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사말
본조르노! 이탈리아의 역사와 예술을 재미있게 전해드리는 이탈리아 국가 공인 가이드 키아라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리는 장소는 단테의 집 박물관인데요. 오늘 투어는 조금 특이하게 투어장소보다 미리듣기가 좀 더 긴 투어가 될 예정입니다.
단테의 집이라고 이름이 붙긴 했지만 실제 이 박물관은 단테가 정말로 살았던 집은 아니구요. 13세기 말~ 14세기 초를 살았던, 워낙 오래 전 인물이라 실제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와 물건이 형태로 남아있는게 많지 않아서 단테가 살았던 시대의 주택 중 잘 남아있는 곳을 복원해 피렌체 시에서 박물관으로 운영하는 곳이예요.
하지만 한국인 가이드로서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어떤 장소를 추천하지 않을 때 아무래도 말씀드리기가 더욱 어려운데요. 평소 단테를 좋아하는 분이나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이 아니라면 내부 관람까지는 그닥 추천을 드리지 않아요.
그럼에도 이 투어를 만든 건 피렌체 여행을 하면서 한번쯤 지나가게 되는 장소고, 피렌체 뿐 아니라 이탈리아 여행하면서 끊임없이 소환되는 사람이 바로 단테다 보니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 지, 왜 중요한 지 정도는 소개해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이 투어는 미리듣기, 아니 나중에 들으셔도 되긴 하는데요. 그 챕터에서 단테와 신곡에 대해 알고 가면 여행하면서 이해하기 쉬운 정도로 소개를 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테의 집 박물관은 외관과 함께 그 바로 옆에 있는 단테의 성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장소. 또 바로 그 옆에 있는 피렌체 전통 길거리음식 맛집까지 소개해 드립니다.
투어 들으실 때는 잊지 마시고 와이파이 환경에서 바로 다운로드 해두시구요.
2[여행전듣기] 피렌체에서 만나는 단테
![[여행전듣기] 피렌체에서 만나는 단테](https://static.tourlive.co.kr/static/tour/2022/06/28/tour_track/10141/7daafe1af6b111ecbdd4423e35371fca/image/1656400271_Dante_img22.jpg)
피렌체를 방문하기 전에 이 챕터를 듣고 계신다는 가정하에 첫번째 사진을 잠깐 보실까요? 네, 피렌체에서 정말 자주 만나시게 될 한 남자의 옆모습! 바로 단테의 모습입니다. 첫번째 그림은 산드로 보티첼리 버전인데요.
시인으로 최고의 영예, 계관시인의 모습으로 항상 표현되는 단테죠. 계관시인이라는 단어는 어쩐지 낯설지만 그림처럼 월계관을 쓰고 있는 시인이라고 해서 계관시인이라고 해요. 제가 요 모습을 보여드리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탈리아 여행하면서 곳곳 작품에서 실제 단테의 모습을 은근히 많이 보시게 될 거기도 하고 두세번째 참고사진처럼 피렌체 골목길을 걷다가도 단테의 모습을 만나게 되요. 여행하면서 이렇게 끊임없이 만나게 될 단테라는 인물. 그런데 우리에게 단테는 고전 ‘신곡’을 쓴 문인이라는 것 정도? ‘신곡’을 직접 읽으신 분들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꽤나 멀게 느껴질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제가 이야기드리려고 하는 단테 이야기는 왜 그가 약 800년 전 인물이지만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까지 끊임없이 문학과 예술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지, 여러분께서 여행하면서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될 때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이야기를 드려볼게요.
단테는 65년생, 네 800년 다 되가는 1265년생이구요. 피렌체에서 태어나 세례당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조금 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게 되는 신곡이라고 하는 문학 작품 때문에 문인으로만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사실 정치인이자 철학가이기도 했었던 사람이예요.
어린시절부터 신학을 비롯해 여러 학문을 배우며 성장을 했는데 학문적으로나, 또 젊은 시절 쓰기 시작했던 글들로 명성을 얻었다고 해요. 높은 지성과 탁월한 언변과 글솜씨 때문에 명망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정치에 참여하게 되는데요.
당시 피렌체는 다른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교황파를 의미하는 구엘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파를 의미하는 기벨린으로 나눠 당파싸움을 하고 있었어요. 단테는 교황파를 의미하는 구엘프당을 지지합니다. 이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이 바로 베키오 궁전이죠?
이미 시뇨리아 광장 투어에서 간단하게 설명 드리긴 했지만, 참고사진 보시면 베키오 궁전 기둥 마감 모양이 하나는 네모낳게, 하나는 제비꼬리 모양처럼 되어 있거든요. 참고자료에 표시를 해두었는데 이게 당시 교황파가 승리하기는 했지만 피렌체 정치를 대표하는 건물에 두 당을 의미하는 상징하는 건축 요소를 집어넣었던 거예요.
그런데 사실 교황파의 승리로 일단락 된 것이 아니고, 또 그 안에서 교황의 권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흑당과 좀 더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백당으로 나눠졌는데요. 단테는 바로 이 백당에 속해있었습니다.
1300년 피렌체를 대표하는 6인 위원회 중 한명으로 단테가 뽑히기도 했는데요. 피렌체 정치의 최고 지위까지 올라갔던 인물이었지만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아 피렌체에서 추방당하게 되요. 다름이 아니라 단테가 속한 백당의 반대파, 흑당이 단테가 외교사절단으로 다른 지역으로 떠났을 때 쿠데타를 벌였던 거죠. 단테는 게다가 뇌물수수라고 하는 누명까지 쓰게 되고 추방을 당하게 되는데요. 처음에는 2년간의 추방령이었지만, 피렌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벌금과 공식적인 사과를 해야하는데 단테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그리고 피렌체는 다시 한 번 단테가 피렌체에 오는 순간 사형을 당할 것이라 하면서 결국 단테는 살아 생전 고향 피렌체로 돌아오지 못해요.
이렇게 고향 피렌체를 떠나 망명생활을 하며 단테는 계속 저술활동을 했었구요. 이 때 탄생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신곡 입니다. 신곡이라는 제목은 사실 일본에서 번역할 때 붙인 이름을 한국에서도 그대로 딴 것인데 원제는 ‘La Commedia di Dante Alighieri’,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성한 희곡이예요.
추방당하면서 구상했던 이 책은 단테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사후세계를 여행하는 이야기인데요. 고대 로마의 시인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을 지나 단테의 영원한 뮤즈였던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천국으로 향하는 내용입니다.
이 여행을 하는 동안 지옥, 연옥, 천국에서 고대부터 단테가 살았던 동시대의 인물들까지 만나며 이야기 나누는데 이 과정에서 삶에 대해 고찰해보는 내용이라 솔직히 말씀드리면 읽는게 쉽지 않은 책이예요.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저도 완독을 도전해봤지만 실패했는데요. 실제 이탈리아 인문대학에서도 일년동안 신곡을 공부하는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고대의 인물들까지는 그렇다하더라도 당대 잘 알려지지 않은 이탈리아의 인물들을 알아야지만 왜 그들이 지옥, 연옥에 있는 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뿐 아니라 이탈리아인들도 공부하며 읽는 책이구요. 그래서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뛰어나고 놀라운 서양 고전으로 꼽히는 책이죠. 고전의 매력은 어렵다는 것 아니겠어요?ㅎㅎ
사실 그렇다기보다 유럽인들에게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고대부터 14세기의 이탈리아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이야기까지 방대한 이야기를 철학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중요하기도 하구요.
우리는 아무래도 번역된 책을 읽다보니 원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기가 쉽지 않지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점 하나는 이탈리아어의 아름다움을 처음 알린 책이기도 합니다.
당시 책은 라틴어로 쓰여지고 있던 시대였는데 단테는 신곡 이전에 <토착어에 대하여>라고 하는 책을 써서 각 지역별로 조금씩 다른 이탈리아어에 대한 정리를 했었구요. 대중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이탈리아어로 책이 쓰여져 문학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던 듯 합니다. 우리로 치면 한문으로 책이 쓰여져 양반네들만 지식을 공유하고 책을 읽던 시대에 한글로 홍길동이라고 하는 책이 나왔는데, 그 책에서 저 옆동네 못된 놈을 홍길동이 혼내주고 그 놈이 지옥 가서 고통받는걸 본다면 당시 얼마나 재밌었을까요. 이렇게 누구나 사용하고 있던 이탈리아어로 책이 쓰여졌으니 그 첫번째였던 지옥편이 나왔을 때 말 그대로 센세이션이었답니다.
게다가 이탈리아어는 지금도 왜 노래하기 아름다운 언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우리로 치면 완벽한 예는 아니지만 살어리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별곡의 노래처럼, 음, 아니면 라임을 딱딱 맞춘 랩처럼 행의 마지막 음절을 똑같이 맞추는 것을 반복해서 운율이 느껴지기까지 하니 원어로 읽으면 더욱 더 놀랍다고 해요.
게다가 그가 묘사한 지옥과 연옥의 모습은 이후 화가들이 그린 최후의 심판이라고 하는 주제에서 끊임없이 재탄생되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베아트리체는 영원한 사랑의 상징처럼 아름답게 묘사되기 떄문이죠.
단테의 집 박물관 근처에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9살 때 처음 만나 반했다는 성당이 있는데요. 실제 투어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9살때 만나 마음에 품었지만 단테는 12살때 가문에서 정한 젬마라고 하는 여자아이와 약혼을 하게 되요. 그리고 베아트리체의 다음 만남은 9년 후인 두 사람이 18살일때 피렌체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마주친 것이었다고 해요.
인생에 단 두번! 실제로 그저 보았던 것만으로 연정을 품고 베아트리체를 뮤즈로 ‘새로운 삶’이라고 하는 의미의 비타 누오바라는 연심을 담은 시를 이탈리아어로 썼던 젊은 단테. 신곡에서는 다시 한 번 베아트리체가 천국의 길안내를 맡은 것으로 나와 아름다운 사랑, 변치않는 연심의 상징처럼 유명해지기도 했죠.
고향 피렌체를 떠나 망명길에서 신곡을 집필하던 단테는 1321년 라벤나에서 말라리아로 숨을 거두며 그 곳에서 묻히게 되요. 당시만 해도 별 신경도 안썼던 피렌체였지만, 단테가 죽고 100년 후 피렌체는 단테의 시신을 피렌체에 돌려달라 하지만 이미 단테 생전에 그를 많이 아끼고 영웅처럼 생각했던 라벤나는 당연히 그걸 거절해서 지금까지도 단테는 라벤나에 묻혀있어요. 실제로 라벤나 여행 갔을 때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조용하지만 여전히 잘 관리되고 사랑받는게 느껴져서 보기 좋더라고요.
그래서 피렌체 두오모 성당 내부나 종종 단테와 관련된 그림을 보다보면 다음 참고그림처럼 단테가 피렌체 시 성벽 바깥에 서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는데요. 약 37살의 나이에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56세에 라벤나에서 사망할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었던, 하지만 돌아가지 못했던 그의 모습이 그림에 그대로 묘사되어 있어요.
그리고 뒤늦게 피렌체는 1830년 실제 무덤은 아니지만 단테의 가묘를 만들어서 피렌체의 위인들이 잠들어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에 두었구요. 단테 탄생 600주년이었던 1865년에는 그의 석상을 산타크로체 성당 앞에 세워두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피렌체 역사에 관심이 있고, 피렌체 일정에 약간 시간 여유도 있다면 미켈란젤로나 갈릴레이 갈릴레오 무덤을 비롯해 단테의 가묘도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 역시 방문해보시는 거 추천드릴게요!
장소 특성상, 그리고 단테라고 하는 인물이 워낙 유명하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인물은 아니다보니 기본적인 이야기지만 설명을 드려보았습니다. 덕분에 본 투어보다 미리듣기가 더 긴 투어가 되었네요.
그래도 이탈리아, 피렌체 여행을 하면서 단테와 신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피렌체에서 단테의 초상을 골목 어딘가에서 만났을 때 반갑기를 기원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