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사이에 서 있어 발걸음이 바쁜 여행자들은 대부분 이 개선문을 스치듯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나폴레옹도 이 개선문을 파리로 가져가려다 이 웅장한 규모의 개선문을 옮기기 어려워 대신 프랑스 파리에 개선문을 세우도록 하죠. 신고전주의 바람을 타고 유럽 곳곳, 세계 곳곳 개선문이 세워지게 된 것은 바로 로마의 영향이었답니다.
이 투어를 통해 스쳐지나갈 뻔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의 모습을 찬찬히 함께 바라보고, 로마 역사상 그리고 세계사에서도 가장 후대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평가받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야기까지 함께 들어보시죠.
그리고 투어를 들으며 콜로세움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의 모습을 한 화각에 담아 사진도 찍어보세요. 주변 여행지로 이어지는 꿀팁도 함께 소개해드릴 예정이니 역사이야기와 함께 알찬 정보 채워가실 수 있답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강조하자면… 콜로세움 나와 개선문까지 가는 길과 그 주변에 소매치기가 많은 편이예요. 특히 뒤에서 유독 가깝게 따라와 가방을 여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행하면서 잠시 주변 사람들을 조심히 하시길 권하는 구간입니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역사와 특징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사이 우리의 시선을 끄는 개선문 하나가 웅장하게 서있습니다.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인데요. 현재 로마에 남아있는 3개의 개선문 중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진 개선문입니다. 가장 마지막 개선문이라 해도 315년에 완공되었으니 뭐든 기본 천년, 이천년은 된 로마의 클라쓰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네요. 그렇죠?
하지만 이 개선문은 조오오금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는데요. 이 전체가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승리를 기념하며 만들되, 기존에 있었던 다른 황제들의 건축물 일부를 떼다가 조합한 결과물이랍니다.
그래서 잠시 첫번째 첨부 자료를 보면서 설명을 들어주시면 더욱 좋을텐데요! 자료의 주황색 부분이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위해 만들었던 부분이고, 그 윗 부분들은 안쪽으로 벽돌 뼈대를 만들고 겉 부분에 각각 다른 시대의 황제들이 만든 건축물의 부조 일부를 떼다 붙인 겁니다.
주요 장면들은 개선문과 콜로세움을 함께 바라보는 방향에서 보셔야 하는데요. 그 중에서 자료그림처럼 주황색으로 표시된 개선문 하단은 지금의 알제리 북부에 해당하는 당시 누미디아 왕국에서 가지고 온 황색 대리석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전쟁 장면들을 묘사하고 있어요! 장면 하나하나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로마로 향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군대와 밀비오 다리 전투, 전쟁이 끝난 후 포로 로마노에서 황제가 연설하는 장면 모습 등이 새겨져 있어요.
그리고 가장 위쪽, 초록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네 명의 남성들이 우뚝 개선문 위에 서 있는 모습일텐데요. 이 모습은 다키아,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루마니아 지역을 정복하고 끌려온 다키아 포로들의 모습인데요. 이 부분은 다키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1세기 말 2세기 초의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의 건축물에서 떼왔던 부분입니다. 마찬가지로 노란색으로 표시된 메달리온, 그러니까 동그란 부분의 부조는 2세기 초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건축물에서 떼 온 부분이예요. 그래서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기의 전쟁은 사냥 장면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사냥 장면이나 전쟁의 여신 디아나, 궁술의 신 아폴론 등의 모습을 보실 수 있어요.
파란색 부분에는 1세기 후반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건축물에서 떼어온 부분인데 여기는 원래 조각에서 황제의 얼굴만 콘스탄티누스의 모습으로 바꿔 장식을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선문 위에는 개선하는 콘스탄티누스의 황금상이 있었을텐데 소실되어 더 이상 그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듣다보니 조금 특이하지 않나요?
한 황제의 개선문인데 왜 여러 시대 황제들의 건축물에서 떼다가 요리조리 붙였나? 라는 의문이 드실텐데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재위했던 4세기 초의 로마는 사실상 로마사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국운이 기울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때문에 황제를 위한 개선문을 빠르게 지어야하는 와중에 생각해낸 방법이기도 하고, 또한 새롭게 등극한 황제에게 로마인들에게 사랑받았던 황제들의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했던 방법이기도 하죠.
그래서 이 개선문에 대한 후대의 평가 역시 갈리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 개선문을 통해 1세기 후반부터 4세기까지의 로마의 건축 장식을 한번에 감상할 수 있다고도 하고, 또 누군가는 여러 세대의 건축물을 짜깁기한 결과물이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을 떠나 개인적인 감상은 모두 다 다를텐데요.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보아도 규모상 웅장하고 멋드러진 이 개선문을 보고 감탄할 수 있잖아요? 그 중 한 사람이 나폴레옹입니다.
나폴레옹은 로마에 도착한 후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자체를 파리로 옮기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대신 루브르 궁전 옆에 카루젤 개선문을 세우기로 하죠. 그리고 그 위에는 베네치아 산 마르코 성당에서 가지고 간 콰드리가, 즉 네 마리 말 청동상을 옮겨다 놓습니다. 투어라이브 베네치아 투어 들으신 분들은 이에 대한 내용도 자세히 들으셨을텐데요. 첨부해드린 카루젤 개선문 자료사진 보시면 지금 보고 계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과 얼마나 비슷한 지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로마 사람들은 나폴레옹이 이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 대신 로마 내의 다른 개선문을 보았다면 그 모델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하기도 하는데요. 그 이야기는 포로 로마노 안에 남아있는 나머지 2개의 개선문 이야기에서 풀어드리는 걸로 하고, 여기서는 로마 역사 뿐 아니라 세계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 개선문의 주인공에 대해 좀 더 전해드릴게요. 이 이야기는 현장에서 걸으면서 들으셔도 되고, 마음속에 잘 기억해두었다가 여행 중 시간 남을 때 들으셔도 된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누구?
이 개선문의 주인공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수명을 천년 정도 더 수명연장했던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 로마 제국에서 박해받던 종교인 그리스도교, 즉 기독교를 공인함으로서 기독교 역사에서도 큰 전환점을 제공했던 인물인데요.
잠시 배경설명을 더하자면, 3세기 말의 로마 제국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아시아와 아프리카 세 개 대륙에 걸쳐 거대해진 상태를 300년 가까이 유지하면서 수도 로마에서의 통치가 사실상 어려운 상태였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라는 황제가 제국을 2명의 정제 그리고 2명의 부제 총 4명이 분할통치하는 사두정을 실시하게 됩니다만 불과 한 세대만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하는 순간부터 사두정은 흔들리게 됩니다.
결국 혼란에 빠진 사두정은 마지막 두 사람, 콘스탄티누스와 막센티우스가 격돌한 밀비오 다리 전투에서 그 끝을 맺게 되는데요. 마지막 자료그림은 바티칸 라파엘로의 방 중에 벽화 한 장면이예요.
흔들리던 사두정의 마지막 두 인물, 콘스탄티누스와 수도 로마를 기반으로 한 세력인 막센티우스가 로마의 밀비오 다리 위에서 격돌합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는 이 전쟁 직전 환시를 보았다는 전승이 있죠. 그림은 바로 그 장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기독교를 상징하는 표식과 함께 ‘이 표식 아래 승리하리라’라는 천사의 계시를 보았다고 하죠. 그리고 이 전투에서 병사들에게 무기마다 십자가를 달라했다고 합니다.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밀비오 다리 전투 초반 막센티우스가 테베레 강에 빠져 익사하면서 그들의 실제 전투는 생각보다 손 쉽게 마무리가 되버립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선문은 바로 사두정의 혼란을 정리한 콘스탄티누스를 위해 만들어진 건축물인거죠. 그런 의미에서 이 개선문은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며 만들어지는 것과 다르게 로마 내부에서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했다는 점에서는 조금 독특한 것이기도 해요.
콘스탄티누스는 312년 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더욱 바쁜 행보를 이어갑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하고, 로마 최초로 황제로서 기독교인이 되죠.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 헬레나 성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사실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던 기독교인들을 자신의 정치적 영향 아래 두었던 것으로도 평가받는데 그 결과는 매우 강력했습니다.
유일신인 기독교의 특성상 매우 빠른 속도로 로마 제국 내로 확산되던 것이 불과 반세기 만인 380년 경에는 로마 제국 전체의 종교로 선언이 될 정도였죠. 그 결과는 여러분도 너무 잘 아시는 것처럼,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중세 유럽의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던 기독교 문화가 그 영토 안에 있었던 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보면 너무 잘 아실 거예요.
그리고 그 중 한 도시가 지금은 오스만투르크, 현재의 터키에 의해 이스탄불로 불리우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 비잔티움의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리웠던 곳이랍니다. 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천년 가까이 그 역할을 했던 로마 대신 기원 후 330년 NOVA ROMA, 즉 새로운 로마를 선언하고 동쪽으로 옮긴 곳이 비잔티움이라고 불리웠던 곳이죠.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도시라는 의미에서 콘스탄티노플로 불리우면서 동로마 제국의 수도로서 천년의 역사를 더 이어갑니다.
로마사를 넘어 종교사까지 큰 영향을 미쳤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이야기는 기독교사를 자주 설명해드리는 바티칸이나 로마 역사 곳곳에서 들으실 수 있으니 함께 기억해주세요!
개선문 주변 포토스팟과 우산 소나무
개인적으로 콜로세움과 개선문이 동시에 보이는 이 길에서 사진 담는 게 참 예쁘더라고요! 멋지게 사진도 담아보시구요.
또 로마와 이탈리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우산 소나무도 가로수로 멋지게 이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중해 연안에서 자라는 이 우산 소나무를 로마인들은 고대 로마 가도를 따라 주욱 심었었어요. 지금도 그 모습이 이탈리아 곳곳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 기다랗게 키는 길죽하지만 우산처럼 넓게 퍼져 예전에는 행군하는 로마병사들에게, 지금은 여행자들에게 그늘을 선사하는 가로수랍니다.
로마 시내 안에서 주욱 이어진 우산 소나무 길 중 제일 예쁘더라고요. 잠시 소나무도 감상하시면서 다음 여행지로 이어가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