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스페인 오피셜 가이드 안혜영입니다. 저는 고용진입니다. 오늘은 저희와 함께 한때 세계 최고의 부를 누렸던 무적 함대의 나라 스페인 왕국의 심장과도 같은 왕궁을 둘러보실 텐데요. 마드리 왕궁은 방의 개수만 3000개가 넘는 단 1건물 최대의 왕궁입니다. 네부는 초반에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고 본격적으로 투어가 시작되면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아마도 이 화려하고 멋진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것보다 좀 더 여유 있게 오리지널을 감상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각 투어 코스마다 안내 표지판이 있는데, 그곳에 오디오 가이드 번호가 써 있으니까. 번호에 맞춰서 설명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또한 서로의 즐겁고 유익한 투어를 위해 눈으로만 감상해 주시고 기본 에티켓 정도는 지켜주신다면 어디서든 인정받는 세계적인 한국인이 되실 겁니다.

방문하실 왕궁이 위치한 장소는 지형적으로 전략적인 요충지였습니다. 그래서 구 세기 이 장소에 무슬림들의 요세가 세워져요 남쪽에 있는 중요한 도시 똘레돌을 방어하기 위해서죠 알카 싸르가 만들어집니다. 그로부터 200년 후 이 장소는 카톨릭의 왕들에게 수복됩니다. 알폰소 6세 하지만 마드리드는 그다지 중요한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다가 이 장소를 지나갈 때 묶는 레지던스로 삼게 되죠. 실제 왕가의 중요한 궁전으로 자리 잡은 건 1561년도 마드리드를 중앙집권적인 수도로 삼았던 펠리페 이 세대 답니다. 그때 이 장소를 아주 전형적인 합스브르그 왕가의 건물로 변모시킵니다.
경건하고 좁고 높고 검소한 긴 방들이 연결된 장소로 만들죠 자 1700년대에 부르봉 왕가가 들어서고 초대왕이었던 펠리페 5세는 본인이 태어나고 자랐던 파리 근교에 위치한 베르사유 궁전에 비교해 봤을 때 복잡하고 음침한 이곳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1734년도의 장소가 화재로 전소되고 펠리페 옷에는 알터니가 빠지는 것처럼 여겼어요. 당시 후기 바로 건축의 대가 이태리 빌리보 유바라를 초대합니다. 마드리드에 도착해서 새로운 궁전 설계에 착수하고 이듬해에 의문사합니다. 그래서 일을 이어받은 것이 자 마우디스타스 아게띠라고 하는 마찬가지로 이태리 건축한대요 이 스승의 설계를 최대한 존중하지만 국왕의 주문대로 약간 면적을 줄이고 높이를 올립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필리핀 5세는요 부르봉 왕과 초대왕이지만 미친 왕이다. 라는 별명이 있어요. 유전병이었어요. 그러면서 이 정신병을 앓으면서 피와 죽음에 대한 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입니다. 이 스페인의 왕이 되려고 근 13년을 전쟁하는데 그러던 당시 피냄새를 맡으며 환호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고 미신을 믿고 덕분에 여러 가지 이유로 1년 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궁전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1746년도에 죽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두 명의 부인을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부인은 마리아 루이사디 사보야고 1714년도 펠리페 우세가 스페인의 왕이 되면서 죽었어요. 그래서 결혼 생활 14년 동안 조강지처 역할을 제대로 하죠. 그리고 해에 두 번째 부 이사벨 빠르네시오.
이트리 빠르마라는 도시에서부터 왔습니다. 강한 성격에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남편 자식 모든 것을 이용하는 그런 평가를 받은 왕비 중의 하나였습니다. 자 이 펠리페 5세의 아들 첫번째 부인 사이에서 낳은 아들 중 페르난도 6세가 30세 살의 왕이 됩니다. 그리고 이때도 건축과 싸게띠의 활약은 이루 이어집니다. 부르봉 왕가의 왕들은요, 전통적으로 이 스페인 예술가들을 그렇게 많이 신뢰하지 않았어요래 당대 유럽 최고의 유명한 사람들을 불러다가 작업을 의뢰하죠. 덕분에 18세기 예술가들의 실력 경연장이 된 게 이 마드리드 왕궁입니다. 그때 큰 활약을 한 것이 이태리 화가 지아김또라고 하는 사람인데요. 사람의 그림을 곳곳에서 아주 화려한 바로 그를 만나보실 수가 있습니요.
페르난드 6세는 생후 5개월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계모 이사벨 파르네시의 감시 속에서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랑 계모에 의해서 철저히 분리되면서 살았어요. 그리고 어쩌다가 만난 아버지는 정신병으로 고통받는 모습밖에 보이지 않죠 그래서 아주 큰형을 굉장히 의지했는데 큰형도 빨리 죽고 그러면서 그에게 유일한 희망은 부인 바르바라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그에게 인생의 희망의 빛이 들어온 거예 왜냐하면, 자기를 적극적으로 서포트 해주고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그래서 삶의 의욕도 찾고 스페인 왕이 돼서 자신을 구박하던 계모 이사벨 파르네시오를 추방하고 국가 개혁을 위해서 노력하고 궁전의 건설도 박차를가에서 1755년도 완공이 돼요. 하지만 얼마 후에 부인이 죽어요.
바르바라가 죽자 왕은 마드리드 근교의 숲에서 생각을 생활 하면서 아버지와가도 같은 이 미친 증세를 보이다가 이듬해 사망합니다. 그래서 페르난도를 울울왕 이렇게 부르게 되죠. 부인 바르바라를 정말 많이 사랑했지만, 후사 없이 죽어요. 덕분에 스페인 왕가의 첫 이 펠리페 5세의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 낳았던 자식들이 더 이상 후계가 없어지게 됐자 두번째 응 두번째 이사벨 빠르 애시오. 남편을 이용하고 자식을 이용하고 했었던 그녀가 낳은 장남 까를로스에게 편지를 씁니다. 당시 까를로스는 25년 동안 나폴리라고 하는 곳에 왕을 하고 있었어요. 그곳에서 계몽주의 사상을 접하고 이성적이고 과학을 중시 여기던 왕이었어요. 1760년 마드리드로 깔로스 3세가 되면서 스페인 개혁을 단행합니다.
중앙은행을 만들고 부패 척결을 위해 예수회를 추방하고 도시의 위생에 신경을 쓰고 그러니까 교역권을 지중해도 나눠주고 그는 25년 동안 자기가 이태리 나폴리에서 제대로 된 왕으로서의 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자신의 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다 데려와요. 사바틴이라는 건축가를 데려오고 그러면서 궁전의 바닥 천장 수많은 곳을 건 이 건설을 아주 센세이션하게 그때 당시 최고의 유행하던 방식으로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이전에 이복형이었던 페레난드 6세 때 활약하던 지하 낀또가 궁정 화가였는데 본인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라파엘 멘츠 혹은 이 띠에볼로 이러한 화가들을 초빙을 하게 되면서 궁전 안에 있는 여러 그림들이 새로운 판도에 이 또한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1764년도 처음으로 궁전에 입주해서 살게 된 왕이죠. 1788년도 계몽군주 까를로스 3세는 여기서 사망을 해요. 그리고 깔로스 4세 산양왕이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이 정치에는 그렇게 많은 관심이 있던 왕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굉장히 전문가의 수준으로 심취를 했었던 사람이 그거 좋아하는 건 사냥 그리고 값진 시계의 수집 가구의 수집 현악기 바이올린 이러한 것들을 굉장히 사랑하기 때문에 궁전 안에 그의 흔적들이 꽤 남아있는 걸 보실 수가 있겠죠. 정치는 부인인 마리아 루이사라는 왕비가 하게 됩니다. 그녀는 마누엘 고도이라는 애인을 두었고 이 평범한 남자를 스페인의 수상 자리에까지 올려요 하지만 카를로스 4세는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해요.
하지만 궁전에 이미 전에 있었던 계단 방향으로 올라오면 여러 가지 커넥션이 왕비와의 커넥션이 좋다는 이유로 계단의 방향을 바꿔요 아예 중앙 계단의 방향을 바꿔버립니다.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 바꿔버려요 그래서 궁전 내부의 모습에 변형을 두게 되죠. 당시 유럽은 계몽화되고 있었고, 프랑스에선 혁명이 일어나서 왕가가 단우되 이슬로 사라지고 그렇게 변화를 시도하던 시기에 부인의 허수아비가 되어서 시대를 역행하는 정치를 펼친답니다. 그래서 스페인의 위기를 가져오죠 끝내는 나폴레옹이 꼭두각시가 되어서 놀아나다가 민중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놓고 본인은 감옥에 갇히고 망명 생활을 하다가 로마에서 10년 만에 죽어요. 그리고 나폴레옹은 자신의 형인 호세 보나빠르 것들을 스페인 왕으로 앉칩니다.
그리고 이 호세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하죠. 형 이제 형이 나보다 더 좋은 집에서 사는구려 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하는데요. 자 여기까지 일단 간단한 역사 한번 둘러보셨고요. 어떠한 장소인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드리드 왕궁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유명한 박물관 왕궁 귀족의 저택에 동양식 자기를 데코레이션으로 많이 만나보실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동양인이고 더군다나 한국은 자기를 만드는 기술력의 역사가 길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시면, 우리에게는 그게 귀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유럽인들에게 자기는 최고의 사치품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향신료였어요. 후추 정향 육두부 이런 거죠. 하지만 뽀르뚜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나가서 직접 공수를 해오면서 유럽 안의 보편화가 시작되거든요. 그러면서 또 다른 사치품을 추구하는데 그게 바로 작이었습니다. 명나라에 자기를 사기 위해서 유럽의 부호들은 전 재산을 탕진하기도 하고, 가문에 이름을 갖다 팔기도 합니다.
이유인 슨 사기도 어려웠고 재료에 대한 비밀로 인해서 따라 만들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역사의 과도기를 보시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되던 시기를 들 수가 있겠습니다. 그때 당시 자기 공급의 본고장이었던 징더전이 초토화됩니다. 하지만 유럽 안에서는 식사 예절 문화가 바뀌고 있었고, 개인 접시가 필요하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을 했기 때문에 찻잔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왕가와 귀족들은 그들의 문양이 찍힌 그들만의 자기를 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어마어마한 주 질문을 받아서 이동을 했었던 자기중개사들 중의 하나가 뭐니 해도 일 등은 네덜란드 상인들이었거든요. 그들은 중국으로 갑니다.
하지만 중국에는 교역할 만한 자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일본으로 갑니다시 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부터 두여왔었던 도공들에 의하여 자기 기술력이 발전하고 있었던 상탭니다. 일본은 네덜란드와의 교역에 신중을 기합니다. 기독교 복음에 전파를 피하기 위해서 제한된 항9만 개항하는데 항구의 이름이 이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유럽으로 도착한 자기들을 이마리 자기다 이렇게 명명하는데요. 왕궁 안에 곳곳에서 이마리 자기를 많이 만나보실 수가 있어요. 특징은요, 이전에 중국식 자기들은 하얀 세계 파란색 그림이 대체적이었습니다만 일본식 자기는 위에 빨간색 안료를 더합니다.
알록달록한 재색이 특징적인 부분이 되겠습니다. 정치적인 안정이 이루어졌던 청나라에서 자기 산업에 다시 한번 뛰어드는데 오히려 그때는 유럽 안에서 일본식 이 말이 자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청나라에 자기 문화를 아예 일본식으로 바꾸는 경향성까지 나타납니다. 있는 사람들은 자기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의복도 오리엔탈 동양식으로 정원두 일본식 중국식 정원 건축물도 일본식 중국식 건축물들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일본에서 자기를 수출할 때 자기가 깨지지 말라고 종이로 둘둘 감싸서 보냈는데 종이에 찍힌 저렴한 일본식 판화까지도 인기를 끌게 됩니다.
유럽의 새로운 4조를 연구했었던 예술가들 인상주의의 화가들 만고흐 만에 이러한 사람들은 이러한 동양식 문화에 노출이 되게 되고 그림에 많은 부분들을 도입하게 되죠. 자 이랬었던 동양식 열풍 안에서 재료공학의 혁신인 유럽에서 드디어 자기가 18세기에 만들어지기 시작을 합니다. 덕분에 이제 들어가시는 마드리드 왕궁 안에서는요 동양식 유명 애썼던 자기의 흐름들 및 유럽식 자기가 시작이 되고, 발전이 되었었던 흔적들을 하나둘씩 만나보실 수가 있겠습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자기들의 눈길 한번 자세히 주시길 바랍니다.

왕궁 내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부로 들어가실 때 공항처럼 엑스레이를 통과하셔야 되거든요. 혹시라도 배낭이나 그런 거 있으시면 앞에 있는 보관함에 맡겨주실시요. 가볍게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들어오신 장소는 궁전의 부속 건물 쪽이기 때문에 메인 건물로 들어가시려면 정면에 보이는 광장을 가로 질러서 이동하셔야 됩니다. 왕궁정면을 바라보시면, 5개의 문이 있어요. 정 중앙에 있는 세 개의 문이 있는데, 그쪽으로 들어가실 거예요. 표를 다시 보자고 하니깐 잘 소지하고 계십시오. 이 광장은 16세기 때부터 여러 행렬이 벌어지던 곳이고 지금도 19세기에요. 이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형태의 군사 행렬이 매주 첫째 주 수요일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광장을 퍼레이드의 광장 이렇게 부르는데 이 건물은 어떠한 양실일까요? 입구를 중심으로 그리스의 도리 야식 이오니아식 기둥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죠 하지만 건물의 양쪽 가장자리가 앞으로 툭 튀어나옵니다. 변화를 꾀하면서 각 층에 있는 창문의 틀을 보시면, 정 중간을 중심으로 양쪽의 모양이 변하는데 대칭으로 변합니다. 특히 건물의 꼭대기를 보시면, 조각상들이 있는데요. 이러한 것들은 바로 양식의 요소들이죠. 그래서 이 왕궁은 후기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독특한 양식이고 이러한 양식을 스페인에서는 바로크 인터내셔널이라고 표현합니다. 페르난도 6세, 즉 이 왕궁을 현재의 모습으로 왜관을 완성시켰던 왕은요, 꼭대기에 108개의 역대 왕들의 부각상을 장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이복동생 까를로스 3세 때 계획은 무산되는데요. 왜 그럴까요?
이사벨 파르네시, 즉 페르난도 6세의 계모는요 자신의 아들이 1760년 이곳으로 오자마자 조각상 철거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인즉슨 간밤에 꿈을 꾸었는데 지진이 나서 왕궁 위에 있는 조각상들이 다 떨어진다는 거죠. 이때가 1700요 15년도 리스 본 지진이 있었던 바로 이후 5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상태였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굉장히 흉륭한 까를로스 3세는 아무리 어머니지만 그녀가 행한 악행을 떠올리면서 지진이 아닌 억울한 망령이 와서라도 적어 것을 떨어뜨릴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 조각상 철거를 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조각상들 108개는 왕실 창고에서 102 라 시간을 보내다가 이사백 이 세 때 1860년대 스페인 곳곳으로 이동합니다.
가깝게는 왕궁 바로 옆에 있는 오리엔트 광장 레띠로 공원 멀리는 대서양의 페롤이란 도시까지 옮겨져서 각 도시의 시민 공원들을 장식하게 되죠. 그리고 1973 3년도 왕궁이 보수 공사를 하게 되면서 정면에 가장 위에 보시면, 네 개의 조각상을 올립니다. 가장 왼쪽에는요 미친 왕 셀리페 5세 궁전 설립을 시작한 왕이고요. 바로 오른쪽이 베르난도 6세 조각상 설립을 명해 명했었던 왕이고 공전을 완성시킨 왕입니다. 오른쪽에는 펠리페 5세이의 부인 조강지처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루이사 가브리엘라 데스 아보야입니다. 뉴페르난도 6세의 심장과도가 됐던 바르바라 데 브라관사입니다. 조각상들 사이에 있는 종은요, 화재가 났었던 마드리드의 알카사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종을 사바띠니가 현재의 모습으로 변형을 한 것입니다.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곳은 환영불입니다. 외국에서 온 사신들이나 왕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이곳까지 들어올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있는 로마 복장을 하고 있는 까르루스 3세는 왕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환영하듯 맞아주는 형태를 띠고 있는 장소입니다. 뒤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이 보이실 텐데요. 계단 쪽으로 이동해 보겠습니다. 이 계단은 원래 양쪽이 대칭으로 해서 올라갈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는데, 까를로스 3세와 4세를 지나면서 지금의 형태로 한쪽만 계단이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 있는 로마 복장을 한 조각상인 카롤루스 4세는 왕궁 투어가 끝나고 내려오시면 다시 한번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이 계단은 5미터짜리의 산 아우구스틴 통대리석입니다. 한번 천천히 올라가 볼까요? 걸으시면서 편안함을 느낄 겁니다. 바로 여인들의 가마인 세단이 편하게 오르내리도록 높이가 설계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계단 중간까지 오셨습니다. 정면의 벽 중간에 자주색 휘장이 보입니다. 스페인의 현 왕인 펠리페 6세의 회장입니다. 스페인 통일의 전신인 네 개의 가톨릭 왕국인 카스티아 레온 아라곤 나바라와 함께 그라나다의 통일을 상징합니다. 양쪽으로는 사자가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한 마리는 얌전하고 한 마리는 움직일 기세네요. 바로 평소에는 고요하지만 필요할 땐 용맹스러운 스페인의 왕가를 상징합니다. 또한 네 개의 화병을 보실 수가 있는데, 행사 때 실제 생활호 장식이 됩니다. 이 화병들은 이태리의 카라다 지역에서 최고의 대리석으로 열두 개를 만들어 왔습니다.
나머지는 현재 아랑헤즈 별궁에 보관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뒤를 돌아 천장화를 보시면, 천장화가 잘 보이실 겁니다. 왕궁을 공사할 때 최초의 궁정화가인 지아킨터의 그림입니다. 치아킨톤은 프레스코와에 진주의 색깔까지 넣을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함과 섬세함을 자랑하는 위대한 화가였습니다. 천장화에 넣은 많은 구름들 사이에 여러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위쪽에 빨간색 구름 아래 보시면,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는 스페인 왕가의 문장마크의 금색 메달이 보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천사는 승리의 상징인 월계수을 들고 스페인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래에 성령의 상징 비둘기도 있습니다. 비둘기 아래 왼쪽에 있는 여성은 천사를 통해 교황님의 왕관을 받고 있고 오른쪽에 있는 여인은 십자가를 들고 서서 가톨릭을 상징합니다.
그 아래 투구를 쓰고 오른쪽에 이삭을 들고 왼손에 창을 들고 있는 여인은 스페인을 상징합니다. 그녀의 주변에는 무기들과 과일들이 보입니다. 이것은 그녀의 용맹함과 풍요로움을 상징합니다. 주변의 여러 인물들은 인간들의 여러 덕목을 상징하고 왼쪽의 흑인부터 아래쪽에 각기 피부색이 다른 인종들은 스페인이 정복한 지역들을 상징합니다. 이 그림은 이곳에 들어오는 이들로 하여금 스페인 왕가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제 오른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 보겠습니다. 올라가시면 정면으로 보이는 왕이 이 왕궁을 만들게 한 미치광이 왕 벨리페 5세이며 역쪽은 그의 아내 이사벨 발아내시오입니다.
안혜영 (니콜) : 깊이 있는 문화와 다양한 역사가 공존하는 스페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스페인 정부에서 인정받은 오피셜 가이드 안혜영입니다. 이곳에 오신 분들 중 특별한 분들께만 안내하던 내용을 이렇게 함께 나누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제대로 된 안내를 제대로 해드리겠습니다. 기대 한번 제대로 해보셔도 좋겠습니다. 수준 있는, 하지만 재밌는 시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경력 사항 : 이화여자대학교 학사, 스페인 정부 허가받은 공식 가이드, UC3M 유럽 미술사 수료, 말라가 대학교 피카소 특별 과정 수료, 프라도 박물관 보쉬 과정 수료
고용진 : La vida es carnaval! 삶의 하루하루를 축제처럼 귀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 고용진입니다.독일어를 전공하며, 유학했고, 사랑 찾아 떠나온 스페인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현재 최고 인기 있는 젊고 패기 있는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때 방송국 아나운서 출신이라서 그런지 목소리 칭찬 많이 해주시는데요. 일단 여기서 일단 이렇게 만나 뵐게요. 궁금하시거나 어려운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 남겨주세요! 스페인 최고의 인기 가이드가 현지에서 언제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경력 사항 : 독일 드레스덴 대학, UC3M 유럽 미술사 수료, 말라가 대학교 피카소 특별 과정 수료, 프라도 박물관 보쉬 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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