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주 안녕하세요. 모네와 함께 빛을 찾아 지베르니로 떠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파리 시내 야경 투어에 이어서 지베르니 투어를 맡게 된 조세련 가이드입니다. 지금 이 투어를 듣고 계신다면 지베르니가 어떤 곳인지 대충은 알고 계시겠죠. 인상주의의 거장 끌로드 모네라는 화가가 말년을 보낸 곳인데요. 그분이 이곳에 살면서 그림을 정말 많이 그리기도 했지만, 그림 못지않은 걸작품 하나를 남겨두고 가셨죠 그게 바로바로 정원입니다. 정원은 나의 가장 아름다운 명작이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아름다운 모네의 정원을 보고자 지베르니를 방문하실 텐데요. 사실 모네의 정원뿐만 아니라 지베르니 자체가 하나의 정원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파리 시내에서는 볼 수 없는 프랑스 시골 풍경을 마주하실 수 있고요. 모네라는 화가가 누구인지 인상주의는 무엇인지 더불어 모네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는 파리의 미술관들을 소개해 드릴게요.

기차를 타고

빛을 쫒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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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잘 탑승하셨나요? 작품 속 기차와는 달리 증기를 내뿜지도 않고 까만색 기차도 아니지만, 지금 여러분들이 느끼시는 설렘은 모네가 지베르니에 갈 때의 설렘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생라자르 역 그림은 1877년에 그렸다고 설명드렸는데 모네가 지베르니에 정착한 건 1883년입니다. 6년 후예요. 그렇다 보니 모네가 여러분들처럼 지베르니에 가기 위해 생라자르역에 왔다가 그림으로 그린 것은 아니었구요. 모네는 그 전에도 기차를 타고 이곳저곳 떠돌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특히 모네의 고향인 르아브르와 루앙 대성당 연작을 그렸던 루앙 항구도시 옹플레르 시골 마을 아르장뜨유 등이 모두 프랑스의 북서쪽에 위치하는데 그곳에 가기 위해서는 이 생라자르 역을 거쳐야만 했죠. 그때 당시에 화가들이 기차를 많이 그렸다고 했는데요.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기차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큽니다. 왜냐하면, 인상주의라는 것이 아뜰리에 즉 그림을 그리는 화실에서 상상을 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서 직접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특징이거든요. 밖에 나가서 그림 그리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나 싶으실 수도 있는데, 인상주의 이전에는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뿐더러,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습니다. 인상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카데미즘이 유행을 했었죠. 아카데미 우리가 알고 있는 학원이랑 비슷한 건데요. 학문 예술의 연구와 발전을 지향하는 기관을 아카데미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점차 이런 학문과 예술의 발전을 위한 기관들이 각 시대의 지배자들을 위해 현실의 문제는 뒤로하고 지배자를 드높이는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회 비판 그런 거 하지 않아요. 다양성도 인정받지 못해요. 사람들의 생각이 다양해지면 그만큼 현 시대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 쉽거든요. 그래서 획일화된 미적 기준을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시대의 화가들은 윗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요? 이런 그림을 그렸습니다. 상세페이지 1번 그림을 보시면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1층에서 보실 수 있는 작품인데요. 아름다운 비너스와 천사를 보실 수 있죠. 전형적인 아카데미즘 예술의 소재입니다. 인상주의라는 게 처음부터 인정받는 그림은 아니었는데요. 돈을 벌지 못했습니다. 그때 당시의 화가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살롱이라는 곳에 작품을 출품해야 했어요. 거기서 인정받고 작품도 팔고 후원을 받아야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데, 당시의 살롱에서는 아카데미즘 예술을 원했습니다. 프랑스 제국을 굳건하게 해줄 작품을 원했던 거죠. 신화 천사 영광 역사와 같은 정치적 색채를 뛴 그림들을 완벽한 원근감과 완벽한 구조로 그려내는 것이 잘 그린 그림이다. 평가받았습니다. 알렉상드르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을 보시면 비너스 신화적 인물이죠. 천사 종교적 소재입니다. 비너스의 에스라인 완벽합니다. 심지어 황제인 나폴레옹 3세는 이 그림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구매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이 비너스의 탄생이 극찬을 받을 때 살롱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았던 작품이 있습니다. 2번 그림을 보시면 이것도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실 수 있는 그림인데요.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에 점심 식사 라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을 본 심사위원들은 흉측한 그림이다. 붓으로 문지른 것 같다 해부학적 구도도 맞지 않다 타락한 화가다 이런 평가를 남깁니다. 물론 탈락됐죠 그런데 그해 탈락한 화가들이 너무 많은 나머지 화가들이 항의를 해요. 도대체 평가 기준이 뭐냐 한번 보여줘 봐라 이런 불만이 나오니까 떨어진 작품들을 전시하고 재평가하는 낙선전이 열립니다. 그러면서 벌거벗은 젊은 여자가 젊은 남자들과 숲에 앉아있는 그림이 걸렸다는 소문이 파리 젊은이들 사이에 파다하게 돌기 시작했죠. 그 소문을 들은 모네와 그의 친구들이 그 그림을 보러 갑니다. 그러곤 심사위원과는 상반된 이야기를 하죠. 저 하얀 살결을 봐 마무리도 없고 아주 간결해 붓의 흔적도 그대로 남아 있고 넓은 빛의 퍼짐은 자연의 빛이야 그녀는 우리를 응시하고 있어 바로 이거야. 우리의 세계를 그린 거야. 고대 로마나 그리스 혹은 올림피아 신전이 아니라 파리 그 자체를 그린 거지 그때부터 끌로드 모네와 그의 친구 르누아르 바지유는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누구나 똑같이 그리는 대상이 아니라 진짜 자연 진짜 세계를 그리기 위해 아틀리에 밖으로 나갑니다. 그림의 소재를 찾아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데 기차가 없었다면 뭐 마차를 타고 다녔을까요? 인상주의 화가들 마차 탈 돈도 없었을 거예요. 돈을 못 벌었으니까요? 걸어서 그림 그릴 곳을 찾아야 하는데 마땅치 않죠 기차가 없었다면 우리는 수많은 걸작품을 놓쳤을지도 모릅니다. 인상주의가 이 시대에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기차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창밖을 한번 보세요.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죠. 창문을 액자라고 생각하시면 풍경은 살아 움직이는 그림처럼 보입니다. 기차를 타고 빛을 쫓아 그림의 소재를 찾아 유랑하듯 그림을 그리던 끌로드 모네가 창밖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상상해보세요.
지베르니로 향하는 세 가지 방법

모네의 집까지 셔틀버스 타기
제 인생 첫 해외 여행지였던 파리에 반해 아직까지도 그날의 파리를 마음에 품으며 살고 있습니다.
"10분 드릴게요~ 사진 찍고 오세요!" 10분 동안 에펠탑을 감상하고 에펠탑 열쇠고리를 샀던 샤이오궁. 아침 일찍 문열자마자 궁전과 정원을 슬쩍 둘러보고 나왔던 베르사유. 내부엔 들어가지 않고 피라미드에서 사진만 찍은 루브르와 1시간 동안 바쁘게 쇼핑했던 프랭땅 백화점. 피곤해서 잠들었던 바토무슈까지.
그렇습니다. 파리와의 첫만남은 '패키지 여행'을 통해서였습니다. 심지어 머물렀던 시간은 단 하루였습니다. 정말 좋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조금 더 머무를 수 있었다면... 그리고 생각했죠. 나중에 여기서 꼭 살아봐야겠다. 그 후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어학 연수를 하고 파리에서 가이드를 시작했습니다. 파리에 살면서 처음 만났을 때는 보지 못했던 파리의 매력들을 온전히 느꼈고, 제가 느낀 이 감정들들을 파리에 찾은 여러분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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