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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가이드 소개
00:07 피렌체의 매력과 투어 소개
01:54 피렌체 여행 기간은?
03:05 오디오 투어 사용 팁!
본 조르노! 이탈리아의 역사와 예술을 재미있게 소개해드리는 이탈리아 국가 공인 가이드 '키아라'입니다.
이번 우리의 여행지는 피렌체! 어쩜 별명도 이렇게 예쁜지, '꽃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곳입니다. 피렌체를 상징하는 도시 문장, 피렌체 백합처럼 그 모습 자체도 예쁜 도시이기도 하구요. 또 서양사에서 큰 전환점이 되었던 르네상스 시대 '화려한 예술의 꽃'을 피워낸 도시기도 해요. 이 시기에는 피렌체에서 정말 말도 안 되게 역사상 놀라운 천재들이 쏟아져 나왔죠. 예를 들면 레오나르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유명한 예술가도 있고. 또 피렌체 두오모의 쿠폴라 돔을 올린 건축가, 즉 전 세계 돔 건설의 이후에 영향을 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도 있습니다. 그 외의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천재들이 바로 이곳 피렌체에서 활약했기에 '천재들의 도시'라고도 부르는 곳이에요.
아름다운 풍경에, 대부분 걸을 수 있는 환경에, 모든 것이 다 모여있어서 여행하기 좋고. 또 수많은 예술 작품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득한 곳인데 쇼핑하고 맛있는 것들 또 즐길 수 있는 것까지. 모두 가능한 곳이 바로 이 피렌체라서, 특히 정말 놀라운 게 피렌체를 별로였다고 말하는 여행자가 거의 없어요. 물론 아예 없진 않겠지만요.
물론 취향 따라 피렌체가 어떤 분에겐 최고는 아니었을지언정 로마나 파리처럼 호불호가 심한 도시가 아니라는 건 정말 확실한데요. 도대체 '피렌체의 매력'이 무엇인지 이 투어에서 낱낱이 해부해서 소개를 해드리도록 할게요. 먼저 간단하지만 알고 가면 더욱 피렌체를 이해하기 좋은 피렌체 '역사' 이야기들도 좀 소개를 해드리니까 여행 정보와 함께 피렌체 역사 이야기도 시간 될 때 함께 들어주시고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여행 정보 풀어드리기 전에 제가 가이드로서, 또 피렌체를 사랑하는 여행자로서 아쉬웠던 점이 한 가지 있었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많은 여행자 분이 제게 피렌체 다녀와서 '피렌체 너무 쇼핑하기 좋았다, 그런데 쇼핑하느라 피렌체를 여유 있게 볼 시간이 부족했다' 많이들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다음에 꼭 피렌체 올 때는 여유 있게 다시 와서 피렌체를 보고 싶어요' 하시는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경험상 피렌체 여행하시는 일정들을 보면, 평균적으로 1박에서 길어야 2박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들은 대부분 처음 이탈리아를 와서 이탈리아 전국을 제한된 시간 안에 다 보고 싶으신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로마 2박~3박, 그 다음 피렌체 2박, 그리고 베네치아 한 1박~2박 이렇게 많이 구성들이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특히 쇼핑까지 해야 되는, 예를 들면 휴가 온 직장인이나 제일 많은 건 신혼여행 오신 분들이 여기가 쇼핑하기가 워낙 좋다 보니 그래서 쇼핑 시간을 할애하다 보면 피렌체 자체를 보는 시간들이 줄어드는 겁니다. 물론 피렌체가 쇼핑을 하기 좋은 도시인 건 맞지만, 그 외에도 볼 것이 얼마나 많은지 피렌체 여행 정보와 함께 풀어드릴 테니까, 꼭 잘 들어보시고 여유 있는 피렌체 여행 일정 잡으셨으면 좋겠고요.
언제든지 관련해서 궁금한 점 있으면 투어 후기란을 활용해서 먼저 '질문'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자, 이제 피렌체 여행 저와 함께 본격적으로 준비 시작해볼까 하는데요. 이 투어 구입을 결정을 하시면 와이파이 환경에서 잊지 마시고 바로 투어 '다운로드'도 해주세요. 그리고 실제 여행하면서 듣는 투어가 아니다 보니 가능하면 여유 있는 시간에 라디오 듣듯이 들어주시면 좋습니다. 제 말이 기본적으로 약간 속도감이 있긴 하지만 혹시 좀 더 빠르게 또는 느리게 듣고 싶다면 어플에서 '속도 조절'도 가능하고요. 또 오디오 투어의 장점이 '미리 듣기'뿐 아니라 '다시 듣기'도 가능하잖아요. 어플 화면 잠시 보시면 앞뒤로 '5초 구간 이동'도 가능하고요. 또 재생을 하다 보면 재생 중에 빨간색 선이 나타날 거예요. 이 선을 꾹 눌러서 이동을 하면 더 '자유로운 구간 이동'도 가능하니까 편하게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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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고대 피렌체
03:11 중세 피렌체
05:26 르네상스와 그 이후
06:53 이탈리아의 수도와 표준어
08:48 피렌체의 문화적 자부심
자, 여행 전에 나는 그 도시가 어떤 배경에 세워지고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하시는 분들 꽤 많으신데요. 우리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투어라이브를 통해 제가 다양한 피렌체 중요한 장소 설명을 드리니까 오늘 기초 여행 정보 시간에는 간략하지만 미리 알고 가면 여행에 도움 되는 피렌체의 기본적인 역사 흐름 소개를 한번 드려볼까 합니다.
피렌체라는 도시의 시작은 '고대 로마' 때부터 그 역사를 보통 이야기하는데요. 물론 고대 로마 이전에는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 자리를 잡았던 '에트루리아'라고 하는 도시 국가의 역사 흔적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지명부터가 고대 로마 시대 때의 이름에서 유래해 지금까지 피렌체라는 이름이 내려오고 있는데요.
영어로는 플로렌스, 이탈리아어로 피렌체, 라틴어로 플로렌티아 라고 불리우는 이 도시는 원래 가장 먼저 도시가 지어졌던 게 기원전 80년 아르노 강가에 병사들을 위한, 즉 군인들을 위한 정착지로 도시를 세우면서 '흐름'을 의미하는 라틴어 '플루엔티아'라는 도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기원전 80년에는 정착을 시도했다가 결국 결과적으로 정착을 성공한 건 기원전 59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많이 들어본 이름이시죠? 즉 영어로 줄리우스 시저라는 인물이 다시 한번 이 도시에 퇴역한 군인들을 위해 도시 건설을 진행하면서 본격적인 고대 로마 시대의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고 합니다.
피렌체 여행을 하면 고대 로마 도시의 흔적은 사실상 눈에 보이도록 남아있는 게 많지는 않은데요.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요. 잠깐 참고사진 한번 보실까요? 첫 번째 자료 보시면 사진 위쪽으로 두오모 성당이 보이시죠. 그 성당 주변으로는 빨간색 테두리 선이 보일 텐데 그 테두리를 두 번째 자료에서 보면 네모난 '성벽' 형태였다는 걸 확인할 수가 있어요. 실제 피렌체 여행을 하다보면, 미켈란젤로 언덕을 가는 이런 성벽을 보실 일이 많은데요. 이 성벽들이 바로 고대 로마 때 건설되었던 피렌체 시가지의 기준, 일부 남아있는 것들을 계속 보수해서 이후에 사용을 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그 모습을 볼 수가 있는 거죠.
그리고 다시 첫 번째 자료를 보시면 이번에는 도시를 정가운데로 가로지르는 초록색 선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선이 교차하는 지점이 현재 피렌체의 '레푸블리카 광장'이라는 곳입니다. 참고 사진에는 제가 레푸블리카 광장 사진 함께 올려놨는데 사진 한쪽에 보시면 기둥이 하나 서 있을 거예요. 거기가 바로 로마 시대 때 이 도시의 한가운데를 표시했던 지점, 그 지점을 현재 기둥을 세워 놓은 겁니다. 또 그 외에도 일부 고대 로마 때 극장 유적이나 건축물 유적이 발굴되어 있어서 다른 건축물을 들어가는데 지하에 고대 로마의 건물이 발굴되어 있는 모습을 관람할 수 있는 곳도 있으니까 항상 눈 크게 뜨고 피렌체를 여행하다 보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가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고대 로마에 이렇게 시작된 피렌체의 중세는 어땠을까? 잠시 시간을 한번 훅 뛰어넘어 가보도록 할게요.
'중세 피렌체'는 11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로마가 멸망하기 전에 종교적으로는 4세기에 이미 주교자가 있는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는 가장 중요한 종교적 중심지가 되기도 했는데, 사실 무엇보다 '상업의 중심지'로써 오늘 이야기들 드릴 게 많은 곳이 바로 피렌체인데요. 피렌체는 11세기 당대 최고의 모직물 생산지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좋은 모직물을 생산한다는 건 결국 유럽 귀족들을 자신의 고객으로 만든다는 거죠. 그런데 이걸 누가 만들겠어요? 사람이 만듭니다. 자연스럽게 수공예가 발전을 하면서 피렌체는 수공예뿐 아니라 서비스업, 금융업을 비롯해서 산업 전반이 발전을 하게 돼요.
우리 어릴 때 공부하다 보면 세계사에서 유럽 중세 파트에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가 '봉건 제도' 이런 단어 기억나실 거예요. 그런데 이 봉건제도는 토지를 바탕으로 하는 계약관계가 바로 농노와 영주 사이에 있다는 것이 기본이지만, 피렌체에서는 농업이 아닌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시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거죠. 또 마찬가지로 산업을 통해서 부유층, 즉 이번에는 기존의 토착 귀족이 아닌 새롭게 떠오르는 신흥 부유층이 생겨나기 시작을 하는데요.
중세 말엽의 피렌체의 정세는 바로 1152년 피렌체 공화국이 수립되고 나서 이런 산업의 발전 속에서 기존에 존재했던 '토착 귀족', 그리고 산업을 통해 부유해진 새로운 '신흥 부유층', 그리고 '시민들'과 '도시 노동자들'이 이렇게 함께 대립하기 되는 것이 당시의 정세였다고 합니다. 그런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시뇨리아 광장의 '베키오 궁전'인데요. 신흥 세력이 결과적으로 승리를 하면서 토착 귀족의 한 저택이 있던 자리를 밀고 그 상징처럼 피렌체 공화국 정부를 위한 건물을 지었던 게 바로 피렌체 청사, 베키오 궁전이거든요.
하지만 상업적으로 발전을 하는 동시에 위기도 왔었죠. 바로 1348년 무려 피렌체 인구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흑사병'이 시작되었던 건데요. 흑사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이로 인해 또 한편으로는 피렌체인들은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전환점을 맞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신흥 상인 귀족 가문과 도시 시민들의 사회적 참여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흑사병의 발발은 도시 자체에서는 위기였지만 오히려 사람의 존재가 더더욱 귀해지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또 죽음을 매일 접하는 환경에서 오히려 죽음 그리고 또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이런 피렌체의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사고방식의 변화는 제일 먼저 '문학'으로 표출이 되는데, 예를 들면 단테의 <신곡>,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같은 책들이 피렌체에서 출간이 됩니다. 또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동시에 그들이 묻히는 장소인 성당에 부유해진 신흥 부유층을 비롯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문을, 또 개인을 위한 그림, '예술 작품'으로 다른 가문과의 차별화를 원하기도 하죠.
이런 환경에서 특히나 피렌체가 더욱더 이런 변화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건 문화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이 바로 이거 피렌체에 있었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관련해서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제가 다음 챕터에서 메디치 가문에 대해서 별도로 다루는 걸로 하고요. 다만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시기, 피렌체는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도시국가이자 이러한 부를 상인들, 그리고 시민들이 기반이 돼서 다른 어떤 곳보다 새로운 문화적인 바람이 불고 있었던 곳이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천재들의 도시'라고 하는 별명이 생길 만큼 다양한 예술가들이 많이 활동할 수 있는 배경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도시 전체가 화려하게 꽃 피던 르네상스 시기, 그리고 등장한 강력한 지도자 메디치 가문의 지휘 아래 점차 번성을 하면서 15세기와 16세기 피렌체는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요. 뭐든 영원한 건 사실 없나 봐요. 평범한 상인 가문에서 시작했던 이 메디치 가문이 교황을 세 명이나 배출하고 프랑스 왕비를 두 명이나 배출하는 등 유럽의 왕가들과 혼인을 하면서 유럽 최고의 명문 가문까지 올라갔던 이 메디치 가문도 결국 17세기 중반 후사가 없이 가문이 막을 내리게 되는데요. 결국 1737년 피렌체의 지배권은 지금은 오스트리아라고 부르는, 당시 '합스부르크 왕가'로 넘어가게 돼요.
그렇게 18세기 초중반 오스트리아의 속령 중 하나가 되었던 피렌체지만, 약 한 세기가 지나서 19세기 중반부터 '리소르지멘토', 즉 부흥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 통일 운동이 일어나면서 1865년부터 1870년까지 5년 동안 피렌체가 '수도'였던 적이 있어요. 물론 이후에는 여러분이 지금 아시는 것처럼 이탈리아의 수도는 로마로 바뀌긴 했지만요. 그런데 약 5년간 수도였던 영향으로 현재까지 이탈리아의 표준어는 현재 수도 로마어가 아닌 '피렌체어'가 표준어로 지정이 되어 있습니다. '로마어? 피렌체어? 이게 다른가?' 생각하실 수 있는데, 5세기경에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부터 19세기까지 1400년 가까이 다 다른 도시 국가로서 존재했던 이탈리아다 보니까 지역색이 강한 만큼 원래 각 지역끼리 토착어로 말을 하면 서로 소통이 어려울 만큼 정말 언어가 다 다르거든요. 이제는 통일된 지 150여 년 정도 됐다 보니까 젊은이들은 간극이 좀 덜하지만,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통일 이탈리아어의 표준어는 피렌체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피렌체는 이탈리아 안에서도 '문화적 자부심'이 특히 강하다고 느껴졌던 곳이었는데요. 로마에 살면서도 물론 그런 부분이 있긴 했지만, 로마는 유적이 약간 시민들의 삶과 그래도 조금은 거리가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워낙 특히 로마 유적들이 더 오래된 유적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어요.
그리고 베네치아는 이 역시 제 개인적인 인상이긴 하지만 도시에 대한 자부심과 별도로, 동시에 섬이고 또 관광객이 너무 많다 보니까 현지인들이 종종 버겁다고 해야 될까요? 오버투어리즘의 아무래도 단점이겠죠. 그런 부분 때문인지 종종 여행자들에게 베네치아인들이 배타적이다라고 하는 인상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이지만요.
그런데 피렌체는 이탈리아 대도시들 중에서도 도시와 현지인과 관광객의 심리적인 거리감이 제일 멀지 않게, 가깝게 느껴졌던 곳이었고요. 그만큼 현지인들도 이 도시의 문화적 혜택을 평상시에 많이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께서 피렌체의 가장 기본적이지만 역사적인 배경들을 알다 보면, 여행을 하면서 이런 역사적인 이야기들이 피렌체 여행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고 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설명을 드릴 게 너무 많아 가지고 추리고 추렸지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메디치 가문'에 대해서 다음 챕터에서 별도로 조금만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드려보도록 할게요.
00:00 메디치 가문이란
01:31 메디치 가문의 상징
03:19 국부 코시모, 르네상스 예술의 든든한 조력자
06:17 국부 코시모, 피렌체의 숨은 지배자
08:41 국부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
11:30 토스카나 공국, 진정한 군주가 된 메디치가
13:12 마지막 후손, 안나 마리아 루이자
13:52 르네상스 예술을 꽃피운 메디치가
15:43 메디치가를 다룬 드라마와 책 추천!
여러분 혹시 '메디치 효과'라는 말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싶으실 수도 있고요. '메디치 가문'은 아는데 메디치 효과는 뭐야?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메디치라는 가문을 알면 어느 정도 유추해 보실 수 있을 것 같긴 한데요. 서로 다른 분야, 영역의 지식이 결합을 해서 새로운 혁신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메디치 효과라고 합니다. 지금부터 이야기 드리려고 하는 이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에서 가장 부유했던 가문이자 실질적인 지배자로서 리더 역할을 했었는데, 예술을 비롯해서 철학과 과학 등의 분야에 아낌없이 후원하고 또 각 전문가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과 자리를 만드는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가문이에요.
그래서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에 수많은 분야의 천재들이 탄생을 하고 또 여기 피렌체를 바탕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고 하구요. 또 그들이 남긴 유산이 현재의 피렌체의 역사를 장식하고 또 도시를 장식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여러분의 감탄을 자아내게 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피렌체가 르네상스의 탄생지가 될 수 있도록 했던, 수많은 천재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했던, 단단한 받침이 되었던 메디치 가문! 우리 여행하면서 이 정도 알면 '나 투어라이브에서 메디치 가문 이야기 들었어. 국부 코시모 좀 대단하지. 그 손자, 위대한 로렌초도 대단했어' 이렇게 아는 척 좀 하실 수 있게 만들어 드릴 거예요.
그래서 우리 먼저 잠깐 참고사진 한 번 더 볼까 하는데, 첫 번째 장에는 메디치 가문의 가계도를 제가 넣어놨고요. 그 다음 사진을 보시면 건물에 붙어있는 메디치 가문의 '상징'을 볼 수가 있어요. 유럽에서는 건물에 이 건물을 지었던 사람이나 가문의 상징, 또 그리고 언제 이 건축물을 지었는지에 관련한 기록들을 남겨두는 경우가 많죠. 사진 속의 문장도 아래 글자에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 출신의 레오 11세 교황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그가 만들었다 라는 의미인 거죠. 그래서 실제 메디치 가문의 교황이 세 명 정도 배출이 되다 보니까 피렌체를 비롯해 로마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메디치 가문의 문장인데요. 메디치의 상징은 이 문장 가운데 있는 6개의 공입니다.
이 상징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긴 한데요. 한 가지 말씀을 드리자면 예전 가이드북이나 예전 책에 제일 많이 알려졌던 설이 하나 있거든요. 메디치 가문이 메디코, 의사 약사 길드에 속한 집안이었고 이 공은 알약의 모습, 즉 환을 딴 거다 라고 이렇게 이야기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었어요.
하지만 이것 또한 사실 여러 설 중에 하나일 뿐이고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메디치 가문이 약사 의사 길드에 속한 적은 없고, 13세기 기록에 메디치 가문의 이름이 등장했을 때부터 그 가문은 항상 상인, 은행가 가문에 속했다는 것뿐입니다. 이 가운데 공이 나중에는 좀 더 화려하게 장식되기도 하고, 또 참고사진처럼 문장 위쪽으로 교황이 쓰는 삼중관이 있으면 메디츠 가문 출신의 교황과 관련되었다는 의미도 있는데요. 중심인 메디치의 공 주변에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장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참고만 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그렇다면 이 메디치 가문은 상인 가문, 은행가로서 어떻게 피렌체를 지배하게 되고, 르네상스라는 변화의 흐름을 어떻게 피렌체에서 꽃피우게 했을까?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리고 싶은 인물은 바로 그 다음 참고 사진 속에 납작한 모자를 쓴 모습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코시모 일 베키오'라고 하는 인물이에요. 피렌체 얘기하다 보면 '베키오' 되게 많이 나오거든요. 코시모 일 베키오, 베키오 궁전, 베키오 다리. '오래된' 영어로 '올드'에 해당하는 분인데, 나중에 코시모 1세라고 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서 같은 이름이지만 코시모 일 베키오, 영어로 하면 코시모 엘더가 되는 거죠.
그런데 참고사진에는 코시모일베키오라고 하는 더 많이 알려진 이름 대신 '코시모' 뒤에 '파테르 파트리아에', 라틴어로 국가의 아버지. 그러니까 여기에선 '피렌체의 아버지'라는 의미에서 '국부 코시모'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코시모 일 베키오. 원래 국부 코시모라는 인물은 굉장히 능력 있는 사업가, 은행가였었는데요. 이미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성장을 시키고 있었던 메디치 은행을 유럽 최고의 은행으로 확장시켰던 인물이 바로 국부 코시모라는 인물이었어요.
하지만 능력 있는 사업가, 은행가인 동시에 기본적으로 젊을 때부터 '인문학적인 학구열'이 굉장히 높았다고 해요. 그래서 젊을 때보다 수많은 희귀 장서들을 수집하는 건 물론이었고요. 나중에는 학자들이 이걸 연구하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모임을 주최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피렌체 전체의 교회와 수도원을 비롯해서 중요한 장소들을 장식하거나 보수하는 데 수많은 예술가들을 불러서 이 작업들을 맡기게 되는데요.
이때 특히 코시모 일 베키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예술가 중 하나가 조각가 '도나텔로'입니다. 초기 르네상스 조각에 있어서 정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도나텔로죠. 피렌체 출신의 미켈란젤로 역시 어린 시절부터 많이 보았을 도나텔로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에서 자랐으니깐요. 제가 개인적으로 도나텔로를 좋아해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 국부 코시모의 정말 안목이 굉장히 높았다 라고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또 굉장히 흥미로운 것이 도나텔로는 메디치 가문의 성당인 산 로렌초 성당 지하에 코시모, 이 국부 코시모와 함께 묻혀 있을 정도로 아낌을 받았어요.
뿐만 아니라 미켈로초,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같은 건축가, 또 필리포 리피 같은 재능 있는 화가와 수많은 예술가들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후원하면서 초기 르네상스 예술의 토양을 다졌던 인물입니다. 그 흔적들 역시 지금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세례당이라든가, 또 메디치 가문의 저택이었던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두오모의 쿠폴라를 비롯해서 곳곳 정말 피렌체의 모든 곳에서 그 흔적을 느낄 수가 있는데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또 정치적으로 메디치 가문이 사실상 피렌체를 지배하게 되었던 시작이 바로 이 사람 코시모 일 베키오, 국부 코시모 때부터라고 보실 수 있어요. 피렌체 내외의 중요한 결정을 사실상 30년간 다 직접 돌보고 결정을 내렸지만 절대 주인공 자리에는 서지 않았답니다. 대신 자신의 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면서 '숨은 피렌체의 지배자' 역할 했던 인물인데요.
국부 코시모의 아버지 조반니 데 메디치는 유언으로 아들 코시모에게 '부자와 강한 자에게 거스르지 말되 가난한 사람들과 약한 사람들에게 항상 자비로워야 한다'라고 말을 했었고, 아들 코시모는 이걸 평생을 모토로 삼았다고 합니다. 철저히 이를 지켰다고 해요. 그래서 아무리 부유했어도 항상 시내를 다닐 때에는 노새를 타고 다녔고요.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주인공이어도 그 공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고 철저하게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었던 인물이었다고 해요.
생각해보면 인기가 정말 많을 수밖에 없기는 해요. 피렌체를 위해 이 부유한 인물이 항상 어딘가를 자비를 들여서 보수하고 장식하고. 또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도록 하는 곳에 예술가들과 학자들이 항상 모여서 토론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게다가 겸손한 모습으로 노새를 타고 다니는 피렌체 최고의 거부. 잠깐 일론 머스크나 아마존 대표가 이런다고 상상을 해 보세요. 잠깐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대신 달구지 타고 다니는 걸 상상했더니 '내가 실수를 했구나' 라는 생각도 드는데, 우리나라 재벌로는 좀 상상이 안 되니까 그렇게 한번 상상을 해보면, '정말 겸손하구나, 대단한 인물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표면적으로는 어떤 지배자 역할을 했던 적이 없지만, 피렌체 공화국 시민의 지위에서 존경받는 어른 역할을 했던 코시모 일 베키오가 죽었을 때 피렌체인들은 오히려 그의 이름 앞에 피렌체 국가의 아버지라는 의미에서 '파테르 파트리아에', 즉 국부라는 칭호를 주었는데요. 유언으로 소박하게 묻히고 싶다는 말을 남겼지만, 피렌체인들은 그의 유언 대신 오히려 더 화려하게 국장으로 장례를 치를 만큼 정말 피렌체인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물론 무덤 역시 메디치 가문의 성당인 산 로렌츠 성당 앞에 아름답게 장식되어서 묻혀있습니다.
정치적으로 피렌체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코시모 일 베키오. 그런데 이 수혜를 가장 많이 받았던 건 사실 메디치 가문의 후계자들이었겠죠. 코시모는 아들이 있긴 했지만, 아들이었던 '피에로 일 고토소'라는 인물은 그 별명, '일 고토소'라는 뜻이 '통풍 환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몸이 약하기도 해서 그가 사망하고, 사실 그 아들인 '로렌초'라는 인물이 메디치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게 되는데요.
우피치 미술관에서 앞서 말씀드린 코시모 일 베키오, 국부 코시모의 조각과 함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 조각도 한 켠에 함께 서 있어요. 코시모는 국부로 표현이 되어 있다면, 로렌초의 이름 뒤에는 '일 마니피코', 즉 '위대한 자'라고 하는 별명이 함께 붙어 있어요. 이 위대한 자, 로렌초라고 하는 사람은 굳이 표현을 하자면 재벌 3세쯤 되는 인물인데요. 이 로렌초가 성장을 하던 때에는 이미 할아버지인 코시모 일 베키오가 명실상부하게 메디치 가문을 완벽하게 키워놨었고요. 피렌체는 사실상 완전히 그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고 볼 수가 있기 때문에 로렌초는 어릴 때부터 후계자 수업을 거의 받았다 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재능이 있었던 후계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로렌초 일 마니피코 같은 경우에는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피렌체를 잘 이끌었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인문학의 수혜를 입었던 만큼 이 로렌초 본인 역시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했고요. 또 마찬가지로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을 후원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에 성장하고 이름을 알린 예술가들은 우리가 사실 이탈리아 여행하면서 제일 많이 듣게 되는 이름들이거든요. 예를 들면 산드로 보티 첼리나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16세기 르네상스 전성기라고 불리우는 시기, 그 시기에 메디츠 가문의 지도자였어요.
그런데 정치적으로나 예술적으로는 피렌체에서 사랑받는 지도자였지만, 할아버지 때와 다르게 사업 경영에는 굉장히 무심한 편이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메디치 가문의 원래 사업이었던 은행, 금융업 쪽은 거의 파산에 가까울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디치 가문은 이제 완연하게 그저 부유한 피렌체의 가문 중에 하나가 아닌 유럽의 여타 왕족이나 귀족 가문의 수준으로 지위가 높아지게 되는데요. 예를 들면 이 로렌초 일 마니피코의 둘째 아들 조반니가 레오 10세 교황이 되고요. 또 조카였던 줄리오는 클레멘스 7세 교황이 됩니다. 또 그 후손 중에 카텔나 데 메디치와 마리아 데 메디치라는 여인들은 프랑스 왕가로 시집을 가서 바로 메디치 가문에서 프랑스의 두 명의 왕비를 배출하기도 하죠. 이제는 왕가와 견주는 유럽 최고의 명문가가 된 메디치 가문인데요.
이후 16세기에는 이 코시모 때의 직계가 끊기기는 했지만, 이후 '코시모 1세'라고 하는 방계의 또 다른 인물이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지방을 통합하면서 '토스카나 공국'으로 변모를 합니다. 그래서 14세기부터 사실상 피렌체를 이끌었던 메디치 가문은 이제 두 세기 만에 완벽하게 메디치가 피렌체의 군주 역할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피렌체 여행을 할 때는 바로 이 첫 번째 토스카나 대공이었던 코시모 1세 흔적을 가장 많이 만나게 되기도 해요. 참고사진에 기마상 하나가 있는데요. 시뇨리아 광장에 있는 코시모 1세 조각상이에요.
원래 그전까지는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에 메디치 가문이 살았었는데 이때부터, 즉 코시모 1세부터 피렌체 정부 청사 역할을 했던 '베키오 궁전'으로 바로 메디치 가문이 이사를 가서 살아요. 그리고 현재 우피치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바로 이탈리아어로 우피초, 영어로 오피스. 바로 사무실이 원래는 메디치 가문과 피렌체이 행정관들이 나랏일을 보는 사무실이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여기를 개조해서 '우피치 미술관'으로 쓰고 있는 거죠. 그러다 나중에 피티 궁전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기마장 다음의 참고사진처럼 베키오 궁전부터 베키오 다리를 지나 피티 궁전까지 그 위를 지나가는 메디치 가문의 전용 통로를 따로 만들기도 했었죠. 그 외에도 선대들의 전통을 따라서 코시모 1세 이후의 메디치 가문의 후손들도 계속 예술가들과 다양한 학문을 후원을 했고요. 또 예술 작품도 마찬가지로 계속 수집을 하는 것이 현재의 피렌체에 남아 있게 됩니다.
가끔 메디치가 하면 손에 후손이 남아 있을까? 궁금해하시는 경우들이 있는데, 직계 자손은 18세기에 끊겼어요. 마지막 자손 중의 하나이자 마지막에 숨을 거둔 사람이 안나 마리아 루이자 데 메디치라는 여인인데, 이 마지막 후손,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메디치 가문의 수많은 유산, 재산들을 정리하면서 이 모든 재산을 피렌체 외부로 반출하지 않겠다는 조건 하에 피렌체 유산으로 남기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을 정리한 결과가 현재 여러분들이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의 예술 작품들이 되었고요.
앞 챕터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르네상스가 피렌체에서 꽃피우고 또 유독 많은 천재들이 이 시기 피렌체에서 나타날 수 있었던 건, 중세 말엽 이 지역에서 상공업이 꽃피우고 시민들의 권리가 높아지고 흑사병으로 죽음과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서 종교 권력이 약해지던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도 있었던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같은 조건하에 다른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에는 메디치 가문이 존재하지 않았죠? 이렇게 도시 전체가 활발하게 예술을 후원하고 문화를 연구하고 도시 자체를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전쟁하는 곳은 피렌체밖에 없었어요. 그리고 분위기를 만들고 적극적으로 후원했던 건 다름 아닌 바로 메디치 가문이었죠. 때문에 피렌체를 여행하는 동안 수많은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함께 배경에 메디치 가문이 나온다면 꼭 기억을 해주세요.
뛰어난 사업가이자 정치가이자 동시에 예술을 사랑했던 국부 코시모, '코시모 일 베키오'. 그리고 손자로 피렌체 르네상스 예술의 정점기를 이끌고 메디치 가문을 유럽 명문가로 발돋움시킨 코시모의 손자, 위대한 자 '로렌초 일 마니피코'.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위기가 왔을 때 피렌체를 공화국이 아닌 토스카나 대공국으로 변모를 시키면서 피렌체의 군주가 되었던 '코시모 1세'. 마지막으로, 이 모든 메디치 가문의 유산을 한 개인이나 다른 곳에 파는 것이 아닌, 마지막까지 피렌체와 피렌체 사람들을 위해 남겼던 가문의 마지막 후손, '안나 마리아 루이자'까지 기억해 주시면 완벽할 겁니다. 메디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피렌체이기 때문에 거닐다 보면 재미있게 메디치 가문의 예술품을 찾는 즐거운 보물 찾기 시간이 될 텐데요.
혹시 여행하기 전에 좀 공부하면서 재미있게 메디치 가문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어느 정도 각색된 부분은 감안을 하더라도 이탈리아 국영TV인 Rai에서 제작한, 하지만 배우들은 영어를 쓰는 라고 하는 드라마가 있어요. 시즌 1은 국부 코시모, 시즌 2, 3는 위대한 자, 로렌초 시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여행 전에 그리고 여행 다녀와서도 보셔도 재미있을 겁니다. 그리고 혹시 책 읽는 거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이미 100년 전에 쓰여지긴 했지만, 교양 도서보다는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도록 나온 책 한 권 추천 같이 드릴 거예요. 링크에다가 넣어놨는데 물론 깊이 있다는 말이 책의 두께가 상당하다라는 의미가 되긴 하지만 읽다 보면 재미있게 깊이 알 수 있는 <메디치 가문 이야기> 책도 추천을 드립니다.
여행자로 유럽에 날아왔다 역사와 예술을 이야기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 현지 가이드로 활동한 것이 어느새 9년!
웅장한 건축물만 봐도 감탄을 자아내는 이탈리아지만, 역사 속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해드릴때마다 눈이 동그래지는 여행자를 만나는게 너무 즐거워요.
알면 알수록 더욱 놀랍고 흥미로운 역사와 예술 이야기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해드릴게요.
여러분의 여행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는 '비타민 가이드' 키아라와 함께 해요!
- 경력사항
유로자전거나라 이탈리아 현지 가이드
이탈리아 국가 공인 가이드 자격증 보유
서울 <고유공간>/ 부산 <두두디북스>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도시 여행 4부작 강연
유럽여행 콘텐츠 기획 및 제작
유럽여행 전문 여행플래너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