 하나를 메우도록 써놨는데요. 한글로 쓰인 글귀도 서너 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사크레큘의 건립을 처음 기획한 것은 1870년 보불 전쟁이라고도 부르는 프로이센과 프랑스 전쟁 이후였습니다.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은 프로이센이 주도해서 통일 독일을 이룩하려는 비스마르크와 이를 저지하려는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충돌해서 발발한 전쟁인데요. 결정적인 계기는 에스파냐 국왕 선출 문제에 대한 양국 간의 분쟁이었고 1870년 프랑스가 선전포고를 했지만, 프로이센의 군사력이 우월해서 프랑스가 항복하며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 전쟁의 패배를 프랑스는 국가의 영적이고 도덕적인 타락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구요. 속죄를 목적으로 성당 건립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알렉상드 레정틀리라는 사람과 화가 위베르 로홀 드 플레리라는 사람이 전쟁이 터지자마자 프랑스가 무사히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성당 건축 기금을 모으겠다는 약조를 했는데요. 전쟁에는 피했지만, 침략을 당하거나 식민지 지배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둘은 약속을 지키고자 했고 파리의 대교주였던 추기경 조세프 이폴리트 기베르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가톨릭 교도들의 모금과 함께 성당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때 건축기금을 마련했던 파리쟁들의 이름이 성당 벽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어요. 전쟁을 무사히 마치기도 한 거 외에도 전쟁 패배와 1871년 빠리 시민들과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켜 혁명적 자치정부를 수립한 파리 코민 등 계속되는 사회적 혼란을 벗어나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아까 바실리카와 카테드렐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여러 바실리카들이 성인의 무덤 자리에 세워졌다는 얘기를 했었는데요. 사크레케르는 생 드니 성인의 순교지입니다. 순교자들의 언덕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몽마르뜨 언덕에 건축하기로 그래서 결정이 되었구요. 210년에 파리의 첫 주교인 생 드니를 위한 예배당이 이 자리에 지어졌었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기독교 성소라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파리의 수호성인 생드니는 로마인들에게 참수를 당해서 순교했는데 그가 죽은 후 생드니는 잘린 본인의 목을 들고 거리를 걸었고 입에서는 설교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다 숨이 끝내 끊어져 그가 스러진 자리가 현재 파리 18구에 위치한 작은 예배당인 생드니 들라샤펠 교회라고 해요. 이곳은 또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드루이드들을 섬기던 사원이 있던 자리였기도 했습니다. 드루이드는 켈트족의 대현자를 칭하는 편인데요. 마력을 사용해서 신을 소환하고 기후를 통제한다고 알려졌던 현자들입니다. 고대 로마인들이 이 지역의 고대 신들인 마르스와 머큐리를 위한 사원을 지어서 경배했다고도 해요. 그래서 여러모로 이 의미 깊은 자리에 성당 건축이 확정되었고 1874년 77명이 참여한 설계도안 경쟁에서 폴 아바디의 로마니스크와 비잔틴 양식 설계안이 채택되었습니다. 아바디는 사크레퀘르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 중세 예배당 복원작업에 참여한 바 있었는데요. 민간 건물들을 감사하는 것으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곧 교구 전문 건물들을 담당하게 되었고 1845년 노틀담 대성당 복원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얼마 전 노틀담 대성당 화재가 있어서 복원이 시급하고 또 피해가 상당해서 작업 과정이 무척 중요한데 아바디가 무척 그리워지네요. 아바디는 이러한 자신만의 경험을 살려서 사크레페르를 설계할 때 여러 성당 모양의 특징들을 따온 절충적인 건축물로 설계했습니다. 아바디가 작업에 참여했던 남프랑스 페리그에 위치한 성 프론 대성당을 비롯하여 콘스탄티노플의 성 소피아 성당과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 등의 건축물들이 레퍼런스로 사용되었어요. 공사는 1875년부터 1914년까지 이루어졌는데 안타깝게도 아바디가 1884년 사망하게 되어서 그의 뒤를 5명의 건축가가 이어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각 건축가들이 차례로 사크레퀘르의 아름다움에 일조하였는데요. 오늘의 도메 장샤를라즈네 앙리 피에르 마릴 올린 루시엠마뉴 장르이 윌로가 있습니다. 이 마지막으로, 바통을 넘겨받았던 장르이 윌로가 현재 사크레클의 가장 아름다운 특징 중 하나인 명상을 위한 종탑과 연못을 지었습니다. 여러 건축가들의 손을 거치기도 했고 또 중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사크르케르는 전쟁을 마치고 수년이 지난 1919년 최공적으로 완공이 되었습니다. 사크라케르는 민족주의를 테마로 해서 설계되었는데요. 건축물 입구에 기둥을 받쳐 세우는 현관 지분인 포르티코와 3개의 아치 양 옆에는 잔다르크와 루이 9세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14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의 긴 세월 동안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놓고 다툰 프랑스와 영국의 100년 전쟁의 영웅인 잔다르크는 친숙한 이름이죠. 주요 전쟁들이 프랑스 땅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국토를 매우 피폐하게 만든 이 전쟁은 대천사 미카엘 성 카테리나 성 마르가리타로부터의 계시를 받아 전쟁터로 나간 국민 영웅을 탄생시켰고 그녀의 청동상이 정의에 입각한 평화 그리고 백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도덕적이고 검소했던 성군 루이 9세 김하삼과 함께 사크레케르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사크랩퀘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눈부시게 흰 배관입니다. 큰 건물을 어떻게 저렇게 깨끗하게 관리할까 하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샤토란동 이라는 특별한 석회암을 가지고 와서 지었기 때문입니다. 개선분과 알렉상드르 삼세 다리를 만들 때 사용되었던 돌인데 아바디가 특별히 요청해서 사용했거든요. 이 석회암은 석회암과 대리석 백악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으로 이뤄진 흰색 광물질 방해석을 특히 많이 포함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습도가 올라가면 자체적으로 돌에서 방해석이 나와서 건물이 더욱 하얗게 보이는 효과가 있어요. 그래서 비가 내리는 날에 유난히 더욱 아름다워 보이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흐린 날에는 방문객들이 조금 덜 찾는 경향도 있어서 저는 흐린날 아침 일찍 사크라케르를 찾아서 환상적이고 신비롭게 은은하게 빛나는 성당을 감상하다 오기도 하는데요. 주변에 훌륭한 빵집들이 많아서 아침 6시 여느 성당 구경을 일찌감치 하고 불랑제리에 들러 아침으로 먹을 빵을 사오는 날들이 그립습니다. 파리에서 빵집을 고르는 방법을 1 알려드릴 텐데요. 빵집 유리창의 월계수 무늬와 함께 페미아 듀지엠 토하지 앤 프리드 바게트라는 문구가 써있는 곳을 찾으시면 좋습니다. 해마다 프랑스 최고의 제빵점을 찾아서 1~3등을 수여하는데 이 상을 받은 곳들은 자랑스럽게 가게 외관에 써 붙여놓고 있어서 지나가다 이런 문구가 보이는 빵집이라면 들어가 보시는 걸 추천해요. 갓 구운 바게트는 정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맛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여행 작가이자 작사가 맹지나입니다.
저는 마음이 동하면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바다가 있는 여행을 좋아해요.
눈부신 태양과 나른한 오후가 있는 무더운 여름, 오래 머무는 여행, 솔직한 기록과 진한 공감도 좋아합니다.
즉흥적으로 떠나는 것과 오래 품은 낯선 길에 비로소 서는 것 모두, 여행이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여행할때 가장 행복한 저와 함께 즐거운 한걸음 한걸음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고려대학교 국제학 / 언론학 학사
저서 : 에세이 <이탈리아 카페 여행>, <크리스마스 인 유럽>, <그리스 블루스>, <그 여름의 포지타노>, <알프스, 행복해지기 위해>, 가이드북 인조이 시리즈의 크로아티아, 치앙마이, 스위스 편, 홀리데이 시리즈의 바르셀로나, 프라하, 포르투갈, 남프랑스 편, 지금 시리즈의 런던, 정보서 <유럽 여행 백과사전>, <여자를 위한 여행 영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