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탈리아의 예술과 역사를 재미있게 소개해드리는 키아라 가이드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곳은 베네치아 나름 유명하면서도 또 은근 숨어있는 곳에 위치한 탄식의 다리입니다. 베네치아 총독 관저이자 정부청사처럼 사용되었던 두칼레 궁전과 그 옆에 있는 건물을 잇는 다리를 탄식의 다리라고 하는데요.
베네치아 본섬을 연결하는 400개가 넘는 다리 중에 유일하게 완벽하게 닫혀있는 형태의 다리라서 사실상 터널 형태라는 점에서도 독특한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이런 역사 관련한 부분은 본 투어에서 이야기 드리는 것으로 하고요.
강조드릴 것 한가지가 있습니다. 다른게 아니라 바로 소매치기인데요. 탄식의 다리를 구경하기 위해 위치상 그 앞의 다리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는 편입니다. 대체로 늘 이 지역이 수많은 관광객들이 이동하면서 탄식의 다리도 보고 사진도 찍다보니 당연히 이 곳도 베네치아 소매치기들이 제일 활발한 곳이예요. 리알토 다리처럼요!
그래서 이 투어는 탄식의 다리를 보면서 듣지 마시고, 미리 들으셔도 되고 또는 그 근처 제가 알려드리는 위치에서 조금 쉬어가면서 들어주셔도 좋아요. 아! 그리고 혹시 탄식의 다리를 직접 들어가서 건너보고 싶다 하시는 경우가 있으실 수도 있을텐데요. 그 경우는 두칼레 궁전, 팔라쪼 두칼레를 입장하면 탄식의 다리까지 들어가보실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설명 듣는 장소 추천
혹시 인사말을 건너뛰고 바로 본 투어를 들었다가 탄식의 다리를 보기 위한 인파에 이미 깜짝 놀라셨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그 인파에 소매치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 투어에서는 인사말 부분을 생략하셨을까봐 따로 챕터를 만들었습니다.
보통 탄식의 다리를 정면에서 보기 위해서는 참고사진처럼 그 앞의 폰테 델라 팔리아, 팔리아 다리를 건너면서 보게 되는데요. 사진 속에서 가운데 다리들 왼쪽으로 아름다운 건축물의 아치 회랑들이 보이시죠.
여기가 베네치아 두칼레 궁전 회랑인데 보통 이쪽이 그나마 한산한 편이예요. 소매치기 조심하면서 사진 먼저 담고 이 자리에서 종종 의자에 자리도 나니까 쉬면서 설명 들어주셔도 좋고, 반대로 설명 듣다가 사람 없는 타이밍에 후다닥 사진 찍으러 다녀오셔도 좋답니다.
탄식의 다리 외관과 역사
Ponte dei Sospiri, 탄식… 한숨… 왜 이 다리에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양쪽 건물을 잇는 이 다리의 용도를 알게 되면 바로 아~ 하고 이해가 되는 그런 다리입니다.
다리 왼쪽에는 이미 지나오면서 보신 분들도 계실텐데 베네치아 정치의 중심. 두칼레 궁전이구요. 다리 오른쪽은 증축되면서 감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예요.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총독 관저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모든 일을 관장하는 곳이기도 했잖아요. 두칼레 궁전에서 재판도 열렸는데 이 재판에서 감옥으로 가는 길이 바로 저 탄식의 다리였던 거죠.
오른쪽의 감옥이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다보니 다리도 16세기 말~ 17세기 초 사이에 만들어졌는데요. 흥미로웠던 것이 리알토 다리를 만들었던 안토니오 다 폰테! 이미 리알토 다리 투어를 저와 함께 들으신 분들을 기억하실 거예요. 그 안토니오 다 폰테의 손자인 건축가 안토니오 콘틴이 당시 베네치아 총독, 도제인 마리노 그리마니의 명령으로 이 다리를 만들었다고 해요.
죄수들이 건너는 다리다보니 이제서야 유독 다리치고도 폐쇄적이구나 싶을 텐데요. 다리를 보시면 네모난 창문이 2개가 있습니다. 찾으셨나요? 못찾으신 분들은 화면속 사진을 봐주세요. 보시면 바로크 스타일의 다리지만 창문이 유독 작죠? 죄수들이 지나가는 다리였다보니 창문이 클필요가 없었을거같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내부에 들어가실수가있는데요 저기를 걸어보시려면 두칼레 궁전입장을 하시게되면 두칼레 궁전에서 죄수들이 지내던 감옥으로 넘어가면서 실제 이 다리 내부를 통해서 지나가 보실수있습니다. 두칼레 궁전 내부에도 볼거리가 많으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들어가 보는걸 추천합니다. 하지만 직접 들어가지 않는분들도 계실거기때문에 사진으로라도 탄식의 다리 내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대부분은 여기 직접 들어가시지 않는 경우가 더 많으시니까 사진으로라도 탄식의 다리 내부 모습 보여드릴게요.
탄식의 다리 내부
탄식의 다리 내부에 대해서 가이드북 같은 데 보면 굉장히 비좁다고 써있는데 실제 제가 가보았을 떄는 제가 체구가 작은 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덩치 좋은 남자 둘이 약간 비좁게 지나가는 정도? 그래서 아.. 가이드북이 꽤 과장해서 썼구나..란 생각을 조금 했었습니다. 참고사진 보셔도 사람들 서 있는 모습 보면 아주 막 좁지는 않을 거예요.
다만 밖에서 보면 우아하고 하얀 터널같았던 다리 안에서 보면 창살이 참 빽빽해요. 그 와중에 창살 너머로 보이는 베네치아 산 조르조 성당과 베네치아 풍경이 그래서 더 애틋한… 그래서 감옥으로 건너가며 볼 수 있는 마지막 풍경이 이 풍경이라면 탄식이 나올 법도 하다라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흥미로운 건 원래 이 다리를 탄식의 다리라고 원래 불렀던 것은 아니고 영국 낭만파 시인 바이런이 베네치아를 방문하고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라는 시집 중에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나는 베네치아 한숨의 다리에 섰네. 양쪽 편에 궁전과 감옥을 두고’
이 표현 이후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탄식의 다리라고 불리워졌다고 하는데요. 자, 그렇다면 우리 잠시 다리와 관련된 건 아니지만 이야기 나온 김에 다리를 건너면 이어지는 감옥은 어떤 모습이었는 지 사진으로 살짝 보여드릴게요.
탄식의 다리와 연결된 감옥
지금 보여드리는 자료들은 제가 실제 감옥 탐방했을 때 찍은 동영상을 캡쳐한 것들인데요. 원래 두칼레 궁전 가장 아래층에 있었던 감옥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악취가 두칼레 궁전까지 올라오자 감옥 전용 건물을 따로 만들기로 결정을 하게 되요. 1563년 조반니 안토니오 루스코니가 설계를 시작했고 마무리는 리알토 다리를 설계한 안토니오 다 폰테가 하게 되었는데요. 놀랍게도 국가차원에서 교도소 목적으로 만든 건축물은 이 곳이 유럽 최초라고 하더라고요.
감옥 내부는 당연히 복도 천장 자체도 낮은 편이고 방도 좁고 돌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습기때문에 감옥 특유의 음산한 기운이 감돌더라고요.
대신 바깥에서는 일반적인 건물처럼 보이지만 유럽 건물들이 보통 중정 형식이 많잖아요. 이 곳 역시 참고사진처럼 감옥 안쪽으로 중정이 있어서 작지만 우물도 있더라고요. 이전 두칼레 궁전에 있을 때보다 채광과 환기가 좀 더 되도록 만든 구조에 집중했을 뿐 장식적인 요소는 전혀 없기 때문에 굉장히 견고한 느낌이 드는 감옥이었습니다.
실제로 방은 굉장히 좁은 곳도 있고, 사진처럼 침대 형태가 남아있는 곳도 있었는데요. 죄의 경중에 따라 나눠졌었고, 또 어떤 방에는 작은 방 하나에 최대 20명까지도 들어갔었다고 해요. 감옥 전체로 보면 약 400명까지 수용할 수 있었던 꽤 큰 규모의 감옥으로 층도 여러 층으로 나눠져있는데 흉악범들이 주로 가장 아래층에 배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네… 물이 자주 범람하는 베네치아 특성상 가장 침수가 잘 되는 곳이 가장 아래층이니까요.
실제로 굉장히 두꺼운 문에 창살과 자물쇠가 전부 엄청 두꺼워서 절대 탈출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또 너무 습한 환경에 병드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는 이 감옥을 탈출한 유명한 한 사람이 있죠. 베네치아 출신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짧은 이야기지만 그래도 그냥 지나가기 아쉬우니 다음 챕터에서 이어 들려드릴게요.
감옥을 탈출한 유일한 사람, 카사노바
베네치아하면 떠오르는 인물들 여럿이 있을 거예요. 가깝게는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알베르토부터 동방견문록의 마르코 폴로는 공항으로 입국하면서부터 듣게 되구요. 또 여행하면서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계 음악 소리에 비발디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 바로 ‘바람둥이’의 대명사로 알려진 카사노바도 베네치아 출신이예요. 카사노바는 말년에 자서전을 쓰게 되는데 스스로 유럽 곳곳을 다니며 만났던 여인들에 대한 기록을 자세히 남기면서 바람둥이 그 자체처럼 알려지게 되었죠. 자서전에 본인이 밝힌 것만 평생 만난 여인이 122명이라고 했을 정도니 맞긴 맞는데..
어릴때부터 이탈리아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하고, 다양한 학문에 조예가 깊기도 했고 도박과 마술, 화술까지 뛰어난, 말 그대로 난 인물이었어요. 이미 17세 그러니까 우리나이로 바꿔봐도 19살 즈음에 파도바 대학에서 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었고, 언어는 뭐 천재적이었다고 하니 보통 인물은 아닌데 우연히 한 베네치아 귀족이 뇌졸중으로 쓰러질 때 옆에 있다 병간호로 그를 돌봐주고 양자로 입적이 된 후에는 베네치아 사교계를 그냥 접수했다고 보면 됩니다.
문제는 왜 감옥에 가게 되었느냐는건데… 뭐 여러분… 설이니까 이 다음부터는 기록에 따라 이야기들이 조금씩 다 다르다라는 것만 알아주세요. 풍기문란이라는 설도 있고, 그 대상이 프랑스 대사 부인이라 국가 기밀을 프랑스에 흘려서라는 말도 있고, 당시 고위 귀족의 딸을 건드려서라는 말도 있고… 암튼 보통 흉악범만 가는 그 감옥에 5년 구금 선고를 받게 된 이유는 정확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더 놀라운 건 정말 아무도 탈옥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감옥을 투옥된 지 일년 육개월만에 카사노바는 탈옥을 했다는 거죠. 이 역시 감옥에서 일하는 여인 중 하나를 유혹해 방법을 찾았네 어쨌네 또 말이 많지만, 어쨋든 이 감옥을 탈출한 유일한 사람으로 원래도 유명했던 카사노바의 명성에 기록을 하나 더해준 것이죠.
그리고 자서전에 이 떄의 기록으로 ‘당신들이 나의 동의 없이 이 곳에 가두었듯이 나 역시 당신들의 동의 없이 이 곳을 떠나노라’라는 멋진 말을 남겨… 와 이 남자 글 좀 쓰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그런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
자, 이제 우리 탄식의 다리 그리고 다리를 건넜던 사람들이 갔을 감옥과 관련된 카사노바 이야기까지 전해드렸는데요. 혹시 탄식의 다리 사진 좀 담아볼까? 한다면 또 사진 맛집 몇군데 추천드려야겠죠!
다시 한 번 일반적으로 탄식의 다리를 많이 보게 되는 두칼레 궁전쪽에서 연결되는 팔리아 다리는 소매치기가 많기 때문에 조심하시구요. 사진에 좀 더 진심이신 분들은 다음 챕터를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