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조르노! 이탈리아의 역사, 예술을 재미있게 전해드리는 이탈리아 국가 공인 가이드 키아라입니다. 오늘 함께 여행할 곳은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성당 중 하나,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인데요. 앞으로 투어에서는 짧게 줄여서 프라리 성당이라고 부를 예정이예요.
이 곳은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성당, 아무래도 첫번쨰는 산 마르코 성당이겠죠? 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여행자들이 방문하는 성당이 바로 이 곳 프라리 성당이예요. 개인적으로도 베네치아에서 조금만 시간 여유가 된다면 꼭 이 성당을 가보라고 추천하는 장소인데요. 다름이 아니라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화가 티치아노. 그 이름 많이 들어보셨죠?
보통 미술관에 가야 만날 수 있는 티치아노의 작품을 두점이나 만나볼 수 있는 성당이기도 하구요. 또 무엇보다 거장 티치아노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베네치아를 통치했던 총독, 베네치아말로 도제라고 하죠. 도제들의 무덤이나 또 다른 예술가, 안토니오 카노바라는 조각가의 무덤도 있는 곳인데요. 즉, 베네치아 역사와 예술과 관련된 중요한 인물들의 이야기와 작품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는 성당이라는 것이죠.
성당 중요한 부분만 짧고 굵직하게 보셔도 약 20분에서 30분 정도 감상할만한 규모구요. 성당 내부에서 설명을 꼼꼼하게 다 듣게 된다면 넉넉하게 40~50분 정도 예상하시면 되는데요. 볼 것이 많은 곳이다보니 이 곳은 현지 오디오가이드가 준비되어 있기는 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여기도 한국어 서비스는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만들었어요. 편하게 성당 내부 둘러보면서 현지 공식 오디오번호와 같은 번호로 둘러보셔도 좋구요. 제가 추천하는 동선 위주로 보셔도 괜찮습니다. 편하게 둘러보시면서 즐거운 여행되시면 좋겠는데요.
다만 잊지 마실 것은 성당이기 때문에 성당 입장시간 미리 확인하시는 것 필요하겠죠? 또 유럽 다니다보면 익숙하겠지만 복장 규정! 여름이면 민소매, 너무 짧은 반바지, 스커트 등은 가릴 것 필요하다는 것 잊지 마시구요. 여기는 입장료가 소액이지만 발생합니다. 그래서 어린 친구들이나 학생분들은 할인요금 적용 받으시려면 여권이나 국제학생증 같은 신분증 지참하는 것도 함께 챙겨두세요.
자, 이제 실제 투어는 성당 정면에서 에서 시작할게요! 투어 구매하면 와이파이 환경일 때 투어는 바로 다운로드 해두시는걸 추천드립니다. 베네치아 특성상 바다 위에 있다보니 특히 이탈리아 다른 지역보다도 갑자기 통신이 약해지는 경우들이 자주 발생해요. 투어 듣다 불편함 없도록 미리 다운로드 해두시구요.
프라리 성당의 기본 역사
네, 프라리 성당 앞에 잘 도착하셨나요? 보통 이 앞에 그늘이 잘 없는 편이죠. 성당의 역사 자체를 길게 설명할 건 아니라서 간단하게 편한 자리에서 보고 바로 성당으로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이 곳에는 1231년 야코고 티에폴로 총독이 기증한 부지에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이 수도원을 만들었던 것을 시작으로 1250년 4월 28일 본격적으로 영광스러운 성모 마리아를 위한 성당이라는 의미에서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라는 이름으로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프라리는 베네치아 방언으로 수사를 의미하니까 여기에 원래 수도원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1220년 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베네치아에 도착했을 때, 성무일과를 방해하는 새소리에 새들에게 조용히 할 것을 요청하자 새들이 모두 그 말에 따랐다고 합니다. 프란체스코 성인은 동물들과도 대화했던 것으로 유명하죠~ 이 일을 계기로 베네치아 최초에 프란체스코회의 성당이 세워지게 되는데 그 다음으로 지어진 것이 바로 이 곳 프라리 성당이라빈다.
당연히 이 성당 짓는데 꽤 오래 걸렸다는 것쯤은 이제 유럽여행하면서 예측되실 거예요. 처음 지었던 성당은 1336년 그러니까 공사 시작하고 약 80년만에 완공이 되긴 했었는데 또 시간이 지나 공간이 부족해져 증축 공사를 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1440년에야 여러분이 지금 보고 계신 정면이 완성되었구요. 주요 제단은 1469년 봉헌되고 물론 내부는 그 이후 계속 꾸며졌는데 그 내용은 잠시 후 들어가서 보면서 이야기를 드릴게요. 다만 규모상 베네치아에서 가장 큰 성당에 속하는 편이구요. 그래서 입장하면 생각보다도 더 볼 것이 많습니다.
자, 이제 성당 들어가면 입장 티켓 구입하고 중앙 회랑 가운데에서 제 이야기 다시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성당 내부투어 시작할게요. 들어갈 때 여름이라면 복장 점검 해주시고, 남자분들은 모자 쓰신 경우 모자 벗어주셔야 하구요. 내부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1) 격벽
성당 내부 잘 들어오셨나요? 그러면 양쪽을 비롯해서 사방이 화려한 벽면 장식으로 가득하겠지만 첫번째 참고사진처럼 성당 중앙 회랑 가운데 ‘격벽’이라고 불리우는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 문 앞까지 찬찬히 가면서 들어주실게요.
성당 높이가 약 28m, 길이가 102m나 되다보니 꽤 널찍하죠.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원통형 기둥이 3개의 회랑으로 공간을 나누지만 그럼에도 시원시원함이 느껴지는 공간입니다. 조금 독특한 것은 아치 사이사이마다 모두 목재 기둥으로 서로 받치도록 되어 있죠?
네, 베네치아가 섬 위에 지어진 곳이다보니까 지반이 약하다는 건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그래서 실제 다니다보면 건물 밖에서 보는 창문도 삐뚤빼뚤해진 경우도 있고 하거든요.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베네치아에서 조금 규모가 큰 곳을 다니다보면 건물의 하중 분산을 위해 이렇게 목재 기둥을 박아두는 경우들을 볼 수 있으니까 참고해주세요.
격벽 가까이 도착하셨나요? 이 격벽은 잠시 후에 지나가면서 보게 될 안쪽 성가대석을 둘러싼 장식인데요. 베네치아는 아니고 밀라노쪽 지역을 롬바르디아 지역이라고 하거든요. 우리로 치면 충청도, 강원도, 이런 도 정도의 개념인데 롬바르디아 공방에서 만들었습니다. 아치 문 위에만 베네치아 출신인 비토레 감벨로라는 16세기 초 예술가가 만든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의 조각상과 그 외 프란체스코 수도회 성당이었다보니 프란체스코 성인, 안토니오 성인을 비롯한 성인들의 조각상이 함께 서있어요. 격벽 부조에는 구약 속의 인물들, 예언자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자, 사실 여기서 시간을 오래 끌 건 아니고 이 벽 너머로 가장 안쪽에 보이는 중앙 제단의 제단화가 이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인데요. 이 격벽과 그 위 십자고상, 그리고 아래 티치아노의 제단화까지 함께 보는 모습도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 같습니다. 전체적인 모습을 먼저 한 번 눈에 담고 가장 안쪽 제단화가 있는 곳까지 가보도록 할게요.
(2) 티치아노 <성모승천>
안쪽으로 들어와 중앙 제단 앞. 티치아노의 ‘성모 승천’을 함께 감상해볼게요. 제단화 앞쪽으로 의자가 마련되어 있죠. 컨디션 따라서 필요하신 분들은 의자 이용하면서 편하게 들어주시면 됩니다.
우리 찬찬히 그림을 먼저 볼까요? 유럽 성당이나 미술관에서 굉장히 자주 볼 수 있는 주제, ‘성모 승천’ 이탈리아어로 산타 마리아 아순타 라고 하는 주제를 전형적으로 묘사한 모습입니다.
성모는 돌아가신 후 영혼 뿐 아니라 그 육체까지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지만 카톨릭에서는 8월 15일을 성모승천 축일로 기념하며 굉장히 중요한 날로 여겨요. 그래서 그림에서 항상 하단에는 성모 마리아의 장례를 치르고 있던 예수의 제자들의 모습이 묘사되구요. 그 위로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와 하늘에서 이를 맞이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묘사되는 것이 전형적인 구도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성모승천을 묘사한 작품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티치아노의 작품. 놀랍게도 불과 약 스무살이 갓 넘었던 20대 초반의 티치아노가 1516년~1518년 사이에 이 그림을 그렸는데요. 이말인즉슨 사실상 이 작품이 티치아노가 스승으로부터 독립하고 화가로서 베네치아에서 정식 데뷔했던 작품이라는 거예요.
사실 요건 비하인드가 있긴 한데 원래 이 제단화의 주문은 티치아노의 스승이었던 조반니 벨리니가 맡을 가능성이 더 높았던 것 같아요. 다만 이 스승이 사망하면서 그 주문을 대신 승계받은 것이 바로 제자 중의 하나였던 티치아노였던 거죠. 그런데 참 흥미로운건 이 제단화를 주문했던 프라리 수도원에서 1518년 3월 20일, 이 작품이 첫 정식 공개되었을 때 수도사들은 이 그림을 보고 당혹스러워했다고 해요.
수도사들이 대체 왜 당황했을까요? 여러분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조금 이따 더 설명드리겠지만, 게다가 사실 이 그림은 베네치아 회화에서 전통을 깬 혁신적인 스타일의 그림으로 평가를 받거든요. 왜 그랬을까?
일단 쉬운 거 먼저 하나 보여드리자면, 아래 제자들의 모습을 한 번 볼까요? 그 중에 특히 눈에 띄는 종아리 하나… 네 참고사진에도 제가 좀 더 크게 볼 수 있도록 확대그림 올려놨는데 하늘을 향해 양팔을 들고 있는 붉은 옷의 남자..를 비롯해서 사도들의 포즈가 굉장히 역동적이죠. 사실 티치아노는 시기적으로 피렌체에서 르네상스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의 후배 즈음에 해당하는 사람이거든요. 네, 그래서 이 포즈들은 사실상 그런 영향이 느껴지는 부분인거죠. 문제는 이런 부분이 고전적인 베네치아 회화에서는 없던 스타일이다보니 사도들의 모습이 너무 근육질이다, 어부같다 이런 지적들이 실제 나왔다고 하구요. 실제로 티치아노는 이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베네치아 어부들이 일하는 동작들을 보면서 스케치를 했었다니 굉장히 사실적이고 자연스럽긴 했나봅니다.
자, 이렇게 장례를 치르다 승천하는 성모를 보며 화들짝 놀란 사도들의 시선을 따라 중앙으로 성모 마리아의 모습도 함께 볼까요?
사실 이 그림을 딱 보자마자 가장 먼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바로 이 성모일텐데요. 천사들이 밀어올려주는 구름 위, 하늘로 승천하는 성모는 양팔을 들어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표현하고 펄럭이며 아래로 주름지며 떨어지는 붉은 로브는 바람이 느껴지는 듯 생생하게 옷자락의 움직임을 전달합니다.
하느님은 단축법으로 묘사되서 하늘에서 마리아를 맞이하기 위해 내려오는 순간의 모습이 묘사되는데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의 배경에는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빛이 그들을 감싸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 빛으로 승천하는 성모와 하느님이 계신 윗 부분, 그리고 그 아래 낮게 깔린 구름 아래 사도들이 있는 어둑한 저녁 즈음의 하늘은 지상을 표현하면서 그림을 크게 이분할하구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성모와 그 아래 사도 중에 두 사람이 붉은 옷을 입고 있는 구도가 마치 피라미드처럼 삼각형 구도를 그리면서 제단화 전체에 시각적인 균형과 안정감을 주고 있어요.
아까 처음 이 제단화를 접했던 주문자 프라리 수도회에서는 이 그림이 베네치아의 전통적인 그림과 달라 난색을 표했다고 말씀드렸었는데요. 흥미로운건 주문자가 티치아노의 이 제단화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사절이자 대사로 베네치아에 왔던 사람이 이 제단화를 구입하고 싶다 하게 되요. 그러자 수도회에서는 이 그림이…?? 하며 다시 보였겠죠?
사실 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제단화 이 그림 자체도 훌륭하지만, 이 제단화로 놓일 것을 감안하고 공간과 어울리도록 한 티치아노의 재능도 엿보이는데요. 티치아노를 필두로 한 베네치아 화가들을 설명할 때 같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지만 피렌체가 소묘, 그러니까 선으로 그림을 그렸다면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채를 중심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도 물론 일부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같은 르네상스 시대 선배 화가들의 구도나 표현방법에서의 영향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작품 자체가 베네치아 회화에서 혁신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색채감 때문인데요.
여러분이 실제 베네치아 여행을 하다보면 바다 위의 도시답게 끊임없이 일렁이는 운하에 시시각각 빛이 떨어지는 순간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보실 수가 있을거예요. 또 수면에 반사되는 이 빛이 건물에 그림자가 아닌 빛으로 또 다른 일렁임을 만들어내기도 하죠. 베네치아 화가들은 도시 전체가 하늘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빛, 그 빛을 색으로 표현하고자 했었고 이 지역 특성상 이탈리아 다른 도시보다 가장 빠르게 유화가 도입이 되었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목판에 유화로 제작이 되었는데 이 선명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묘사하면서 무엇보다 이 중앙 제단과 어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 같아요. 잠시 그 다음 참고사진 보실까요?
중앙 제단을 둘러싼 스테인드글라스. 이 창에 빛이 들어올 때… 따뜻한 햇살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이 그림을 감싸면 마치 승천하는 성모를 둘러싼 그 빛 속에 이 그림이 있는 듯 느껴집니다.
처음 주문자들은 이 그림을 난감해했었지만 대신 구매하겠다는 사람 뿐 아니라, 그림이 공개되고 사람들의 반응이 너무 좋자 자연스럽게 원래 자리인 이 곳 중앙 제단에 그대로 놓여지게 되었구요.
스승 조르조 바사리가 사망하면서 대신 그 주문을 이어받았던 티치아노는 20대 초반, 화가로서 자신의 명성을 이 그림과 함께 베네치아에 널리 알리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자연의 색을 담으려고 노력했던 베네치아 화가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티치아노의 이 아름다운 색감, 그리고 전체적인 공간과의 조화 꼭 잊지 마시고 감상해보시구요. 그 다음 티치아노의 행보는 어땠을 지 이 곳에 티치아노의 작품이 한 점 더 있기 때문에 공식 오디오 번호 지도에서는 11번 위치. <페사로의 마돈나>라는 작품 설명드릴 때 이어서 티치아노 설명 전해드릴게요.
지금은 감상 먼저 하시고, 동선상 편하게 이동하면서 오디오번호 있는 지도와 함께 위치 확인하면서 편하게 이어들어주세요.
(3) 산 마르코 예배당
자, 이번에는 중앙 제단 바라보고 왼편으로 가장 안쪽에 위치한 산 마르코 예배당을 보고 계시는데요. 1420년 코로나로 가문에서 이 예배당을 만들도록 했기 때문에 코로나로, 또는 또 다른 발음으로 코너 예배당이라고도 부릅니다.
산 마르코 예배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름이 아니고 이 예배당 제단화 때문인데요. 정면에 화려한 금박 장식으로 둘러싸인 3폭 제단화가 있죠. 한 가운데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인 마가, 즉 마르코 성인이 화려한 대리석 옥좌에 앉아있죠. 그 주변을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구요. 그 왼쪽에는 낙타털옷을 입은 세례자 요한과 고대 로마 시대 라틴어로 성서번역을 했던 제롬 성인이 그려져 있어요. 그리고 오른쪽에는 바오로와 니콜로 성인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제단화는 지금의 네덜란드, 벨기에 지역인 플랑드르 지역에서 유화를 들여왔던 안토넬로 다 메시나의 제자인 바르톨로메오 비바리니가 그린 작품이구요. 보통 성당에 이런 예배당을 꾸미는 것은 유력가문이 후원하잖아요. 그리고 그 공간에는 자연스럽게 해당 가문 인물의 무덤이 자리하기 마련이죠,
그래서 한쪽 벽면을 보면 참고사진처럼 기념비 하나가 있을텐데요. 이 예배당의 후원자 코로나로 가문 중 1382년에 사망한 페데리코 코로나로라는 인물의 기념비입니다. 베네치아와 제노바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무역을 하며 성장한 도시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같은 바다 지중해를 두고 특히 11~13세기 사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쟁이 계속 되었어요. 그 중 마지막인 4차 키오자 전투에서 활약했던 인물이 바로 이 페데리코 코로나로라고 하는 인물입니다. 자, 또 다른 예배당은 어떤 곳이 있을 지 이동하면서 편하게 궁금한 곳마다 들어주세요.
(4) 밀라네지 예배당
밀라네지 예배당이라고 불리우는 이 곳은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도사들 중에서도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 지역 출신들이 묻힌 공간입니다.
그래서 이 공간을 둘러싼 모든 그림 속 주인공은 밀라노의 수호성인 암브로시오 성인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요. 예배당 정면에 있는 제단에는 암브로시오 성인을 둘러싼 천사들과 8명의 성인을 묘사하고 있고, 그 위쪽 발코니처럼 되어 있는 공간으로 성모가 아들 예수에게 대관을 받는 장면이 함께 묘사되어 있습니다.
알비제 비바리니라는 화가가 그리기 시작했지만 도중에 사망하면서 1503년 마르코 바사이티라는 화가가 완성을 했는데요. 사실 이 예배당은 다른 것보다 바닥에 있는 한 인물의 무덤때문에 찾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바닥에 보면 헌화가 보통 항상 되어있는 편인데요. 참고사진처럼 꽃이 놓여있는 자리에 자세히 보면 이름이 적혀 있어요. 클라우디오 몬테바르디. 네, 찾으셨죠?
벽쪽에는 그의 흉상도 마련이 되어있는데요. 이탈리아 음악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17세기 초를 중심으로 활동한 궁정음악가이자 작곡가였는데요. 사실상 제대로 된 오페라 장르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오르페오라는 작품을 시작으로 오페라가 확립되는 시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예요. 고향 크레모나와 또 만토바에서 오랜 시간 궁정음악가로 활동하다가 말년에 베네치아에 정착하게 되었는데요. 다름아니라 1613년부터 산 마르코 성당의 악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입니다. 굉장히 성공적인 활동이었기 때문에 베네치아인들의 사랑을 받았구요. 당시 꽤 장수했던 인물로 1637년에는 그의 탄생 70년을 기념하면서 베네치아에서 산 카시아노라는 오페라 극장이 개관을 합니다. 그 전까지는 오페라가 귀족과 부유한 이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이 극장은 세계 최초의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오페라… 바꿔말하면 돈만 내면 누구든지 오페라를 즐릴 수 있는 극장이 처음 만들어졌다는 거죠. 몬테베르디는 그로부터 6년후인 1643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이 곳, 여러분이 지금 보고 계신 자리에 묻히게 됩니다.
평생을 이탈리아 음악을 이끌었던 작곡가 몬테베르디이자 오페라극장의 대중적인 시작을 알렸던 베네치아. 베네치아에서도 그 시작점이었던 인물의 무덤 함께 보셨습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해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