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약 1500여 년의 시간을 화산재에 덮여 잠들어 있던 도시 폼페이. 그렇다면 2000년 전 로마 시대 폼페이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기원 후 79년 8월 24일. 그 날은 지금의 이탈리아 여름날처럼 이른 아침부터 해가 쨍쨍 떠올랐을 겁니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이는 폼페이 시민들도 물론 있었겠죠? 거리 곳곳은 마차가 달리는 소리, 사람들의 인사 소리 등으로 분주했을 거구요. 그리고 미묘한 땅의 떨림 역시 아침부터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폼페이 시민들에겐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었을 거라고 하는데요. 폼페이에서 바로 보이는 베수비오 화산은 폼페이 시민들에게는 불의 신이자 대장장이의 신인 불카누스가 사는 곳이었습니다. 비옥한 땅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불카누스 신이 바쁘게 일할 때마다 땅이 울리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믿었고, 신이 분노하면 이미 기원 후 63년, 즉 16년 전에 이미 대지진이 일어났던 경험도 이들에겐 있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일상의 아침을 보내고 오후 한 시가 되었을 무렵에, 땅이 무시무시하게 흔들리면서 주변의 물건들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 쾅 하는 굉음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화산의 폭발을 목격합니다.
자료 사진처럼 우리에게도 익숙한 버섯 구름의 형태로 화산 위 검은 구름이 무려 상공 15킬로미터의 높이까지 하늘로 치솟았다고 해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라면 휴대폰을 꺼내 인증 사진부터 찍고 화산 폭발을 인지하고 도망가기 시작할텐데, 문제는 당시 폼페이 시민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지를 못했어요. 화산 자체를 아예 몰랐던 거죠. 베수비오 화산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는 하늘을 덮기 시작했고, 곧 화산재가 눈처럼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돌의 형태로 화산쇄설물이 만들어져 강한 바람을 타고 무려 시속 200킬로미터의 속도로 날아오기 시작해요. 심상치 않은 상황에 바로 대피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깜깜해지는 하늘과 날아오는 돌들을 피해서 집으로, 또는 귀중품을 챙기기 위해 서두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폼페이에는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날아오는 화산재와 돌을 피해 실내로 대피했던 사람들은, 곧 빠른 속도로 쌓이는 화산재와 돌 때문에, 나중에는 실내에서 바깥으로 탈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요. 그 와중에 점점 화산에서 분출한 유독 가스로 사람들은 서서히 숨쉬기 힘든 환경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화산은 79년 8월 24일, 오후 1시 경 그리고 그 이후, 그날 저녁, 다음날 오전까지 총 세 번에 걸쳐 분화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화산이 분출하며 만들어지는 화쇄난류라고 하는 흘러내리는 암석 덩어리가 베수비오 화산을 타고 흘러내렸어요. 최고 시속 350킬로미터의 속도로 최고 800도까지 올라가는 뜨거운 화산 난류가 혹여나 남아 있을 생명의 기운을 모두 덮어버리고, 폼페이는 말 그대로 역사 속에서 사라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인구 2만 여 명의 폼페이는 이때 약 20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말 그대로 재난 현장이었어요.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도 했지만, 화산재로 4~7미터까지 덮여버린 도시는 그 이후 돌아온 시민들도 도시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이미 63년 그리고 79년, 무려 짧은 시간 내 두 번이나 불카누스 신의 분노를 받은 도시로 돌아오고 싶어 했던 사람도 없었던 거죠. 자연스럽게 모든 사람들이 떠난 이 도시는 서서히 화산재에 덮여 사람들에게 기억 속에서 잊혀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도시가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한 사람의 기록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당시 로마에서 남부로 파견되었던 해군 함장 대 플리니우스가 베수비오 화산이 분출하자 함대를 이끌고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출동을 하게 돼요. 그때 집에 있던 조카 소 플리니우스에게는 집에 남아 가족을 안전히 보호하라고 하죠. 안타깝게도 삼촌이었던 대 플리니우스는 사람들을 구출하다 유독가스에 질식해서 그 이후 사망한 채로 시신이 발견되고 말았지만 조카 소 플리니우스가 살아남아 자신이 보았던 베수비오 화산의 분출 모습을 상세히 기록해서 친구인 역사가 타케투스에게 편지로 전합니다. 이때 그가 보았던 모습을 버섯 구름 모양, 핵폭발의 형태로 화산이 분화했던 모습을 기록했던 것을 후대 사람들은 과장되었다고 믿지 않았지만, 이후 실제 화산 분화가 관측되고 그의 기록이 매우 정확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지금도 화산 분출의 형태는 그의 이름을 따서 '플리니안 분출'이라고 부른답니다.
2000년 전의 재난 현장이다 보니 마음 한 켠으로는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인데요. 동시에 고고학적으로서는 축복이 된 곳이기도 하죠. 화산재와 화재 난류로 도시가 완벽하게 덮여버린 바람에 오히려 평범한 일상은 2000여 년의 시간에 따라 사라진 대부분의 도시와 다르게, 이 곳은 로마 시대 완벽한 타임머신이 됐어요. 자, 이제는 타임머신을 타고 2000년 전 로마인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폼이 도시 안으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00:00 폼페이가 화산재에 덮인 날
01:24 화산 분출 자료 사진
03:54 유일한 기록
05:02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