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입에 도착하면 가장 의외였던 점이 바로 이 유명한 포토스팟이 중세의 한 성당 건물 벽에 붙어있다는 점이었는데요. 때문에 우리는 진실의 입을 유명하게 만든 영화 ‘로마의 휴일’처럼 진실의 입에서 기념사진을 담기 위해서는 이 성당,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을 먼저 한 바퀴 둘러보고 진실의 입에 줄을 설 수 있습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갈 때에는 혹시 여름이라면 어깨나 무릎이 노출된 옷을 입은 경우에 덮을 것을 준비해주시는 것만 확인해주시면 된답니다. 성당 내부는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니 편안하게 다음 챕터 설명 이어들어주세요.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
어떤 분들은 진실의 입에 손 한 번 넣고 사진을 담기 위해 또 성당을 봐야하나 싶을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분들은 로마의 수많은 성당 중 또 다른 특별한 성당을 만날 수 있어 반가울 수도 있겠죠?
자, 8세기 후반부터 건축된 전형적인 중세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치들이 연속된 회랑과 중세 시대 탑 중 로마에서 가장 높은 탑의 정면 모습은 나중에 감상하시고, 성당 내부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이 성당의 진면목은 안쪽의 아름다운 바닥 장식에 있거든요. 성당 정면을 바라보고 가장 오른쪽에 있는 아치 회랑으로 들어가면 성당 내부로 진입하게 됩니다.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 내부에서는 항상 아름다운 성가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이 곳에서 흘러나오는 성가는 그리스어일 때가 많아요. 그래서 로마에서도 굉장히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곳입니다.
원래 이 지역 자체가 고대 로마에서는 테베레 강을 중심으로 상인들과 선원들이 많이 이동하는 지역이었고, 특히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그리스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지역이라 이 곳의 명칭을 ‘스콜라 그레카’ 그리스 공동체라고 부를만큼 그리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장소입니다. 아! 물론 지금은 그리스라 말하지만 당시에는 비잔틴제국이었겠죠.
8세기 처음 성당이 건립되었을 때부터 주로 그리스인들과 그리스인 수도사들의 예배장소로 활용되었던 이 곳은 이름부터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던 거예요.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여기서 코스메딘은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우아한, 장식 등을 의미하는 ‘코스미디온’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합니다.
물론 다른 성당들도 아름다운 곳이 참 많지만, 이 곳은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은 가운데 특히 바닥 장식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예요. 성당 자체는 8세기부터 건축되었지만, 중세 시대 여러 차례 파괴되었다가 지금의 모습은 거의 대부분 교황 칼리스토 2세의 지시로 1123년의 성당 복원때에 이루어졌어요. 특히 12~13세기 유행했던 이 코스마테스크 양식은 세밀하게 재단된 대리석들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무늬의 반복이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로마의 모자이크 장인 가문이었던 코스마티 가문에서 유래한 이 장식은 이후 로마 뿐 아니라 이탈리아와 유럽의 성당 장식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쳐서, 지금 바닥을 잘 기억해두시면 성당 바닥 곳곳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어요. 특히 여러분이 무조건 가시는 곳 중 하나는 바티칸 박물관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그리고 이제는 바닥에서 고개를 들어 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시게 되면 본당을 중심으로 양쪽의 기둥이 측랑을 나누고 있는데요. 자세히 보시면 기둥의 모습이 조금씩 서로 다른 걸 찾으실 수 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본당에서 몸을 돌려 뒤쪽을 볼까요?
그러면 이번에는 성당 벽에 왠 쌩뚱맞은 기둥이 끼워져 있는 걸 보실 수 있는데… 눈치채셨나요? 로마에서는 이런 일이 흔하죠ㅎㅎ
지금의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이 세워지기 전 이 곳은 고대 로마에서는 포럼과 헤라클레스에게 바쳐진 아라 마시마 신전이 있던 터였어요. 그리고 이 곳이 고대 로마가 멸망하면서 6세기부터는 빈민구제시설이 들어오기도 했었는데, 바로 그 건축물들의 잔해를 활용해서 성당이 지어진 거죠. 그래서 성당 본당을 나누는 기둥 중 무려 18개의 기둥은 고대의 건축물 기둥을 활용한 거예요ㅎㅎ 실제로 유료긴 하지만 성당 지하 투어도 가능한데, 많은 것이 남아있지는 않아도 고대 로마 신전터, 또는 포럼 유적터로 추정하는 흔적들이 발굴되어 있기도 합니다.
고대 로마의 신전과 포럼 유적이 6세기부터는 빈민구제시설로, 8세기부터는 성당으로, 그리고 오랜 시간에 많이 사라졌지만 제단화와 천장을 장식했던 벽화의 일부는 높은 곳에 조금이지만 남아있죠. 8세기부터 12세기의 비잔틴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성확가 장식되어 있는 곳. 로마에 비잔틴 문화를 소개했던 중심지이기도 했던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이 곳에서 한 번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으니 꼭 다음 챕터도 이어들어주세요!
성 발렌타인의 두개골 유해가 여기에?
어랏! 나는 진실의 입에 손 한 번 넣고 싶었을 뿐인데 성당에 볼 게 엄청 많네? 싶으시죠. 자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여러분 대부분께서 알고 계실! ‘발렌타인 데이’의 주인공을 찾아보러 가요!
성당 본당을 바라보고 왼쪽 측면에 촛불 봉헌을 하고 있는 제단이 하나 있을 거예요. 언뜻 보면 제단화만 보일텐데 제단화 아래를 자세히 보면 작은 보관함 안에 성 발렌타인, 라틴어로는 발렌티누스의 두개골 유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 발렌타인에 대해서는 사실 여러 전승이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가장 유력한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3세기 로마 사제, 나중에는 주교가 되는 발렌타인이 당시 로마의 군법을 어기고 전쟁터로 나가기 전의 로마 군인들을 연인들과 결혼시켰다는 거예요. 이제 막 전쟁을 나가는 남자들에게 신혼은 고향을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만들어진 법이었다고 해요. 이 법을 어기고 성혼시켰던 발렌타인 신부는 당시 연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성직자였지만, 안타깝게도 법을 어긴 것이 발각되어 2월 14일에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흘러 그의 순교일 2월 14일이 연인들이 마음을 전하는 날로 변모했다고 하네요?ㅎㅎ
로마에서 순교한 발렌타인 성인의 두개골은 바로 이 곳에 모시고 있지만, 나머지 유해는 발렌타인 성인이 주교로 있었던 이탈리아의 소도시, 테르니라는 곳에 성 발렌타인 성당에 모셔져 있어요. 제가 아는 이탈리아 가이드 친구가 아주 오래 결혼을 하고 싶어했다가 인연을 못만났는데 이 성당과 테르니 성당까지 다녀온 다음에 좋은 사람 만나 결혼했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준 적이 있어요ㅎㅎ 혹시 정말 급하신 분들은 지도에 테르니,라고 검색도 해보시는 거 추천할게요!
자, 이제 성당의 중요한 부분은 모두 보셨는데- 이제 진실의 입 사진 찍으러 가볼까요? 진실의 입 사진 대기 줄이 길면 대기하면서 설명 들어주시면 된답니다. 혹시 드문 일이지만 아주 운 좋게 줄이 짧다면! 여러분 편안한 시간 때 설명 들어주셔도 된답니다.
진실의 입, 이 돌덩이의 정체는?
1953년 전세계를 강타한 영화 로마의 휴일, 지금 현재까지 이 영화 장면 때문에 여러분이 이 곳에 왔다니 문화의 힘이 이렇게나 대단하구나를 새삼 느끼게 되는 장소예요.
영화 내용은 너무너무 유명해서 대부분 잘 아실텐데, 워낙 오래된 영화라 혹시 안보셨다면 첨부해드리는 영화 클립 꼭 여행 중 쉬실 때 한 번 재미로 보시면 좋겠는데요.
그보다 제가 소개해드리고 싶은 건 우리의 손을 집어넣는 저 거대한 돌덩이의 정체가 무엇인가예요.
무려 지름 1.5m에 무게가 1300kg이나 되는 이 거대한 대리서 원판이 무엇인지 사실 여전히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이 추정만 할 뿐인데요. 일단 얼굴은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다, 또는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토네다 등의 설이 있는데요.
가장 먼저 제기되었던 의견은 하수도 뚜껑이다라는 의견이 있었어요. 바로 근처에 테베레 강이 있었기에 그 곳으로 흘러들어가는 위치에 있던 헤라클레스 신전 하수도 뚜껑이라는 거죠. 그런데 하수도 뚜껑치고는 물이 빠질 수 있는 구멍의 크기가 너무 작고, 게다가 사용된 대리석이 그리스에서 가지고 온 매우 고가의 석재였기 때문에 하수도 뚜껑으로 사용되기에는 너무 귀했단 의견들이 제기됩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제기된 의견이 정원의 분수 장식이었을 거란 의견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분수에 물이 흘러나오는 곳에 장식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중 하나였을 거란 의견인 거죠.
사실 여전히 의견은 분분합니다. 부근에 있었던 신전의 우물 뚜껑이란 의견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정체가 무엇이든 이미 15세기 중반부터 ‘진실의 입’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기록들에서 발견되는데 실제 옛 그림들을 보면 이미 그 전부터 성당 앞 광장쪽에 이 형태의 원반이 있었던 것이 확인되기도 한답니다.
기록이 있기 이전부터 이미 거짓말쟁이의 손목을 잘라버린다고 알려졌던 ‘진실의 입’ 실제로는 이 대리석 뒤에 심판자가 칼을 들고 서서 거짓말하는 사람, 위증자의 손목을 내리친 것으로 추정하는데 중세 당시에는 범죄자나 사기꾼들을 조사할 때 이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특히 바람 핀 배우자와 함께 이 앞에 섰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장 많이 전해진다고 합니다.
그러다 1631년,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신 자리로 옮겨진 진실의 입. 오늘 여러분의 손목은 무사할까요?ㅎㅎ (농담이었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유럽에서 ‘진실의 입’으로 알려진 옛 건축 장식품, 잠시 오드리 헵번이 빙의되었다 생각하고 놀란 모습으로 기념 사진 담아보시는 것도 추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