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세비야에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세비야 대성당과 히라다탑을 둘러볼 가이드 김현지입니다. 세비야를 여행하다 세비야에 푹 빠져 1년을 보내며 이제는 세비야가 제 이의 고향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오늘 저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여러분도 세비야가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현재 대성당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두 곳입니다. 콜럼버스의 문과 악어의 문인데요. 두 곳 모두 통합권이나 인터넷 예약을 하고 오신 분들이 이용할 수 있으며 예약을 하지 않으신 분은 콜럼버스의 문으로 입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입구로 들어오시더라도 본세비아 대성당 내부 투어는 투어 지도상 이 번 위치인 오렌지 정원에서 시작하니 어느 입구로 들어오시더라도 투어는 히라다탑이 올려다보는 오렌지 정원에서부터 재생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간략하게 세비야대 성당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비야 대 성당은 1401년에 초석을 다진 것을 시작으로 한 세기가 넘는 시간이 지나 완성되었습니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대성당과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성당입니다. 또한 고딩 양식의 성당 중에서는 가장 넓은 성당으로서 무려 이만 3005백 제곱미터에 달하는 축구장의 세 배에 달하는 크기죠 또한 1987년에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기도 합니다.
본래 성당이 있던 자리에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있었는데요. 1248년 카스티아 왕국의 페르난도 3세가 세비야를 탈환하면서 세비야에 있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냈습니다. 이슬람 민족이 떠나고 남아 있던 이슬람 사원은 1356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일부가 무너져 버리고 말았죠 이후 1401년부터 무너지고 남은 사원이 있던 자리 위에 대성남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세비야 대성당은 미친 자들의 작품이라고 불립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함께 조각 하나하나가 아주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거든요. 대성당을 지을 당시에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할 정도예요. 성당이 완성된 후에 성당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미쳤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거대하고 아름답게 짓자라고요.
그럼 본격적으로 얼마나 미친 자들의 작품이었는지 한번 둘러보도록 할까요?

오렌지 정원으로 들어오셨나요? 이제 오렌지 정원의 한가운데로 한번 가보겠습니다. 세비야 대성당에 남아있는 이슬람 사원의 흔적은 사실상 이 오렌지 정원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당 이전에 이 자리에 있던 이슬람 사원은 1171년 알무화드족이 지은 것입니다. 이 알무화 대족은 1145년에 이베리아 반도의 순수한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고자 들어왔습니다. 이후 북아프리카에서 이베리아 반도 남북까지 아우르는 거대 국가를 세웠죠 그리고 그들은 1170년에 세비야를 그들 제국의 이베리아 반도 지역 수도로 정했고 이 세비야의 수많은 그들의 건축물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뛰어난 건축술를 가지고 있는 민족이었는데요.
세비야 시내 곳곳에서 그들의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모양의 많은 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계신 세비야 대성당의 오렌지 정원뿐만 아니라 황금의 탑 알카사르 등이 이 알무어드족이 지은 건축물이며 특히 그들이 세비야에 남긴 최고의 선물은 히라다 탑입니다. 히랄다 탑도 곧 함께 보겠습니다. 정원의 한가운데를 보시면, 분수대가 있습니다. 또한 들어오신 입구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보시면, 나가는 출구가 있는데요. 이슬람 양식의 특징인 말발군 모양으로 생긴 문을 면죄문이라고 부릅니다. 세비야대 성당에 있는 여러 개의 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죠. 이 장소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을 당시에는 이 문이 출구가 아닌 입구였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면죄문으로 들어와 분수대에서 손과 발을 씻고 사원에 들어가서 기도를 올렸던 장소로 이용되었습니다. 이후 1248년 가스띠아 왕국이 세비야를 정복한 후에는 공동묘지 연례행사의 장소 설교 장소 등으로 이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자 이제 그럼 뒤를 돌아서 여러분들이 들어온 입구의 위쪽을 바라볼까요? 바로 히랄다 탑입니다. 히랄다탑이 보이는 그늘 있다면 그곳으로 가시는 게 더 좋겠죠. 히라다탑을 지은 알모하드족이 모로코가 있는 북아프리카에서부터 왕국을 건설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이히랄다 탑은 모로코 마라캐시의 쿠투비아 모스크의 탑과 아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77미터 높이의 탑으로 마라캐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데요. 그럼 이 히랄다 탑은 높이가 얼마나 될까요? 처음 알모하드족이 이 히랄다 탑을 지었을 당시에는 82미터 정도였다고 합니다. 1184년에 짓기 시작해서 1198년에 완공되었고 당시로서는 처 십이 세기 유럽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탑의 윗부분에는 본래 이슬람 사원에 있는 높은 첨탑인 미나렛이 있었는데, 1356년에 있었던 리스본진의 영향으로 윗부분이 망가졌고 세비야를 되찾았던 가톨릭 왕국은 망가진 부분 위쪽으로 가톨릭 양식의 종탑을 올렸습니다. 르네상스 양식으로 종탑을 장식했으며 탑의 중간 부분을 네 면의 문구를 새겨 놓기도 했는데요.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라는 뜻으로 5세기 초 라틴어로 번역된 불가타 성경의 잠원 18장 10절 구 절입니다. 종탑의 꼭대기 부분에 어떤 게 보이시나요? 히랄리오 여신상이 있습니다. 이 히랄디오 여신상은 한 손에 종녀나무잎과 또 다른 손에 방패를 쥐고 있는데, 이는 우회적으로 가톨릭 세력에 이슬람 세력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저희는 히랄다 탑의 이름이 왜 히랄다인지도 알 수가 있는데요. 스페인어로 히라르는 둘다 회전하다라는 뜻입니다. 히라디오 여신상이 쥐고 있는 방패가 승리를 뜻하기도 하지만 바람의 방향에 따라 실제로 움직이는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죠. 당시 사람들은 이 여신상을 친근하게 별명처럼 바람배기라는 뜻인 히라디오라고 이름 붙였고 스페인어로 히라르는 돌다 회전하다 라는 뜻입니다. 히라디오 여신상이 쥐고 있는 방패는 승리를 뜻하기도 하지만 바람의 방향에 따라 실제로 움직이는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여신상을 친근하게 별명처럼 바람개비라는 뜻인 히랄디요 라고 이름 붙였고 여기서 히랄다 탑에 이름이 생겨났습니다. 알고 보니 굉장히 단순한 이름이죠.
그 외에도 기독교의 상징을 찾을 수 있는데요. 탑 위쪽의 모서리에 담긴 꽃이 화분 보이시나요? 그 꽃은 백합으로 기독교에서 성모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히랄다 탑은 세비야 대상당 입장권을 구매하시면 올라가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정말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오는지 정원에서 면제의문 맞은편에 위치한 문입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오셨나요? 세비야 대성당 내부의 고딕 양식 부분은 1434년에 시적되어 1506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 시대에 이렇게나 크고 높은 성당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겠죠. 그래서 당시 유럽에서 성당 내부를 짓는 데만 보통 150년에서 20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곳 세비야 대성당은 73년 만에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빨리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둥 근처에 천장을 한번 보실까요? 구멍이 뽕뽕 푸 뚫려 있는 게 보일 겁니다. 그리고 기둥의 맨 아랫부분에 고리 같은 게 달려 있습니다. 천장의 구멍과 고리를 연결해서 벽돌을 더 효율적으로 옮길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었던 거죠. 마치 우리나라에서 정약용이 거중기를 이용해 수원 화성을 지었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럼 이번엔 천장을 한번 올려다보겠습니다. 높으면서도 굉장히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어요. 성당 내부는 총 68개의 아치형 천장을 60개의 커다란 기둥이 받치고 있고 중앙홀의 경우에는 높이가 무려 37미터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높은 건물이기 때문에 지진을 방지하기 위해서 굉장히 커다란 기둥을 사용한 것이라고 해요. 기둥 사이의 빈 공간에는 여러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종교적 의미를 지니는 조각과 그림들로 채워져 있고 무덤이 있는 곳도 있답니다. 들어오신 입구를 등지고 왼쪽을 한번 보겠습니다. 바로 후빌레어 재단입니다. 은 재단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18세기 말의 호 라우레아노 데삐나 그리고 마누엘게레로 네알간 따라가 만든 작품입니다.
본래의 형태는 가로로 길었지만 1808년에 프랑스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입했을 때 이곳 사람들은 양쪽의 화려하게 장식되었던 부분을 잘라내어 세비야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해안가 도시인 카디스로 옮겼고 그걸 녹여서 나폴레옹의 대항해 쌓으기 위한 전쟁 자금으로 사용했다. 합니다. 그럼에도 은으로 만든 작품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것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며 이 세비야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바로 그 양식 은세공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제 대성당 예배당을 한번 보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곳은 산 안토니오. 예배당으로 대성당의 세례당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곳 예배당의 중앙에는 16세기에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세례 성수통이 위치해 있습니다. 그 뒤로는 세비야가 사랑하는 화가인 바르톨로의 무리요의 산안토니오의 환상이라는 작품이 보입니다. 무리요는 우리나라 분들에게는 생소한 화가이지만 17세기 스페인 미술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화가로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서 찾아온 볼 수 있는 밸라스케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화가입니다. 사실 밸라스케스 역시 이곳 세비야 출신인데요.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마드리드로 건너가 궁정화가가 되면서 이 세비야에서는 조금 중요도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리온는 세비야에서 태어나 세비야에서 활동하고 후화까지 양성했던 인물로 그야말로 세비야가 애정하는 화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감미롭고 감상적인 화면을 선보이는데요. 원래 그의 그림은 색조의 차가운 느낌이 들던 세비야파적 그림이었지만 라파엘로 루벤스 란다이크 등의 명작에서 많은 것을 배운 후에 그림의 점차 안정감과 따뜻한 느낌이 드는 화풍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스페인의 라파엘로다라는 별명을 갖기도 합니다. 산안토니오의 환상 작품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 작품은 1656년에 완성한 그의 걸작품입니다. 그림 가운데에는 싼 안토니오가 구름 중앙의 아기 예수를 향해 두 팔을 뻗고 있는 형태를 하고 있죠.
그림 및 전체에 빛을 비추는 게 아니라, 아기 예술을 중심으로 빛을 주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바로크 미술의 특징이 그림 전체가 아닌 중심이 되는 부분에 비추는 것이거든요. 이 그림은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렸던 작품이기도 한데요.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략했을 때 세비야 대성당에 있던 이 작품을 가져가려고 했답니다. 당시 성당 측은 이 작품 대신에 성모 마리아의 탄생이라는 무료호의 또 다른 작품을 내주었습니다. 그만큼 이 작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64년이 지나 1874년에는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에 의해서 산안토니오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작품을 잘라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뉴욕의 골동품 수집가가 조각을 모아 세비야 대성당으로 돌려보냈고 복원 과정을 거친 후 1875년에 다시 세비야 대성당에 전시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안토니오의 머리 위로 검은색의 흔적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당시 훼손되었던 흔적이라고 합니다.

예배당에서 나오시면 커다란 깃발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깃발은 1248년에 까스띠아 레온 왕국이 세비야를 다시 가톨릭 왕국의 땅으로 탈환한 후에 사용했던 것입니다.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는 712년에 이슬람 세력이 들어왔는데 북부에 바스크 지방까지 올라가는데 오륙 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에 가톨릭 왕국들은 718년부터 1492년까지 약 7세기 반이 넘는 기간 동안 국토회복운동 스페인어로는 레콘기 스타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스페인에는 대표적으로 가스티아 왕국 레온 왕국 아라곤 왕국 나바라 왕국이 가톨릭 왕국으로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세비야를 탈환할 시기에 가스띠아 왕국과 레오난국은 이미 어느 정도 통합된 형태를 띠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깃발을 보시면, 성 모양의 가스띠아 왕국과 사자 모양의 레온 왕국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죠. 스페인어로 가스 띄우는 성 레오는 사자라는 뜻이거든요. 레콘키스탄은 13세기 무렵 절정에 이르러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되찾는 데 성공한 상태였습니다. 북쪽 지방에서 시작되어 안달루시아 지방까지 내려오기에 이르렀고 카스티아 왕국의 페르난도 3세가 세비야를 탈환하자 이베리아 반도 전체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가 점점 커졌습니다. 그래서 페르난도 3세는 현재 성인의 반열에 올라 세비야의 대표적인 수호 성인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며 세비야 시청 맞은편의 누에바 광장에서 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말을 타고 우뚝 서 있는 동상의 인물이 베르난도 3세입니다.
이후 카스티아 왕국의 이사별 영화 아라곤 왕국의 페르난도 이 세가 결혼을 통해 연합을 이룬 후 드디어 이슬람 세력의 마지막 근거지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의 열쇠를 넘겨받으면서 약 800년 동안이나 이베리아 반도의 자리를 틀었던 이슬람 세력을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을 겪고 난 후에 다시 우리 땅을 되찾을 때 흔들었던 태극기와 같은 역할을 한 게 바로 이 깃발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이곳 세비야 대성당은 물론이고 거리마다 당시 이 깃발을 달고 있었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지입니다 : )
대학에서 스페인어와 네덜란드어를 공부했고, 지금은 유럽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공부하고, 투어 가이드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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