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조르노! 이탈리아의 역사와 예술을 재미있게 전해드리는 이탈리아 국가 공인 가이드 키아라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소개해드리는 곳은 베네치아의 상징 중 하나! 바로 리알토 다리인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실제 투어하는 분들에게 들었던 피드백 중 제일 많았던 이야기가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리알토 다리가 딱히 예쁘지도 않고, 왜 중요한 지도 몰랐다고. 그냥 그 위에서 보는 대운하 풍경이 예뻐서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물론 풍경이 예쁜 것도 맞지만, 알고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베네치아다운, 정말 베네치아의 상징과도 같은 다리가 바로 이 리알토 다리입니다. 그래서 이 투어에서는 이 다리를 만들기까지의 공모전, 그 우승작 안토니오 다 폰테의 디자인이 놀라운 이유,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이 다리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 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투어를 더 효과적으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다음 챕터에서 전해드릴테니 바로 이어 들어주시겠어요?
투어듣기꿀팁 및 동선추천
실제 베네치아 가보시면 성수기, 비수기 차이가 굉장히 크긴 하지만 리알토 다리 주변이 기본적으로 워낙 붐비는 곳입니다. 특히 주변에 여유롭게 서서 구경할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추천드리는 것은 아래 투어 내용들은 시간 되실 때 전부 미리 듣고 가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혹시 역사적인 내용들을 다 들을 시간이 안되시면 주변 여행 추천 장소들 챕터별로 정리해놓았잖아요!
특히 그 중에서도 무료 전망대 예약하고 화장실 이용할 수 있는 곳 안내해둔 챕터는 꼭 미리 들어주시는 걸 추천드려요. 못들었던 내용들이 있다면 좀 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의 실내에서 내용 듣고 움직이셔도 되니까요. 다만 젤라또 맛집도 함께 소개해드리는데, 이 백화점의 경우 젤라또 들고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동선 정하실 때 참고하셔서 움직이시면 좋을 거예요.
그리고 젤라또 집과 무료 전망대가 있는 백화점이 같은 쪽에 위치하고, 리알토 다리 건너편으로 사진이 잘 나오는 히든 스팟 소개를 해드리는데요. 그 뒤로 리알토 시장이 이어집니다. 보통 리알토 다리와 함께 리알토 시장 여행도 많이 계획하시잖아요. 대신 알아두셔야 할 것이 리알토 시장은 일요일에는 오픈을 안하고, 평일에도 주로 오전에만 시장이 활발하고 오후에는 절반 이상이 문을 닫으니까 감안해주세요!
정리를 해보자면 투어 내용은 전부 미리 듣고, 무료 전망대 챕터 예약하는 것 잊지마시구요. 오전에 리알토 시장까지 볼 분들은 아침 북적이는 리알토 시장 구경 후 리알토 히든 스팟에서 사진을 담아봅니다. 그리고 설명드렸던 것들을 기억하면서 리알토 다리를 건너며 대운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최초의 다리였던, 그리고 베네치아다운 방법으로 석조다리까지 바뀌었을 역사도 떠올려주시구요. 소매치기 조심하면서 다리 가운데에서 운하 풍경 감상하고 사진도 담아봅니다. 그리고 무료 전망대 예약한 곳으로 이동해서 예약시간에 따라 전망 감상도 하고, 화장실도 이용하고 필요하신 분들은 쇼핑이나 커피숍에서 잠시 휴식도 취하고 맛있는 젤라또까지 먹으면서 산 마르코 광장으로 이동하면 딱 좋은 일정이 될 거예요!
동선상으로 최적의 일정을 추천해드리긴 했는데 여행이란게 다 똑같을 수는 없으니 참고만 하셔서 움직이시고, 역사 소개는 곡 미리듣기 추천합니다!
소매치기 주의
이탈리아 뿐 아니라 유럽 어디든 사람 많은 곳은 늘 소매치기 조심해야 하는 것 잊지 않으셨죠? 그 중 베네치아에서 소매치기가 제일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여기 리알토 다리 위입니다.
이 위에서 보는 운하 뷰가 워낙 예쁘다보니, 특히 예쁜 쪽 뷰를 배경으로 사진찍기 위해 인파가 몰릴 때는 어마어마하거든요. 그 때 사진찍고 있는 사람의 주머니, 백팩같은 곳을 순식간에 털어가는게 특징입니다. 꼭 사진찍을 때 뿐 아니어도 좁은 곳에 사람이 많이 몰리고 북적일 때는 꼭 조심하세요. 같은 의미에서 베네치아 탄식의 다리 사진찍을 때, 수상버스 정류장과 수상버스 내에서 북적이며 사람들 타고 내리며 지나갈 때! 모두 조심해야 하는 때라는 것 다시 한 번 강조드립니다.
그래서 다음 챕터는 리알토 다리 위에서 들으면 소매치기 당할 확률이 높으니 안전하게 지금 사진에서 보이는것 처럼 다리를 바라보는 장소에서 듣는걸 추천합니다. 방향은 어디든 상관없고 다리 아래에서 다리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다리에서 듣기엔 내용이 많다보니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분들은 리알토 다리를 방문하기 전에 들어주시는걸 추천드려요.
베네치아 대운하 최초의 석조다리 공모전
베네치아의 상징, 우리는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리알토 다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미리듣기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역사적인 부분이 긴 편이라 미리 들어주신 분들도 있을텐데요. 그렇지 않다면 다리 위는 번잡한 시간엔 소매치기가 있을 수 있어서 어느 방향이든 상관없이 편하게 다리 아래쪽에서 다리를 보면서 듣거나, 또는 다음 챕터에서 알려드린 무료전망대가 있는 백화점 건물 내부에서 쉬면서 들어주셔도 좋습니다.
리알토 다리를 처음 보신 여행자분들의 피드백 중 가장 많은게 이 다리가 아름다워서 유명한건가? 아니 애초에 너무 좋은걸 많이 보신 분들은 이게 그렇게까지 예쁜가?라고 생각하시기도 하는데요. 사실 아름답기보다도 베네치아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최초의 다리이자, 16세기 건축 기술로 이 간격을 가로지르는 석조 다리를 만들었던 기술! 그리고 너무나 베네치아다운 모습때문에 유명한 다리예요.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하게 전해드려볼텐데, 일단 지금 보시는 다리의 모습 자체는 1588년 6월 8일 공사가 시작되어 1591년 건설되었습니다.
다음 챕터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원래부터 이 자리에 다리가 있긴 했지만 자꾸 무너졌던 관계로 1503년부터는 석조 다리로 짓자는 의견이 잇따라고 이에 따라 다리를 짓기 위한 설계 공모전이 이어졌었는데요. 지지부진 본격적인 진행이 한세기 가까이 잘 되지 않다가 16세기 말이 되어서야 공모전 우승자가 발표가 됩니다.
당시 리알토 다리 설계 공모전에 참여했던 건축가가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미켈란젤로도 초빙되었었다 하고요. 또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의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 야코포 산소비노, 또 신고전주의 건축으로 북부 이탈리아에 아름다운 건축물을 많이 남긴 안드레아 팔라디오와 같은 쟁쟁한 사람들이었는데요. 잠시 참고사진 보실까요?
다른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아치들이 연속되어 있는 형태, 그 위로 중심에 신전과 양 옆 회랑이 이어지는 듯한 모습이예요. 그 모습을 한 세기 후의 베네치아 화가인 카날레토가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설계도로 리알토 다리가 만들어졌다면?
네, 다음 참고그림을 보실까요?
네, 그림처럼 이 운하 위에 3개의 아치 위에 신전이 있는 듯한 모습의 리알토 다리가 생겼을 거예요. 분명 아름답기도 아름답죠? 팔라디오 자신도 이 다리 설계에 대해 “베네치아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훌륭한 다리’라고 자화자찬하면서 다리 내부를 넓게 만들어 도로가 3개나 지나가게 될 수 있게 설계했다고 했다 해요.
자,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이름을 날렸던 팔라디오, 또 베네치아가 사랑했던 야코포 산소비노 두 건축가들의 설계도면이 까이고!
다시 1587년 열린 공모전에서 최종 우승한 사람은 바로 이름도 운명적인 안토니오 다 폰테. 이탈리아어로 ponte가 다리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성이 ‘다리’인 안토니오 다 폰테의 설계,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이 우승을 하게 됩니다.
일단 이름 때문은 아니구요. 또 안토니오 다 폰테가 당시 베네치아 공공 시설 토목공학자긴 했지만, 그 지위때문에 뽑힌 것도 아니구요. 이건 제 생각이지만 그 결과물인 리알토 다리의 모습을 보았을 때 베네치아 출신인 안토니오 다 폰테의 이 디자인은 베네치아다운! 베네치아인들이 필요로 했던 디자인을 기술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에 선택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 그렇다면 왜 안토니오 다 폰테의 다리가 선택되었는 지 다음 챕터에서 바로 이어들어주시죠!
안토니오 다 폰테의 우승작
자 이름부터 ‘다리’씨인 안토니오 다 폰테. 앞선 챕터에서 쟁쟁한 경쟁자, 특히 우아한 신전같았던 팔라디오의 설계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 베네치아 출신인 이 사람의 디자인이 선택되었다고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그 첫번째 이유! 우리 눈 앞에 다리는 아치가 단일 아치로 운하 양 옆을 연결하고 있죠? 이게 참 중요한 게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일반적으로 로마식 아치를 사용해 다리를 건축했거든요. 게다가 여기 대운하는 폭이 40m나 되기 때문에 아치가 연속된 공간인거죠.
그런데 베네치아 출신인 안토니오는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이 다리의 가장 중요한 점! 바로 베네치아인들의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인 배, 무역국가로 수많은 물자를 나르는 배! 그 배가 지나가는 곳이 바로 이 곳 대운하잖아요. 그러니 다리가 지어졌을 때 뿐 아니라 진행하는 중에도 가능하면 배들이 이 운하를 막지 않아야 하고, 충분히 큰 배들이 지나가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전의 다른 건축가들의 연속된 아치들로 이루어진 다리들은 배들의 통행이 원활하지 않다보니 단일 아치를 계획하게 되는데, 여기서 잠깐!
폭 40m의 운하를 단일 아치로 가로지르려면 그 전까지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로마식 아치가 아닌 가로폭이 길어 타원형인 세그멘탈 아치로 만들어야 하거든요.
자 그런데 두번째! 이 타원형 단일 아치를 만들면서 물자까지 실은 배가 지나가려면 이 다리가 수면으로부터도 높이가 일정 이상 되어야 하는데 베네치아 섬 특성상 지반이 약하다보니 특히 그 건설이 쉽지 않고, 세번째! 석조 다리다 보니 비용까지 만만치 않게 드는 겁니다.
이 어려운 문제 세가지를 전부 해결한 것이 바로 베네치아 공공 시설 담당자! 토목공학자였기 때문에 좀 더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는 안토니오 다 폰테의 디자인이었던 것인데요.
일단 제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중 하나는 사실 무게 자체가 남다른 이 석조다리를 단일 아치로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냐! 베네치아 지역 특성상 지반이 약한 섬들에 토대를 다져 만들고 다리를 연결하잖아요. 그러니 이 설계대로 만들어졌을 때 지반이 튼튼하게 버텨줘야 다리의 붕괴를 막을 수 있지 않겠어요?
참고 자료 보시면 좀 더 이해가 빠르실텐데요. 일반 아치가 중앙 키스톤, 즉 쐐기돌을 통해 하중이 옆으로 전달되면서 최종적으로 수직으로 전달되잖아요. 그런데 리알토 다리의 경우 지반이 버텨주지 않으면 하중이 옆으로 전달되는, 그러니까 옆으로 밀릴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반부터 다시 다지는데요. 베네치아 지반 다질 때 항상 가장 아래 나무말뚝을 박거든요. 그런데 자료 보시면 말뚝 박힌 위치가 3단으로 높이가 달라져요. 그 위에 사선으로 박아넣은 벽돌과 그 위로 세워질 다리의 무게를 벽돌이 받아주면서 그 아래 층이 달라지는 수직의 나무말뚝이 한 번 더 지지해주는 거죠.
그리고 기가 막힌 마지막 한가지! 이 다리의 건설 비용이요. 베네치아는 국가 자체가 무역을 국가 기간 산업으로 했던만큼 국가, 상인들 모두 굉장히 짠돌이.. 아니 굉장히 돈에 민감했거든요. 그리고 또 이 건설이 진행되는 당시가 베네치아 무역은 이미 정점을 찍고 그 뒤를 스페인, 포르투갈이 잇고 이슬람도 세력을 키웠던 때였기 때문에 베네치아의 재정이 풍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공사를 위한 한정적인 예산을 어떻게 충당했을까!
자, 이제 다리 근처에서 이야기를 듣던 분들이라면 다리 안쪽으로 직접 건너가면서 보셔도 좋을텐데요. 바깥쪽에서만 봤을 때는 인식 못했을 수도 있는데 다리 내부가 생각보다 넓죠? 23m에 달하는 폭에 가운데 통행로 양 옆으로 상점들이 있습니다. 베네치아 본섬의 한 중심! 최고의 입지,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인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다리에 상점이 입점한다면? 최고의 위치겠죠? 야망 좀 있는 상인이라면 여기에 상점을 내고 싶은 건 당연했을 거예요.
네, 그래서 여기 상점들의 임대료로 건설비용을 충당하게 되었다는 말씀!
여러분 어떠세요? 베네치아 출신으로 베네치아인을 가장 잘 이해하는 안토니오 다 폰테. 게다가 토목공학자로서 이 지역의 지반 특성을 이해하고 그 아래로 베네치아인들의 배가 지나갈 것까지 감안해 만든 그 다리가 바로 리알토 다리예요.
너무 중요하죠! 정말 너무나 베네치아다운 다리라고 말할 수 있구요. 또 사실 16세기 르네상스 석조 다리로서 쉽지 않았을 건설이었을텐데 완성 후 400년 이상이 훌쩍 넘어가는데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붕괴없이 여전히 튼튼하게 서있는 건축물로 수많은 다리 중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다리의 상징이 된 것이죠.
하지만 사실… 지금 보시는 다리 이전에도 원래 다른 모습의 리알토 다리가 있었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왜 이 곳에 다리가, 어떤 모습으로 있었는 지 더 과거의 역사는 우리 다음 챕터에서 이어서 전해드릴게요.
그 이전의 리알토 다리 모습은?
앞 챕터에서는 우리 눈 앞에 있는 이 리알토 다리가 공모전을 통해 어떻게 건설되었는 지, 왜 베네치아다운 건축물인지 말씀을 드렸는데요. 사실은 16세기 리알토 다리가 지어지기 이전 이 자리에는 늘 다리가 있었어요.
잠깐 어떤 모습의 다리였는 지 옛 기록그림을 자료로 먼저 한 번 볼까요? 그림에는 1496년 베네치아 화가인 카르파초의 그림 속 옛 리알토 다리의 모습이 있는데요. 혹시 잘 안보이시면 그 다음장에 다리 가운데 부분을 확대한 걸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석조다리와 다르게 15세기에 그려진 그림 속에서 리알토 다리는 목재다리에 심지어 가운데가 오르락내리락 연결되는 도개교 형태였는데요. 가장 먼저 이 지역에 처음 다리가 지어졌던 때는 1181년 니콜로 바라티에리 총독때로 그 때만 해도 배를 연결해서 그 위에 길을 만들어 다리처럼 사용했다고 해요. 이 때만 해도 정식으로 다리를 만든게 아닌 배를 연결해 다니는 거라 이름도 따로 없어서 근처에 조폐시설이 있다고, 또는 통행세를 내서라고 하는 이유로 ‘돈 내는 다리’라고 불렀다고 해요.
그러다 통행이 늘어 다리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1255년 목재다리로 짓게 되면서부터 이 지역명을 따서 리알토 다리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문제는 아무래도 목재다보니 파괴나 붕괴되기 쉬운 조건이었던 거죠. 1310년에는 티에폴로의 반란이 있을 때 화재가 나고, 1444년에는 페라라 후작 결혼식을 구경하려고 모여든 인파때문에 목재 다리가 붕괴되기도 했거든요. 참고그림 속에 목재다리는 이 때 무너지고 1458년에 4번째로 다시 지었던 목재다리였는데 이것도 1524년 또 무너집니다.
이렇게 여러번 목재다리를 짓고 무너지고를 반복하면서 보다 더 튼튼한 다리의 필요성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건축가들에게 공모전을 열어 석조다리인 리알토 다리를 짓게 되었다는 말씀!
자, 그렇다면 왜 리알토 다리는 다른 곳이 아닌 이 곳에 짓게 되었는 지! 간단하지만 중요한 그 이야기까지 다음 챕터에서 이어들어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