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미켈란젤로 '모세'와 베드로 성인을 묶었던 쇠사슬이 있는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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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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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안녕하세요! 로마에서 꼭 방문해야 할 성당들의 역사와 예술을 소개해드리는 이탈리아 국가 공인가이드 키아라입니다.
오늘 함께 여행하는 곳은 성 베드로 성인을 예루살렘과 로마 감옥에서 묶었던 쇠사슬이 보관되어 있고, 미켈란젤로의 모세라는 걸작을 감상할 수 있는 성당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곳인데 심지어 콜로세움과 가까워 도보 5분에서 10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는 곳이랍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약 20분 이상 소요되는 곳인데요. 혹시 미켈란젤로의 모세 작품에 관심이 있어 이 성당을 방문하신다면 시간 되실 때 미리 모세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어두시면 조금 더 편하게 관람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 그리고 성당 방문시에는 혹시 옷차림 규정이 있는 것 알고 계시죠? 더운 시즌이 되면 나시, 무릎 위로 올라가는 미니스커트나 짧은 반바지, 조리 등은 착용하고 성당 입장이 안되요. 어깨나 무릎 부분을 덮을 수 있는 스카프 등을 함께 챙겨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그리고 콜로세움과 함께 둘러보시는 분들이 많을텐데요. 이 성당 주변에 또 너무 예쁜 골목길이 많아요. 특히 이 성당으로 향하는 길 중 가장 예쁜 계단길 하나가 있어 사진과 함께 구글 지도 첨부해드리니 검색해보시고 동선을 잡아주시면 분위기 좋은 골목 산책을 함께 하실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잊지 마시고 투어를 사전에 다운로드해두시면 여행 중 투어 재생할 때 조금 더 편하실 거예요. 유럽 성당이나 박물관은 특히 휴대폰 통신이 잘 안잡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시 한 번 강조드리고 싶구요.
어플을 통해 투어를 이용하실 때 재생하면서 기본적인 속도조절이나 구간 이동도 가능하구요. 또 재생 중에 나타나는 빨간 선을 꾹 누르면 앞 뒤 5초간 구간 이동 외에도 자유롭게 원하는 만큼 재생바를 이동할 수 있답니다. 오디오 가이드의 장점 중 하나가 놓쳤을 때 다시 듣기가 가능하다는 점이니만큼, 여행 중에 잘 활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외관
안녕하세요!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 앞에 잘 도착하셨죠? 오늘은 성당 앞에서 설명드릴 것이 많이 없이 바로 입장해서 내부 투어를 시작하도록 할 예정이예요.
왜냐구요? 물론 이 곳도 성당 정면은 1475년 바초 폰텔리라는 건축가에 의해 개축되고, 아치 회랑도 1503년 줄리아노 다 상갈로라는 건축가가 추가하기는 했는데요. 그 외에는 보시는 것처럼 매우 심플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역사 설명은 안쪽에 들어가서 시작하려고요!
보통 성당 외관부터 마구마구 설명드렸는데 바로 들어가려니 어쩐지 어색하시죠?ㅎㅎ 저도 그렇습니다! 자, 입구로 들어가서 다음 챕터 설명해주세요.
중앙 통로
성당 내부로 들어오셨나요? 규모가 많이 크지는 않아 바로 안쪽 중앙 제대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공간일 거예요. 저희는 중앙 통로를 따라 안쪽부터 보면서 돌아나오는 순서로 성당 투어를 진행 할 예정이니 천천히 들어가면서 들어주셔도 되는데요. 혹시 중간중간 어느 위치인 지 확인하고 싶으실 때는 어플 참고자료에 있는 성당 내부 지도에 위치 번호가 표시되어 있으니 확인하시면 편하게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잠깐 안으로 들어가면서 간단하게 빈콜리 성당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부터 드리자면요. 이 성당은 전형적인 고대 바실리카, 즉 양쪽에 기둥들로 공간을 삼분할한 형태의 건축 형태를 띄고 있는데요. 이 공간을 나누고 있는 기둥들은 다른 곳이 개축되는 동안 이 성당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20개의 기둥들입니다.
지금 이 성당 자리는 원래 고대 로마시대부터 여러 세기에 걸쳐 도무스라고 불리우는 저택이 있었던 곳이었는데요. 성당이 지어지기 직전, 그러니까 약 3세기 경에는 ‘가정교회’라고 해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집을 교회로 사용했던 장소였다고 해요. 그러다가 기원 후 432년부터 440년 사이에 이 성당이 처음 지어졌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던 양쪽의 기둥들은 이 시기의 서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이 성당의 건축자재로 기부를 했던 것이라고 해요.
성당 외관도 심플하고, 아마도 딱 내부로 들어왔을 때에도 심플하다고 생각하셨을텐데 1500년 이상 된 성당이니 생각보다 아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죠? 이 기둥 외에도 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하나 더 있는데요. 중앙 제단 가까이 거의 오셨다면 오른편 회랑 아치 위편으로 나무 막대기 같은 것이 길게 붙어있는 것이 보일 거예요.
혹시 찾기 어려우시면 참고사진 보고 찾으시면 더 찾기 쉬우실 거예요. 제단 쪽 가까운 곳에는 나무 막대 앞부분에 라틴어로 니콜라우스라는 이름이 눈에 띌 텐데. 이 부분은 바로 이 성당이 개축 되었던 기록을 남긴 부분이랍니다.
5세기 처음 이 성당이 만들어지고 나서 중세 시대 로마의 중요한 순례지 중 하나였지만, 교황청이 로마에서 프랑스 아비뇽으로 옮겨간, 즉 1307년부터 1377년까지 아비뇽 유수 기간동안 이 성당은 방치되고 그 짧은 사이에 매우 황폐해졌다고 하는데요. 1448년 이 성당의 관리를 맡은 독일 출신의 니콜라 쿠사노 추기경이 자비를 털어 이 성당의 보수를 시작했는데요. 보수를 하면서 옛 성당 건축물의 일부를 이렇게 남겨놓은 거랍니다. 이 추기경님의 무덤은 이따 성당을 둘러보면서 찾을 수 있으니 한 번 더 그 이름 기억해두면 좋겠죠?
자 그런데 이 성당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앙 제대 쪽을 둘러봐야 이해가 확실히 되실 거예요. 중앙 통로를 따라 중앙 제단 앞까지 오셨다면 우리 바로 다음 챕터를 재생해볼까요?
중앙 제단
중앙제단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청동닫집, 발다키노는 중요한 성인들의 유해나 성 유물 등을 모시고 있는 중요한 성당에서만 볼 수 있는 형태죠? 정면에 보이는 이 발다키노는 1877년 베스피냐니라는 예술가의 작품인데요.
앞서 아비뇽 유수가 끝난 후 15세기 후반 성당의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는데 지금 보시는 주 제단쪽은 1875년부터 77년 사이에 재건 공사가 진행되었다고 해요. 이 때 중앙 제단 아래 마루를 파서 콘페시오라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콘페시오가 바로 성 유물이나 순교자 유해 등을 안치하는 제단 지하 묘실을 의미하거든요. 자 앞에 보이는 계단을 내려가면 이 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성 유물을 볼 수 있겠죠?
계단을 내려가면 유리창 너머로 성 유물함에 쇠사슬이 모셔져 있는데 보이시나요? 혹시 잘 안보이시면 참고사진 확인하시면 더 또렷하게 쇠사슬 형태를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성당의 이름이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이잖아요. 산 피에트로는 세인트 피터, 즉 베드로 성인을 의미하고 빈콜리는 사슬을 의미합니다. 즉 쇠사슬의 성 베드로 성당이라는 의미인데, 바로 여러분이 보고 계신 저 사슬이 베드로 성인을 묶었던 쇠사슬인거죠.
여기서 잠깐, 왜 베드로 성인이 사슬에 묶였을까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정리를 먼저 해보자면요! 베드로 성인은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이자 생의 마지막에는 로마로 건너와 전도를 하게 되죠. 이제 막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전도를 할 때에는 그들의 뿌리,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합니다. 사실 유대교의 한 갈래로 시작된 기독교는 그들이 유대인들이었기에 이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거예요. 사도들에 의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을 하자… 이를 마뜩치 않게 보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었겠죠? 신심깊은 유대인들도 그렇겠지만 무엇보다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을 거예요. 자연스럽게 그들의 반감을 산 사도들은 유대왕 헤로데에 의해 박해를 받게 되는데 이 때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두번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탈출한 이후에는 로마로 오게 되는데요.
로마에서 활동하던 베드로와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큰 위기가 오게 되죠. 기원 후 64년에 있었던 로마 대화재였어요. 일주일 가까이 로마를 불태웠던 화재의 범인을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로 지목하면서 이 때 베드로 성인은 지금의 바티칸 자리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고 그의 무덤 위에 성당이 지어졌습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베드로의 반석 위에 교회를 짓는다고 하셨던 마태복음의 말씀에 따라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하여 바티칸 교황청의 역사가 세워지게 되죠.
지금은 세계 3대 종교라고 하는 기독교지만, 당시에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의 초기 기독교였던 지라 이런 박해의 상징물이자 또 결국 승리와 자유의 상징이 되기 때문에 이 사슬은 기독교인들과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데요.
지금 여러분 앞의 저 쇠사슬은 사실 두개의 쇠사슬이 하나가 된 것이랍니다.. 원래 하나는 예루살렘에 있던 쇠사슬이고, 또 하나는 로마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5세기 초의 레오 1세 교황이 이 두개의 쇠사슬을 비교해보려고 가깝게 갖다 댔을 때 두 개의 쇠사슬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전설이 있어 저렇게 짧아보여도 사실 약 2m 정도 되는 길이예요. 중세에는 성 베드로를 묶었던 이 쇠사슬의 기적에 대한 전설이 있어 이걸 만지면 병이 낫고, 쇠사슬을 꺼내면 악마가 달아난다고 믿었다고 해서 중세 시기 이 성당을 중요한 성지순례지 중 하나로 유명하게 만들었죠.
자, 그렇다면 이 쇠사슬이 어떤 연유로 이 곳에 오게 되었는 지! 쇠사슬과 빈콜리 성당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역사를 볼 수 있는 프레스코 벽화를 보면서 이야기를 드려볼까요? 계단을 올라와서 중앙 제단 뒷편, 즉 성당 후진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벽화의 왼쪽부터 함께 설명드릴게요. 다음 챕터 참고사진 확인하시면 좀 더 찾기 쉬우실 거예요.
성당 후진 프레스코 벽화
중앙제단 발다키노 뒤편으로 벽을 장식하는 세 점의 프레스코 벽화 중 왼쪽을 먼저 보실까요? 그림 중에서도 가장 왼편에 천사의 인도를 받아 걸어나오는 하얀 머리의 노인을 보실 수가 있는데요. ‘성 베드로의 해방’이라는 주제로 그려진 그림이예요.
이 그림은 예루살렘에서 베드로 성인이 감옥에 갇혔을 때 천사가 성인을 감옥에서 풀려나도록 했던 기적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림 전반에 졸고 있는 군인들 뒤로 감옥 안에 환한 빛을 뿜어내는 천사의 모습을 보실 수가 있죠. 이 그림은 어쩐지 익숙하신 분들이 분명 있으실텐데요.
다음 참고사진에 지금 벽화에서 보는 그림과 거의 흡사한 장면이 한 장 더 이어질거예요. 바로 바티칸에 있는 라파엘로가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이예요. 라파엘로의 방 중 하나로 1514년에 그려졌던 그림인데 반세기 후에 그려진 이 그림에서 16세기 말 후기 야코포 코피라는 화가가 라파엘로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구나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건물 앞에 앉아있는 하얀 모자를 쓴 남자와 그 앞으로 한 무리의 여인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높다란 관을 쓰고 있는 여인의 모습에 주목해서 보시면 되는데요. 남자가 여인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모습입니다.
바로 이 장면이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를 묶었던 쇠사슬이 이 곳 로마로 오게 되었는 지를 설명하는 장면이예요.
기독교 전승에 따르면 5세기 초의 예루살렘 총대주교였던 성 유베르날은 예루살렘 감옥에서 베드로 성인을 묶었던 쇠사슬 두개를 동로마 제국 황후 아일리아 에쿠도이카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 중 하나는 콘스탄니노플로 보내놓았던 것이 그만 이후 콘스탄티플이 이슬람화 되면서 사라졌구요. 또 하나는 황후가 자신의 딸을 서로마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황후로 보내면서 선물로 보냈다고 해요.
그리고 그 오른쪽 장면처럼 서로마의 황후로 이 쇠사슬을 가지고 로마로 와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세에게 선물로 주었던 것이죠. 레오 1세가 베드로 성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의 쇠사슬과 비교해보려고 가까이 대니 두개의 쇠사슬이 하나로 합쳐졌던 것은 이미 말씀드렸죠? 그리고 이 쇠사슬을 보관하기 위해 이 성당을 짓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후 이 쇠사슬을 보관하기 위해 이 성당을 짓게 된 것이 기원 후 432년부터 440년 사이의 일이었던 것이죠. 그 이후 쇠사슬의 기적으로 중세 시대 유명한 성지순례터가 되었는데 여기서 잠깐!
현대의 여행자에게는 예술 순례가 또 여행의 즐거움 아니겠어요? 이번에는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을 찾는 또 다른 이유! 바로 이 곳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모세’ 한 번 감상하러 가볼게요! 중앙 제단 바라보고 바로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고개만 돌려도 보일테니 바로 다음 챕터 재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