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조르노! 이탈리아의 역사와 예술을 재미있게 소개해드리는 이탈리아 국가 공인 가이드 키아라입니다.
이번에 제가 소개해드리는 곳은 피렌체 여행지 중에 유독 이름이 낯선 곳일 수도 있습니다. 오르산미켈레, 보통 가이드북이나 여행자 후기에도 비중있게 다뤄지는 곳은 아니예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냥 이렇게 길을 걸으면서도 조각가들의 작품을 그냥 건물 외관에서 만날 수 있는게 역시 피렌체 클라쓰구나! 라고 감탄하게 되는… 역시 예술의 도시 피렌체라는 생각이 드는 장소 중 하나가 바로 오르산 미켈레 성당 외관이예요.
바로 성당 외관을 장식하고 있는 초기 르네상스의 조각 작품들, 그 중에서도 일부는 미술사에서도 중요하게 소개되곤 하는 도나텔로의 작품들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 곳은 특히 평상시 미술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꼭 지나가면서라도 들러보는 곳이라 나는 평소에 미술관, 박물관 좋아해요! 라고 하시는 분들에게는 특히 추천을 하고 싶은 장소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내용은 아니기 때문에, 난 그런 건 좀 부담스러운데~ 라는 마음보다 가이드가 쉽게 왜 이 조각들이 미술사에서, 그리고 피렌체에서 중요한 지 설명드리는 투어니까 편하게 들어주시면 더더욱 좋겠어요.
아, 그리고 대부분의 예술 작품들이 그렇듯이 사실 작품의 보존을 위해 현재 건축물 외관에 자리하고 있는 건 카피 작품이고, 진품들은 박물관에서 전시가 되는데요. 이 곳은 굳이 꼭 박물관에 방문하려고 억지로 맞추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오르산 미켈레 박물관은 일주일에 1-2번 열기 때문에 피렌체에 짧게 머물면 일정 맞추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사실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도나텔로의 성 게오르기우스 조각상만 따로 바르젤로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건축물 외관에서 전체적인 건축물과 함께 감상하는 걸 추천하고 싶습니다. 자, 그래서 여긴 이왕이면 낮에 방문해야겠죠? 밤에는 아무래도 잘 안보이니까요.
그리고 사실 성당 외관의 조각들이 가장 중요하지만 물론 성당 내부에도 들어가볼 수 있습니다. 내부에 중세때부터 아픈 이들에게 치유의 기적을 베풀었다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은총의 성모 마리아’라고 하는 성화가 있어 유명해진 곳이기 때문에 성당 내부 들어가고 싶다면 성당 운영 시간 확인하고 방문하는 거 잊지 마시구요!
자, 이제 잊지 마시고 바로 와이파이 환경에서 투어를 사전에 다운로드 해주세요.
오르산미켈레 성당 소개
잠시 첫번째 참고 사진 보면서 여러분이 지금 서 계신 장소가 맞는 지 한 번 확인해볼까요? 피렌체 쇼핑골목 사이에 쌩뚱맞게 등장한, 딱 봐도 뭔가 남다른 듯한 건물 하나가 서있죠? 조각상들이 건물 일층 전체를 둘러싼 이 곳, 오르산미켈레 성당을 함께 보려고 합니다.
앗? 또 성당이야? 하신건 아니죠?
잠깐 성당 전체를 보면 나름 이 주변에서 꽤 큰 건축물이라는 걸 볼 수가 있는데요. 참고 사진으로 보면 주변 건물보다 한 층 이상 톡 튀어나온 나름 꽤 높은 건물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아래서 볼 때는 못느끼셨죠?
우리가 보고 있는 이 건축물 오르산미켈레는 건축물로만 보자면 약 700년 이상 된 피렌체의 곡물시장터인데요. 이름이 조금 특이한 건 원래 8세기 이전까지 이 곳에 산 미켈레 수도원의 텃밭이 있었다고 해요. 피렌체 방언으로 텃밭을 의미하는 orto와 수도원 이름이자 미카엘 천사를 의미하는 산 미켈레가 더해져서, 오르토 산 미켈레가 오르산미켈레가 된 건데요. 그 텃밭 자리에 작은 성당을 지어 오르산미켈레라고 부르면서 지명처럼 건축물 이름도 항상 오르산미켈레가 된 거죠.
8세기에 지어졌던 성당도 1240년대에 허물고나서 1290년 즈음 처음으로 이 곳에 곡물시장을 만들었는데 이 곳에 화재가 나면서 지금 보시는 건물로 다시 지어진 건 1337년이었다고 해요.
이 때 지으면서 일층에는 기적을 일으킨다는 ‘은총의 성모 마리아 그림’이 있는 예배당이 되고, 이층은 상인들이 주로 사무실로 사용하고, 삼층이 기근과 전쟁을 대비해서 피렌체 정부에서 운영하는 곡물을 비축해두는 창고로 사용을 했었다고 해요.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흘러 14세기 말과 15세기 초, 이 곳이 피렌체를 대표하는 길드! 13개의 상공업 길드들을 위한 성당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각 길드들이 자신들의 수호성인을 이 건물 외관에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시죠? 어랏? 예술을 사랑하는 당시 피렌체인들의 자존심과 경쟁! 어랏? 쟤네 조각 좀 잘한다고 소문난 그 조각가 불렀네? 우린 더! 투자 더 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지금은 우리가 르네상스 초기라고 부르는 14세기 말 15세기 초의 조각가들이 이 곳에서 불꽃 튀기는 경합을 벌였었던 거죠. 그 결과물에 대한 이야기는 마지막 챕터에서 이어가도록 할게요!
자, 그래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고, 성당 오픈시간이고 내부에 있는 기적의 그림 한 점 그래도 직접 확인하고 싶다 하시면 바로 성당 내부 챕터로 이어갈게요. 안쪽에 의자도 있으니 찬찬히 편하게 들어주시면 되구요.
성당 문이 닫혀있거나, 내부보다 제일 중요한 하이라이트! 성당 외관의 조각 위주로만 보겠다 하시면 그 다음 챕터 조각 부분을 이어서 들어주시면 된답니다.
오르산미켈레 성당 내부
오르산미켈레 성당 내부로 들어오셨나요? 워낙 공간이 작은 편이고 여기서는 딱 중요한 그림 한 점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고 하는데요. 그래도 잠깐 참고사진 보실까요?
참고그림 보시면 아래쪽 모퉁이, 그러니까 우리가 성당을 들어왔을 때 왼쪽 모퉁이쪽이 원래는 위층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이 있던 자리였구요. 또 문쪽에 있는 벽을 보시면 그 다음 참고사진처럼 기둥 벽에 왠 직사각형의 구멍이 하나 있을 거예요. 예전에는 위에 있는 곡물창고에서 여기로 곡물을 흘려내려보내는 하역 구멍이었다고 해요. 여기서 곡물을 받아 담고 샘플도 보여주고, 거래도 하고 했던 거죠.
하지만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것은 다름아닌 ‘은총의 성모 마리아’라고 하는 제단화와 그 그림을 감싼 화려한 대리석 제단이예요.
원래 오르산미켈레가 곡물 시장으로 활용되고 있을 때 초기에는 목조 건물이었는데, 그 벽면에 그려졌던 ‘은총의 성모 마리아’라는 그림이 병자를 치유한다는 기적으로 유명했답니다. 1292년 찬송으로 경배를 드리는 ‘찬양신도회’가 결성되면서 성모님이 감동하셨는 지 그 때부터 기적이 있었다고 해요.
앉은뱅이조차 일으켰다는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니 신도회는 헌금을 받아 나폴리에서 수입한 넉넉한 곡물을 무료로 배급했고, 기록에 따르면 최고 하루 8천명에게까지 곡물을 무료로 나누었다고 할 정도예요. 더군다나 1292년 7월, 교황은 이 그림을 순례지 중 하나로 지정까지 하니 기적을 바라는 순례객들이 물밀 듯 밀려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1304년 여름 앞서 말씀드린 이 곳에 화재가 나면서 목조건물이었던 오르산미켈레를 포함해 주변 1700여채의 가옥까지 전부 불탔다고 해요. 그러니 기적의 그 그림도 불탔었죠. 그런데 그 기적이 끝났냐고요? 아닙니다. 지금 보시는 그림이 다시 그려져 화재 이후 재건된 오르산미켈레 성당에 세워지자 또 마찬가지로 치유의 기적이 이어졌다고 하니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계속 계속 늘어났던 거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은총의 성모 마리아’ 그림은 베르나르도 다디라고 하는 초기 르네상스 화가가 1347년부터 1366년 사이에 그려졌는데요. 그 사이에 기간이 꽤 긴 것은 1349년 흑사병이 피렌체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시대적인 특성상 중세와 르네상스가 만나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림에서도 그런 영향이 느껴지죠. 그림의 배경 속 황금빛 바탕 위에 선홍빛 권좌에 앉은 성모와 아기 예수, 그리고 성 모자를 경배하는 천사들의 모습은 중세에 가까운 모습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명암과 부피감은 그 스승이었던 조토의 영향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재밌는 건 지금 우리가 이 그림을 보는 것처럼 항상 열려있는 건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제단화를 감싼 화려한 닫집이 옛날에는 평소에 이 그림을 꽁꽁 감추는 것처럼 닫았다 한 번씩 볼 수 있도록 열어주었다고 해요. 물론 이전 그림이 화재로 불탄 전적이 있기 때문에 보호한다는 목적도 맞지만, 또 그만큼 귀한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닫집이 열리는 날은 사람이 더 많이 몰릴 수 밖에 없었겠죠?
그런데 이 닫집도 사실 그림 보호용이라고 하기엔 정말 말 그대로 보물같은 예술작품인데요. 마치 고딕 양식의 성당, 하나의 건축물처럼 느껴질만큼 장엄한 모습이예요. 그냥 보면 마치 전체가 하나의 장식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매우 정교하게 조각된 117개의 대리석 조각들을 이어붙이고, 그 외에도 청금석과 황금, 유리 등의 값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서 만들었다는데… 무려 여기에 든 제작비가…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얼마나 들었을까요? 우리나라 돈으로 막 던져보시면!
몇천? 몇억? 통 큰 분들은 억 단위 나올 것 같은데… 세상에.. 당시 피렌체 돈으로 8만 6천 플로린. 한화로 환산하면 물론 기준환율따라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약 700억원에 해당하는 비용이 들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피렌체 정말 부유했던 도시국가 맞죠? 허허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였던 것은 흑사병 이후라 더 쉽지 않았겠지만, 반대로 또 흑사병 이후였으니 더더욱 이 공간을 꾸미고 보호하는데 더 많은 비용을 들인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해요. 대책없이 사람이 죽어가는 와중에 치유의 기적을 행한다는 그림과 그 그림을 보호하고 싶었던 마음이 당시 피렌체인들에게는 이렇게 표현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자, 이제 우리는 다시 성당을 둘러싼 벽면의 조각들을 만나러 갈 예정인데요. 혹시 날이 많이 덥거나 쉬고 싶다면 설명 들으면서 좀 쉬셨다가 나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셔도 된다는 점 미리 말씀드리면서! 다음 챕터로 이어갈까요?
오르산미켈레 성당 외관 주요 조각 작품
자, 이제부터 우리는 이 성당 외관을 따라 서있는 조각들 중 가장 중요한 몇 작품을 보려고 하는데요. 1380년대에 오르산미켈레를 피렌체 길드를 위한 성당으로 개조하면서 피렌체 정부는 그 외관을 피렌체를 대표하는 14개의 길드에게 장식하도록 위임해요.
당시 피렌체에는 총 21개의 길드가 있었는데, 길드하면 먼저 딱 게임부터 떠올리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탈리아어로 길드는 아르테,라고 부르는데 쉽게 말하면 각 직종의 사람들이 협회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만, 사실상 피렌체에서는 길드에 가입되어 있어야 경제활동 뿐 아니라 정치 활동까지 가능했었기 때문에 피렌체 사회에서 활동하려면 꼭 길드에 가입되어 있어야 했었답니다. 그래서 정치인이자 문학가였던 단테 역시, 실제 의사도 약사도 아니었지만 정치 활동을 위해 의사,약사 길드에 속해있었던 것처럼요.
즉, 피렌체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 길드이니만큼 또 자신의 길드에 대한 자부심도 굉장히 높았는데요. 피렌체 정부에서 각 길드에게 이 외벽을 꾸미라했으니 오오~ 경쟁에 불이 붙네요. 각자 길드의 수호성인 조각상을 세우기로 했는데, 어랏? 베로키오 불렀어? 그럼 우린 기베르티 불러! 뭐야, 그럼 우린 요즘 신예 조각가라는 도나텔로 불러! 이런 식이 되었던 거예요. 자연스럽게 초기 르네상스 조각의 각축장이 되었던 장소인데요. 저희는 그 중 꼭 보셔야하는 작품을 위주로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 외의 작품들은 감상하면서 누구인 지 쉽게 알아보도록 참고자료에 표시를 해두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