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로마에서 꼭 방문해야 할 성당들의 역사와 예술을 소개해드리는 이탈리아 국가 공인가이드 키아라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성당, 그렇기에 모든 성당들의 어머니라 불리우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을 여행하려고 합니다. 최초의 성당임과 동시에 최초의 교황청이었던 이 곳은 그 역사만큼 성당 뿐 아니라 그 주변까지 둘러볼 곳이 굉장히 많은 곳이랍니다.
그래서 라테라노 성당 본당 내에서 꼭 둘러봐야 할 역사적인 장소와 예술작품들을 위주로 선정해서 소개를 해드리면서 동시에 성당 주변을 함께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동선은 지하철로 많이 이동하실 것 같아 지하철 A선 산조반니역에서 성당으로 향하는 동선으로 소개를 드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혹시 성당 입구와 반대쪽부터 접근하신다면 투어 마지막 챕터의 ‘나가면서’에서 소개해드리는 세례당, 오벨리스크 등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고 들어주시면 더 좋답니다! 또 라테라노 성당 옆에 위치한 스칼라 산타 성당에 대해서는 별도의 투어로 소개해드리니까 가까운 곳에 위치한 스칼라 산타 성당까지 함께 방문해보시면 좋을텐데요.
워후, 그래서 볼 곳이 정말 많죠! 라테라노 성당만 방문하셔도 내부만 대략 1시간 가까이 관람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인데 이 주변까지 전부 둘러보려면 넉넉하게 두시간 이상 잡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워낙 중요한 성당이다보니 기독교 역사의 전반적인 부분들이 이 성당 이야기하면서 골고루 나오게 되는데요. 그렇다보니 기독교 신자시거나 평소 역사 관심이 많았던 분들은 바로 이해가 되실 수 있지만 또 많은 분들께는 동시에 너무 많은 정보가 들어온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처음엔 조금 어렵게 느껴지실 수 있어도 아무 정보 없이 성당 다녀와서 감탄만 하다가 까먹는 것보다, 로마의 성당들에서 계속 반복될만큼 중요한 이야기들이다보니 차근차근 듣다보면 나중에는 유럽 역사 이야기할 때 아!! 이렇게 반응하시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아시잖아요~ 투어라이브 오디오가이드의 장점! 미리듣고 다시듣고! 여행가기 전부터 다녀와서 여러분 듣고 싶을 때마다 들어주세요:)
참! 실제 성당 방문하는 날 혹시 날이 덥다 해도 어깨나 무릎이 노출되는 옷차림은 입장이 제재될 수 있으니 입장 전 옷차림 확인해보시거나, 스카프처럼 가릴 수 있는 것들을 챙기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잊지 마시고 투어를 사전에 다운로드해두시면 여행 중 투어 재생할 때 조금 더 편하실 거예요. 유럽 성당이나 박물관은 특히 휴대폰 통신이 잘 안잡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강조드리고 싶구요.
어플을 통해 투어를 이용하실 때 재생하면서 기본적인 속도조절이나 구간 이동도 가능하구요. 또 재생 중에 나타나는 빨간 선을 꾹 누르면 앞 뒤 5초간 구간 이동 외에도 자유롭게 원하는 만큼 재생바를 이동할 수 있답니다. 오디오 가이드의 장점 중 하나가 놓쳤을 때 다시 듣기가 가능하다는 점이니만큼, 여행 중에 잘 활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행전듣기] 정싱 명칭으로 알아보는 라테라노 성당의 의미
안녕하세요!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 여행을 하기 전에 콕 집어! 이 성당의 역사를 정리해서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실제 라테라노 성당을 방문하셨을 때 투어에서도 설명을 드리지만 아무래도 한 장소에서 오래 설명을 드리면 생각보다 집중해서 듣기가 힘드실 수도 있겠더라고요. 하지만 그렇다보니 또 역사적인 배경이나 자세한 이야기를 생략하다보면 충분히 이해하시기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직접 성당 방문하기 전 미리 들어두시면 좀 더 이해가 쏙쏙 되는 라테라노 투어가 될 거라 기대합니다!
전반적인 역사 배경 설명도 함께 드리기 때문에 로마 역사, 기독교 역사에 대해 문외한이신 분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겠지만 또 그래서 처음에는 낯설고 어려우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낯설겠지만 어차피 로마와 이탈리아 여행하면서 계속 반복되는 이야기때문에 편하게 들어주시면 더욱 도움이 될 거랍니다!
먼저 이 성당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정식 명칭부터 제대로 알아야 할 거예요! 앞으로 줄여서 라테라노 성당이라고 이야기는 하겠지만 이 성당의 정식 명칭을 다 불러보자면… Arcibasilica del Santissimo Salvatore e dei Santi Giovanni Battista ed Evangelista in Laterano라고 부릅니다. 번역하자면 ‘최고의 성 구세주와 성 세례자 요한 및 사도 요한의 라테라노 대성당’인데요. 이름이 워낙 길다보니 현지에서도 라테라노 성당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보통 성당을 이야기하면 현지에서는 바실리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곳 라테라노 성당은 그 앞에 아르치바실리카, 모든 바실리카 중에서 가장 높은. 즉 이 명칭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성당이 바로 이 곳 이 성당인데요. 바로 이 곳이 역사상 로마 최초 뿐 아니라 카톨릭 교회 역사상 공식적으로 최초의 성당이기 때문입니다! 의외죠! 보통 성 베드로 대성당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거든요!
자, 오늘부터 전 세계 최초의 성당! 성당 중 가장 높은 지위의 성당, ‘로마와 세계 모든 성당의 수도이며 어머니’라고 불리우는 성당. 뿐만 아니라 여전히 로마 교구 대성당이고 교황의 주교좌 성당인 곳! 온갖 멋진 타이틀이 붙는 곳은 어디? 바로 이 곳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라는 것 기억해두세요!
그런데 그 뒤에 따라오는 긴 이름은 사실 이 성당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 처음부터 현재까지 이 성당이 누군가에게 봉헌되었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로마에서 많이 가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이라면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가장 큰 성당을 의미하는 것처럼요. 이 성당은 처음 산티시모 살바토레, 즉 거룩한 구세주에게 봉헌된 성당이었어요. 그 뒤에 이어지는 산 조반니 바티스타. 즉 세례자 요한에게는 10세기, 산 조반니 에반젤리스타. 즉 사도 요한에게는 12세기에 봉헌되어서 지금은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성인을 위한 성당,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이라고 이야기를 하는거죠. 그렇다면 마지막 인 라테라노,라는 단어만 남았는데요. 이 라테라노에 대한 것은 이 성당이 있는 지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유래는 어디에서 왔는 지 고대 로마시대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으니 그 내용은 다음 챕터 후반에 이어서 설명드릴게요!
[여행전듣기]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라테라노 성당
자, 그렇다면 서방세계 최초의 교회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어쩐지 예수님! 베드로! 막 이러실 것 같은데요ㅎㅎ 서방세계 최초!라는 말에 주목을 하시고ㅎㅎ 사실 로마에 처음 기독교를 전하러 온 건 베드로 성인이 맞지만, 정식으로 생긴 교회라는 의미에서는 기원 후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와 기독교 역사 모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죠. 콜로세움 옆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이나 포로 로마노 안 콘스탄티누스 바실리카 등에서도 그 이름이 언급되는데요.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에서도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이 언급될 만큼 사실 이 곳에서 빠질 수 없는 이름입니다.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와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바로 4세기 초까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정치 개혁으로 4분할 되어 있던 권력을 다시 통합하고, 로마의 역사 흐름을 바꿨던 인물이기 떄문인데요. 그 중 하나가 점점 쇠락하고 있는 상태의 수도 로마를 새로운 도시 비잔티움을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콘스탄티노플로 만들고 천도하면서 로마 제국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했고, 또 한 가지! 로마 제국 안에서 박해받던 종료 기독교를 기원 후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공인했기 때문입니다.
아! 종종 로마가 왜 기독교를 박해했나요?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한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요? 하실 수 있는데요. 원래 기본적으로 로마는 다신교의 국가였고, 포로 로마노 투어에서 설명 드리는 것처럼 율리우스 카이사르 이후 황제 역시 죽고나면 로마를 수호하는 수호신이 된다고 로마인들은 믿었거든요. 그런데 기독교는? 일신교죠! 다신교와 일신교! 그럼 유대는? 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유대는 1세기 중반 베스파시아누스와 그 아들 티투스 황제에 의해 정복당하고 정치적으로는 로마의 통치를 따르되 종교만 지키면 되는데요. 유대교에서 파생한 기독교는 이 부분은 같았으나 아주 큰 차이점이 한 가지 있죠. 유대인들은 선민사상! 즉, 선택받은 민족이기에 유대인으로 태어나 유대교인이 되는 거라면, 기독교인들은 누구나 세례를 받음으로서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어요. 즉 다신교의 로마 안에서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다신교였던 로마였기 때문에 사실 초반에는 기독교를 전파한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문제는 점점 기독교인이 많아질 수록 로마의 근간 중 하나인 다신교가 흔들린다는 것에 있는 것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로마의 황제의 정책에 따라 마치 파도가 왔다 갔다 하듯 박해가 심했다가 잦아들었다가 했던 것인데요.
콘스탄티누스는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영향도 있을 것이구요. 또 원래 태양신을 믿었던 콘스탄티누스지만, 역사학자들은 황제가 냉철한 상황 판단으로 당시 더이상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로마 안 신흥세력이 된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고도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 속내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콘스탄티누스는 그 자신이 로마 권력을 통합한 312년 이후 바로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했던 것이고 그 이후 처음 짓도록 했던 성당이 바로 여기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성당인 것이죠! 이 때 콘스탄티누스가 성당을 짓도록 했던 이 지역이 고대 로마의 귀족 가문중에 하나였던 라테라누스 가문의 땅이었는데, 원래 이 일대는 네로때 몰수되어서 한동안 로마 제국의 땅이 되었던 곳이었어요. 그래서 이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궁전을 짓기도 했었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때는 요새 겸 막사가 세워지기도 해서 이런 건물터들이 나중에 실제 발굴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후 라테라노 가문으로 다시 땅 소유권이 돌아갔다가 얼마 되지 않아 이 가문 출신의 파우스타라는 여인이 콘스탄티누스의 두번째 부인이 되면서 지참금으로 이 지역을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로마 전통을 보면 중요한 신전이나 바실리카 등은 원래 황제들의 명으로 짓게 되는 경우들이 많죠? 포로 로마노 다녀오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그런데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후 콘스탄티누스는 왜 이 포로 로마노 안에 최초의 성당을 짓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주 심플합니다ㅎㅎ 공간이 꽉 차 있으니 새롭게 성당을 지을만한 자리가 마땅치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따로 있었을텐데요. 아무리 기독교의 흐름이 걷잡을 수 없었다고 해도 다신교의 전통이 강한 로마에서 그 상징과 같은 포로 로마노 공간에 기독교의 상징과 같은 공간을 짓는다는 건 더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죠.
여러 후보지 중에 선택한 곳이 바로 오랜 세월동안 로마 황제들이 사용했고, 자신의 황후를 통해 소유권이 다시 돌아온 이 곳 라테라노를 로마 최초의 성당을 위한 부지로 선택하고 318년 또는 324년 11월 9일 성당을 완공해 봉헌식을 치르게 됩니다. 그리고 원래 이 곳에 있었던 황후의 이름을 딴 궁전 도무스 파우스타는 당시 교황에게 밀키아데스, 그 다음 실베스트로 1세가 이어 거주하면서 도무스 데이, 신의 궁전이라고 불리는… 즉 교황궁, 교황청이 이 곳에 자리잡게 되죠.
[여행전듣기] 중세의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아쉽게도 지금 성당에는 처음 만들어졌던 때의 성당 모습은 남아있지 않지만 성당 규모 자체는 현재와 거의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하구요. 참고그림 보시면 15세기때에 그려진 라테라노 성당의 정면 모습인데 중세 시대 개축을 거쳤지만 전체적인 외관은 고대 초기 기독교 성당인 바실리카의 외양을 거의 따르고 있는게 보입니다.
중세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는 개축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 여기 뿐 아니라 모든 로마가 그랬겠지만 워낙 전쟁때마다 약탈이 많이 되었어서요. 410년 서고트족, 455년 반달족 어휴… 뭐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나서는 끊임없이 약탈당했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곳은 교황청!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자 교회의 첫번째 교회인데 바로 바로 복구를 했겠죠. 파괴가 많이 되었던만큼 자연스럽게 재건하는 과정에서 그 시대를 반영하면서 계속 변화가 있어왔구요. 그 과정에서 10세기 교황 세르치오 3세때에는 당시 새로운 세례당을 만들면서 세례자 요한에게 봉헌을 하게 되고, 또 12세기에는 루키우스 2세 교황 때에 라테라노 궁전과 대성당을 또 사도 요한에게 추가로 봉헌해서 지금의 이름처럼 두명의 성 요한을 위한 라테라노 성당이 된 것이죠.
기록으로 남아있는 성당의 옛 모습을 또 다른 참고그림으로 만나보면 옛 바실리카때에 만들어졌던 목재 기둥이나 고대 건축물에서 가지고 왔었을 붉은 대리석 기둥들로 측랑을 받쳤던 모습들이 보이는데요. 중세때에 만들어진 대리석 바닥을 제외하고는 이후 전부 리모델링된 모습이라 실제 여행가셔서 비교해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거예요.
또 하나의 지도를 보면 중세의 라테라노 지역 전체적인 모습도 볼 수 있는데요. 지도에 제가 현재 남아있는 주요건축물 위치를 표시해두었어요. 라테라노 성당 옆에 같이 여행하시길 권해드리는 성 계단과 연회장 유적인 트리클리니움이 지금은 다 떨어져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성당 옆에 주황색 건물이 네모낳게 붙어있는 라테란 궁전 건물이 일부 남아있는데, 원래는 이렇게 전부 다 연결되어 있는 이 지역 일대가 전부 교황청 교황궁이 있었던 거라는거죠!
[여행전듣기] 아비뇽 유수와 라테라노
이 곳 교황청과 첫번째 성당인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는 중세 교황의 권력의 중심이었을텐데요. 일반적으로 ‘카노사의 굴욕’으로 대표되는 1077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 앞에 무릎꿇었던 사건을 시작으로 세속의 권력 위에 선 유럽의 중심이었죠. 하지만 아비뇽 유수가 시작이 되면서 라테라노 교황청의 역사도 그 화려함의 정점에서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아비뇽 유수 역시 유럽여행 하면서 교황이나 기독교사 관련해서 자주 반복해서 나오는 이야기죠! 이전까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권의 다툼이 빈번했다면 이번에는 프랑스가 그 주인공이었는데요. 프랑스의 필립 4세는 거듭된 전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자국 내의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는데요. 당시 교황이었던 보니파시오 8세는 이에 불응하는 것을 시작으로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이 맞붙게 됩니다. 프랑스는 교회의 재산 압류, 주교를 체포하고 세속 법정에 넘기는 등 말 그대로 선전포고를 하면서 아예 교황을 이단으로 선언해버려요. 허허 간도 크죠? 그리고 교황은 반대로 프랑스 전역에 파문을 내려버리죠! 당시 파문은 사실 무시무시했거든요. 태어나는 아기들은 세례를 받을 수 없고, 결혼이 불가능하고, 돌아가시는 분들도 종부성사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뿐만아니라 1300년. 최초로 성년이라는 것을 반포하면서 전 유럽의 사람들이 로마로 성지순례를 오게 만들어 자신의 세력을 과시했죠.
그런데 와 프랑스… 대단합니다. 교황을 아나니라는 지역으로 납치해 감옥에 가두었는데 시민들에게 구출되었지만 결국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 이후는?! 당연히 후임 교황은 프랑스 왕의 눈치를 보게 될 수 밖에 없겠죠. 아니, 엄밀히 말하면 눈치 보던 교황 베네딕토 11세는 눈치만 보다가 1년만에 사망하고 그 이후 일년이나 선거가 치뤄졌지만 친프랑스파와 반프랑스파로 나뉘어 선출이 안되는 상황이었죠. 그리고 결국 친프랑스파의 승리로 최초의 프랑스인 교황, 클레멘트 5세가 선출되면서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아비뇽으로 교황청을 옮기게 되요. 이것이 바로 1309년부터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11377년까지 있었던 아비뇽 유수입니다!
1300년 보니파시오 8세 교황의 첫 성년 반포로 수많은 성지순례객을 맞았을 라테라노 성당. 하지만 불과 얼마 안되어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가고 자연스럽게 이 지역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 역시 떠나고 14세기 로마의 인구가 2만까지 줄었을 정도였다고 해요.
게다가 성당은 1308년 5월 6일부터 사흘동안 큰 불에 휩싸이면서 신도석 지붕과 교황청 도무스 데이가 큰 피해를 입었구요. 1343년에는 폭풍, 1347년에는 지진, 1360년에는 또 다시 큰 불이 나서 붕괴 직전까지 갔다고 합니다.
교황궁과 라테라노 성당은 말 그대로 폐허가 되어가는데 그 와중에 아비뇽 유수는 끝났네요? 1377년 그레고리우스 11세 교황은 아비뇽 유수를 끝내고 로마로 돌아왔는데 이런 상태의 라테라노 지역을 보고 난감하게 됩니다. 프랑스 출신 마지막 교황인 그레고리오 11세는 안락했던 아비뇽 궁과 다른 이 곳의 상태는 도저히 머무르기 힘들다 판단하고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나중에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마지막으로는 성 베드로 성당 곁 바티칸 궁전으로 처소를 옮기게 되요. 아 정확히 말하면 게다가 아비뇽과 로마에서 교황이 각각 뽑혀 두명의 교황이, 아니 그 이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뽑힌 새 교황까지 3명의 교황이 공존하는 교회의 분열까지 정리되고나서 1420년 마르티누스 5세가 로마에 입성하면서 이 혼란기가 끝나게 되죠. 그러면서 정말 4세기 중반 첫 교황청이 지어졌던 이 라테라노는 역사의 뒤안길로
네, 처음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성당이 지어진 4세기 중반 이후 교황청이 존재했던 이 곳 라테라노의 역사가 아비뇽 유수가 끝난 이후에도 이 곳에서 이어지지 못하고 바티칸으로 옮겨가게 된 것이죠.
[여행전듣기] 라테라노 성당 재건
아비뇽 유수가 끝나고 15세기 바티칸으로 교황청이 옮겨지면서 라테라노 지역은 버려지다시피했지만 16세기 말 식스투스 5세 교황에 의해 본격적으로 재건되기 시작합니다. 식스투스 5세는 요즘 스타일로 말하자면 로마를 재개발, 즉 리모델링 했다고 평가받는 교황입니다. 1527년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로마를 약탈했던 사코 디 로마라고 부르는 사건 이후 다시 교황청을 탄탄히 하고, 로마를 재정비하는 과정이었던 거죠.
이 때 식스투스 5세의 건축가였던 도메니코 폰타나가 라테라노 대성당 복구 작업을 맡아 사실상 예전의 건물을 거의 무너뜨리고 새롭게 건물을 지어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대성당 앞 너른 광장으로 조성하고, 또 치르코 마씨모 대전차 경기장에 있던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오벨리스크를 이 곳으로 옮겨오기도 하죠.
하지만 아시죠? 이런 공사가 한 세대에 끝날 리 없다는 것! 17세기 인노첸시오 10세 때에는 바로크 건축가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때에 건축물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이후 18세기가 되자마자 재임한 클레멘트 11세에는 현재 성당 중앙 회랑을 장식하고 있는 12사도의 아름다운 조각상들이 만들어지고, 클레멘트 12세때에는 대성당 정면을 만들기 위한 공모전도 열려요. 이 때 바로크 건축가인 알렉산드로 갈릴레이가 당선되면서 현재의 대성당 정면이 1735년 완성됩니다. 네, 여러분께서 직접 여행하면서 둘러보게 될 라테라노 성당의 모습은 약 15세기 말부터 18세기까지 사실상 교황청의 지위를 바티칸에 물려주고 나서 그 후에 만들어진 모습이라는 점. 그리고 실제 본 투어때 각각 장소 둘러보면서 더 자세한 이야기가 이어질 테니까 이어서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라테라노 성당을 직접 방문하기 전 이 성당에 관련한 역사만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성당 방문 전에 들으시면 여행할 때 좀 더 빠르게 이해하기 좋구요. 다녀와서 들으시면 이해안됐던 부분들이 도움이 되실거예요.
아! 그리고 이탈리아 뿐 아니라 유럽여행할 때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아니 상식으로도 유익하고 재미있는 기독교 역사! (가제) 를 임동현 교수님께서 정리해주셨어요. 아직 안들었다면 꼭 한 번 들어보시는 거 추천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