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함께 여행 할 곳은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언덕 중 하나, 바로 캄피돌리오 언덕입니다. 라틴어로 세계의 머리를 의미하는 Caput Mundi에서 유래해 Capitolino, 영어 단어 Capital의 어원이 된 곳이 바로 이 곳 캄피돌리오 언덕이죠.
명칭만큼 중요한 역사적 사실과 꼭 감상하고 가야 할 건축적인 장소이기도 한데요. 미리 공부를 많이 하고 가지 않는 이상, 일반적인 자유 여행자가 이 곳의 모든 것을 제대로 감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캄피돌리오 언덕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먼저 코르도나타 계단으로 올라가기를 권해드리고 싶은데요. 언덕 사방으로 연결되는 곳이 있지만 기왕이면 동선을 짤 때 캄피돌리오 언덕과 광장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올라가는 코르도나타 계단에서 여행을 시작하길 권합니다.
투어의 본격적인 시작은 계단에서, 하지만 혹시나 동선이 여의치 않거나 뒤늦게 이 내용을 듣게 된다면 마지막에 나갈 때라도 제발~ 계단을 꼭 들러주셨으면 하구요ㅎㅎ
자, 그렇다면 로마에서 가장 반전이 있는 매력적인 곳, 캄피돌리오 언덕으로 올라가 볼까요?
코르도나타 계단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올라가기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화장실/카페 가는 길
화장실/ 카페 이용 후 캄피돌리오 광장 가는 길
캄피돌리오 광장
앞서 말씀드렸던 화장실이나 카페 모두 이용하셨죠? 전해드릴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편한 장소에서 앉아서 들어주셔도 좋고, 찬찬히 거닐면서 들어주셔도 좋습니다.
이 곳은 현재 정면에 있는 건물은 12세기에 지어진 세나토리오 궁전으로 현재 로마의 시청으로 활용되고 있구요. 양 옆에는 미켈란젤로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콘세트라보티 궁전과 누오보 궁전으로 양쪽 모두 카피톨리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양쪽의 건물은 지하로 연결되서 유명한 회화작품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광장이 고대 로마 캄피돌리오 언덕이었을 때부터의 유적, 광장 한 가운데에 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 진품을 비롯한 고대의 유적과 유물이 값진 곳이라 참고하시면 좋겠어요.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것보다 이 공간은 정말 로마에서 가장 반전이 있는 곳! 여러분께 설명 드릴 때마다 짜릿짜릿한 공간인데요. 바로 양 옆의 궁전과 광장을 설계한 사람이 미켈란젤로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이름에서 오는 신뢰감이 참 묵직하죠!
그런데 본격적인 이 광장의 반전을 소개해드리기 전에 이 광장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지 그 또한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시대를 따라 고대로 잠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고대 캄피돌리오 언덕의 이야기는 다음 챕터를 재생해주세요.
캄피돌리오 언덕
‘로마는 7개의 언덕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고대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에 나라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물이 잘 빠지지 않는 늪지대를 피해 언덕에 사람들이 모여살기 시작했던 것이 로마의 역사를 시작하는 대표적인 문구입니다. 그런데 다른 6개의 언덕에 비해 유독 가파르고, 면적이 좁았던 이 곳은 바꿔말하면 올라오긴 힘들고 집은 많이 짓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가장 높은 신을 위한 곳, 바로 제우스 로마식으로는 유피테르를 위한 신전이 지어지게 됩니다.
공사가 끝난 것은 기원전 509년, 그러니까 대략 2500여년 전에 처음 지어졌던 유피테르 신전은 마치 영화 트랜스포머 이름처럼 느껴지는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 신전이라 불리웠는데요. 이 신전을 지으려고 기초공사를 하는 와중, 땅밑에서 한 남자의 시신이 머리부분만 발견되는데 이를 두고 유명한 점성술사들이 모두 입을 모아 로마가 세상의 머리가 될 것이라 해석했다는 거죠. 여기에 당시 로마의 왕은 한가지 소문을 덧붙여 이 시신이 바로 에트루리아의 영웅인 아울루스의 머리라는 의미에서 ‘카푸트 올리’라는 지명을 짓게 됩니다. 이것이 자연스럽게 라틴어 카피톨리노, 영어의 캐피탈, 이탈리아어의 캄피돌리오라는 단어로 유래한거죠.
이렇게 지어진 유피테르 신전에는 가운데 제우스 로마식으로 유피테르가, 양 옆에는 유노, 로마식으로 헤라. 그리고 아테나 로마식으로 미네르바가 함께 자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식명칭은 유피테르 옵티머스 막시무스 신전이면서도 카피톨리노 신전이라 하면 삼신전을 의미하기도 하죠.
지금과 반대로, 포로 로마노를 향해 서있었던 카피톨리노 신전의 모습은 상상복원도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로마에서 가장 신성했던 지역이었던만큼, 로마의 개선행렬이 포로 로마노를 지나 바로 이 곳에서 신에게 감사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을 뿐 아니라 치외법권 구역으로 범죄자들이 이 곳으로 도망쳐도 감히 이 안에서는 그들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살해한 범인들도 바로 이 곳으로 도망쳤었다고 하죠.
하지만 로마에서 가장 신성했던 이 공간도 기원 후 380년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황폐화됩니다. 유피테르는 더 이상 로마의 가장 높은 신이 아니라 이교도의 상징 중 하나가 되어버린거죠. 중세에는 양치기들이 양을 많이 풀어놓아 양의 산이라는 의미에서 몬테 카프라고 불리우기도 했을 정도랍니다. 바로 이런 곳을 바오로 3세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옛 영광을 재현하도록 재단장을 맡겼던 것이죠. 자, 그럼 고대에서 이렇게 특별했던 곳을 미켈란젤로는 어떻게 반전을 주었단 건지! 다음 챕터에서 자세히 이야기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