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로마의 숨은 유적지를 소개해드릴 이탈리아 국가 공인 가이드 키아라입니다! 사실 큰 길에 당당히 서있는데 숨어있다고 표현한 이유는 많은 분들의 관심을 크게 받는 곳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르첼로 극장은 콜로세움의 어머니라고 평가받는 곳이기도 하고, 로마 시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대 극장 유적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특이하게도 옛 고대 유적에 중세 건축물이 올라가 있어요. 많은 로마의 유적들이 그러하지만 이 지역은 로마 시민들이 어떻게 유적과 함께 살아가는 지 볼 수 있는 곳이예요.
마르첼로 극장의 위치가 캄피돌리오 광장과 가깝기 때문에 동선을 함께 잡는 걸 추천드리구요. 마르첼로 극장을 보고 진실의 입까지 도보로 가거나, 또 다른 동선으로는 판테온쪽으로 향할 때 로마의 유대인 거주지역 게토지구를 거쳐 여행 할 수 있는 동선입니다. 로마 시내는 워낙 유적이 모여 있어 대부분 그렇지만 이 일대를 여행하는 날은 특히 도보 이동이 편하고 가까울 때가 많아 편한 신발을 신고 여행하시는 걸 추천할게요!
마르첼로 극장 앞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마르첼로 극장
아직 로마 여행 중 콜로세움을 보지 못하신 분이라면 순간 ‘어? 콜로세움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을만큼 닮은 꼴인 유적 하나를 보고 계실텐데요. 정면에서 보면 1, 2층의 아치 모습이 완벽하게 콜로세움과 같은 이 곳은 Teatro Marcello, 즉 마르첼로 극장입니다. 이 곳은 내부 입장은 불가능하고 외관만 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여러분이 가능한만큼 가까운 곳에서 찬찬히 둘러보시면서 설명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콜로세움이 기원 후 80년에 완공되었고, 마르첼로 극장은 기원전 13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기원 전 11년에 완공되었으니 콜로세움보다 약 90여년 정도 앞서 건설되었는데요. 거의 똑같다 싶을만큼 두 건축물의 기본적인 구조가 똑같아요. 그냥 보시면 콜로세움을 베껴 나중에 만들었다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인데 실상은 정 반대! 바로 이 마르첼로 극장을 모델로 콜로세움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이 곳을 ‘콜로세움의 어머니’라고도 부르는데요.
마르첼로 극장의 정면을 보시면 1층은 도리아 양식, 2층은 이오니아 양식으로 아치 기둥이 장식되어 있어요. 그리고 3층은 중세 이후 건축물이 덧붙여져 있어 고대의 3층 부분은 사라진 모습인데요. 원래 고대의 3층 기둥은 콜로세움과 마찬가지로 코린트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었죠. 다만 참고자료를 보시면 상상 복원도가 있는데 3층은 아치 대신 막힌 벽면에 코린트 장식의 기둥이 있었던 점이 조금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로마에서는 콜로세움이 검투사 전용 경기장으로 기원 후 80년에 완공되었지만, 사실 그 이전 연극 무대를 올리는 이런 반원형 극장은 기원전 1세기부터 고대 그리스의 영향을 받아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 상태였는데요. 물론 그리스 극장들이 지형을 이용해 경사면에 많이 만들어졌던 것과 달리 로마에서는 도심 내에 지형과 관계없이 만들어지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로마 시내의 극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가장 먼저 폼페이우스가 만든 폼페이우스 극장이었죠.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로마의 삼두정치를 이끌었던 인물 중 하나인 폼페이우스의 이 극장은 지금은 판테온 근처에 극장터가 발굴되었습니다.
기원전 55년 폼페이우스가 극장을 만들고 그 라이벌이었던 카이사르 역시 지금 이 마르첼로 극장 터에 극장을 지을 계획을 했지만 기원전 44년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사망을 했던 터였죠. 이 극장은 그의 뒤를 이었던 후계자, 그리고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되는 아우구스투스가 대신 실행을 했던 거죠. 그리고 원래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었던 마르첼로, 로마식으로는 마르켈루스가 사망하면서 그에게 헌정하여 마르첼로 극장이라 불리웠던 곳이예요. 불과 19세의 어린 나이로 사망한 자신의 조카이자 사위였던 마르첼로를 위해 그 이름을 붙였는데 마르첼로가 사망한 이후로도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 선정에 고심했던 아우구스투스지만 쉽지 않았던 역사가 이어지기도 하죠.
이 마르첼로 극장은 현재 높이가 약 20m지만 원래는 32.6m 정도 되었을 것이고 고대에는 약 평균 만 오천명에서 2만명까지 수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요. 다른 수많은 고대 로마의 유적들이 그랬듯, 고대 로마가 쇠락하면서 극장 역시 폐쇄되고 사용되지 않는 동안 채석장으로 활용되기도 했죠. 특히 기원 후 375년에는 근처의 체스티오 거리를 복원하는데 이 곳 마르첼로 극장의 대리석들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잔해가 꽤 남아있어서 13세기에는 로마의 강력한 귀족가문 중 하나였던 사벨리 가문이 요새로 사용하기도 했고, 16세기에는 발다사레 페루치라고 하는 건축가가 오르시니 가문을 위한 궁전을 그 위로 얹었는데요. 그 즈음의 기록을 자료그림으로 함께 확인해보시면서 정면의 건축물과 비교해보세요. 다른 투어들에서 말씀드리긴 했지만 고대 로마 멸망 후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동안 퇴적물들과 함께 고대의 건축물들이 묻히면서 보통 3~4m 아래 고대 로마가 위치한다 전해드렸었죠. 자료그림에서도 마르첼로 극장의 1층 아치가 거의 대부분이 땅 밑에 묻혀있던 것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극장 정면 뒤로 극장 터를 이용해 중세 이후 만들었던 건축물도 마치 공중에 있는 듯한 이유가 아랫 부분이 전부 덮여 있었기에 윗쪽에 건물을 올렸기 때문이죠. 이 곳은 지금도 일부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거 공간이라 개인적으로 이 안에 사는 기분은 어떨까 너무너무 궁금하기도 해요.
아, 그리고 극장 오른편에 위치한 기둥 세개, 신전의 유적 흔적도 당시에는 전부 땅 밑에 숨어있었기 때문에 그 존재를 몰랐던 것을 알 수 있죠. 이 신전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후 다음 챕터에서 이야기 다시 드리는 걸로 할게요.
이런 식으로 안타깝게도 다른 로마의 극장들이 대부분 사라졌는데, 다행히 이 마르첼로 극장은 이렇게 재활용되고 일부가 땅 밑에 덮여있었던 관계로 로마 시내에서는 유일하게 잘 남아있는 극장 유적이 된 거죠. 자, 그렇다면 로마에 남아있는 유일한 극장! 당연히 발굴해야겠죠?
1926년부터 1932년부터 마르첼로 극장을 발굴하고 그 주변의 상점과 주택들을 정리하여 또 다른 유적들을 발굴하게 되는데요. 마르첼로 극장 주변의 로마 신전 유적들을 다음 챕터에서 이어 설명드리도록 할게요!
아폴로 소시아노 신전과 벨루나 신전
마르첼로 극장 오른쪽으로 기둥 세개가 남아있는 유적터가 있습니다. 이 곳은 기원전 433년 있었던 전염병 때문에 지어져 기원전 431년에 완공된 건강과 치유의 신 아폴로 메디쿠스에게 헌정된 신전이예요. 아폴로는 태양, 음악, 궁술의 신이기도 하지만 치유의 신이기도 했기 떄문이죠.
지금 남아 있는 모습은 기원전 221년, 그러니까 처음 만들어진 이후로 약 200년이 지나 가이우스 소시오라는 인물에 의해 다시 지어지면서 아폴로 소시아노 신전이라고 불리우게 되었는데 그 전체적인 모습이 어떠했는 지는 다음 자료에 상상 복원 그림을 보시면 즉각적으로 이해가 되실 거예요!
지금 보시는 3개의 기둥은 상상복원그림에 따르면 아폴로 소시아노 신전의 오른쪽 코너 기둥이 남아있는 것이었던 것을 알 수 있는데, 흥미로운 건 자료그림에는 오른쪽에 신전이 하나 더 있었던 것으로 그려져 있죠.
실제 여러분 앞에는 공터에 발굴된 유물 일부가 곱게 놓여진 것만 확인할 수 있을텐데, 원래는 아폴로 신전 오른쪽으로 자료그림처럼 전쟁의 여신 벨로나를 위한 신전이 위치했었다고 합니다. 이 곳은 전쟁의 여신을 위한 장소였던만큼 로마의 전쟁과 관련해 군사회의를 하는 등의 이슈가 있을 때 원로원들은 이 신전 안에서 모이기도 했구요. 또한 로마가 전쟁을 선언할 때에는 이 신전 앞에 상징으로 둔 전쟁의 기둥에 창을 던짐으로서 로마 시민들과 적들에게 전쟁이 시작됨을 알렸던 곳입니다. 자, 이번에는 극장과 아폴로 신전 터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들어가볼까요? 다음 챕터 들으시면서 들어가보겠습니다.
포르티코 오타비아
자, 혹시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안쪽으로 숨어있는 또 하나의 멋진 유적 하나 더 보러 가보실까요? 자료사진처럼 마르첼로 극장과 아폴로 신전 사이 길로 따라 들어가시면 된답니다.
길을 따라가다보면 1940년 전후로 발굴된 지역이다보니 오른쪽의 집들은 출입구가 공중에 떠있는 느낌이죠? 유적과 함께 산다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어요.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자료사진과 같은 유적이 보일거예요. 포르티코 오타비아라고 부르는 곳인데요. 포르티코는 보통 주랑현관이라고 해석되죠. 열려있는 건축물 정면이 이쪽이었구나 생각해주시면 될 듯 해요.
처음에는 기원전 146년 퀸투스 케실리우스 메텔루스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이후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가 기원전 27년 재건을 하면서 자신의 여동생이었던 오타비아의 이름을 따서 현재까지도 포르티코 오타비아라고 부르고 있어요.
그 이후로도 기원 후 202년도에 화재로 파괴되었던 것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 시대에 개축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데요. 말씀드린대로 지금 보시는 부분은 주랑 현관이었던 부분이고 원래는 그 뒤로 사방으로 둘러싼 포럼 공간 안에 건축물들이 들어온 형태였죠. 다음 두 개의 자료 그림을 보시면서 비교하시면 더 이해가 빠를텐데요.
남아있는 포르티코 부분 옆으로 회랑이 사각형으로 공간을 둘러싸고 그 안에 두 개의 건물이위치했어요. 그 중 왼쪽이 헤라, 오른쪽이 제우스를 위한 신전이었고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 공간안에 그리스와 라틴어 섹션으로 나눈 도서관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죠. 그 중에서 오른쪽 건물은 기원 후 8세기부터 성당으로 개축되어 사용되었고, 중세 시대부터 이탈리아 통일 후인 1885년 이전되기 전까지 이 일대는 수산시장으로 활용되기도 했었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지역은 1555년부터 유대인들의 거주지역인 게토 지구로 지정되었던 곳이기도 해요. 그 이야기는 다음 챕터에서 이어 전해드릴게요!
게토 지역, 유대인 지구
포르티코 오타비아를 포함해서 이 일대가 로마 내의 유대인들의 주거지역으로 지정되었던 게토 지역입니다. 게토 지역을 더 깊숙이 들어가보고 싶다면, 포르티코 오타비아를 바라보고 왼쪽으로 꽤 넓은 골목을 따라 식당이나 바가 이어진 곳을 보실 수 있는데요. 이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1555년부터 형성되어 지금까지 그 전통을 이어 살고 있는 로마 속 유대인들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어요.
이 일대는 워낙 넓어 전반적인 설명을 드릴테니 포르티코 오타비아 근처에 머물면서 게토 지역에 대한 설명을 들으셔도 좋구요. 혹시 판테온이나 나보나 광장쪽으로 도보로 이동하실 분들은 말씀드린 포르티코 오타비아 바라보고 왼쪽의 길로 쭈욱 따라가면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더 깊숙히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유럽 내의 기독교 문화 아래서 유대인 차별의 역사는 오래 되긴 했지만 제도적으로 차별이 시작된 것은 14세기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면서 더욱 심해졌었죠. 로마에서 유대인 거주지역 게토가 생긴건 1555년으로 베네치아가 1516년 유럽에서 최초로 게토가 생긴 것에 이어 로마가 두번째예요. 이 일대가 벽으로 둘러싸여진 이 거주구역 내에서 밤에는 통행이 금지된 채, 누가 보아도 유대인인 지 구분할 수 있도록 남자들은 노란 모자를 쓰도록 했고, 그 외에도 음식과 헌 옷 외에는 물품 거래 등이 전부 금지 당했었죠. 이 게토 지구는 무려 315년이나 더 이어지다가 1870년에 폐지되고 1888년에야 이 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이후 2차 세계 대전에서 또 한 번 독일인들이 이 게토 지구의 유대인들을 아우슈피츠로 끌고가면서 아픈 역사가 남겨져 있어요. 포르티코 오타비아 앞쪽에는 지명을 나타내는 표지판이 하나 있는데, 광장을 의미하는 largo 뒤에 지명으로 그 날을 기억하도록 1943년 10월 16일이라고 씌여있는 곳이 있어요.
바로 그 날 새벽 로마 게토에서 단 하루, 불과 20분만에 1250명을 트럭에 실어 아우슈비츠로 보냈고 나중에 살아서 집으로 돌아온 사람은 불과 15명이었다고 합니다. 이 게토 지구를 걷다 보면 자료사진처럼 바닥에 그 건물에 살았던, 하지만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던 유대인들의 이름과 생몰일이 청동판에 기록으로 새겨져 그 때의 아픔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로마에서 많은 여행자들이 찾지는 않지만, 고대 로마의 유적과 함께 살아가는 로마의 면모를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유적지들을 만났습니다. 땅에 묻혀 있어 유적의 일부를 중세 시대부터 요새로, 아파트로, 사무실로 활용하던 모습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는 마르첼로 극장. 콜로세움의 모델이 되었던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대 로마의 극장 유적과 그 옆에 다시 찾은 아폴론 신전과 벨루나 신전, 중세 이후 수산시장으로 활용되었던 이 곳에 이런 신전이 있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리고 포르티코 오타비아는 고대 건물과 중세의 성당, 그리고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게토 지구까지 이어지는 곳입니다. 좀 더 깊이있게 로마를 이해하는 시간이었길 바라면서 또 다른 여행지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