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테네인의 보물창고자, 시프노스인의 보물창고를 모두 감상하셨다면, 이제 우리가 걸어온 신성한 길을 따라서 다시 올라가 보도록 할텐데요. 일단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첨부해드린 첫 번째 사진의 지도에 3번 좌표로 표시된 아테네인의 보물창고 입니다. 아테네인의 보물창고를 향해 이동하시다 보면요, 중간에 첨부해드린 두 번째 사진과 같은 알 수 없는 모양의 특이한 물체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실 수 있는데요. 마치 거대한 타조알이나 공룡의 이빨 화석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보고 계시는 것은 ‘옴파로스’라는 이름을 가진 비밀스런 물체인데요. 많은 호기심이 생기시겠지만, 일단 지금 보고 계신 이 바위 모양의 물체가 놓여있는 위치만 대략적으로 기억해 두시구요. 이 정체 모를 물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후 델피 고고학 박물관의 11번 방에서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3번 좌표에 도착을 하시면요, 첨부해드린 세 번째 그림과 같이 생긴 멋진 하얀색 건물이 눈앞에 펼쳐져 있을텐데요. 이 건물은 바로 기원전 507년에서 508년 사이에 아테네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보물창고입니다. 앞서 우리가 시프노스인의 보물창고를 살펴보았으니 건물의 용도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바로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것 같구요. 특히 앞의 시프노스인의 보물창고를 포함해서 아폴론 성역에 있던 대부분의 보물창고가 이제 원형을 알 수 없는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아테네인의 보물창고는 이 구역에서 유일하게 원형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음을 바로 확인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아테네인의 보물창고도 원래는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심하게 원형이 훼손되어 있었지만, 1903년부터 1906년 사이에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통해 원형의 모습을 다시 되찾은 것이라고 하네요. 어찌 됬건 간에, 오늘날 이 아테네인의 보물창고가 이 아폴론 성역에서 유일하게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최후의 보물창고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일단 이 건물은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운 하얀색 대리석을 사용해 만들어져 있구요. 첨부해드린 네 번째 그림을 보시면, 이 건물의 원형 복원도를 통해서 좀 더 세밀한 부분에서의 차이를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원형 복원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과거 이 건물의 내외부에는 화려한 장식과 수많은 조각품들이 들어서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원형 복원도와 실물 사진에 제가 ‘메토프’라고 표시해드린 부분의 조각 장식들을 잠시 살펴드리고자 합니다. 메토프는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에서 삼각 지붕 아래쪽에 위치하면서, 보시는 것처럼 네모난 모양 안에 그림을 새긴 부조 장식 조각을 이야기 하는데요. 현재 여러분들께서 보고 계시는 건물 윗편에서도 비록 그림의 원형을 유추하기는 어렵지만, 메토프 조각의 흔적이 복원되어있는 것을 확인하실 수가 있구요.
다행히도 이곳에서 발굴된 메토프 조각들의 원형 진품들은 모두 옆에 있는 델피 고고학 박물관 7번과 8번 방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된 아테네 보물창고의 수많은 메토프 조각들은 공통적으로 신화에 등장하는 두 영웅의 이야기들을 묘사하고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첨부해드린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사진에서처럼, 아테네인의 보물창고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는 메토프의 북쪽면에는 영웅 헤라클라스의 모습이, 그리고 남쪽면에는 또 다른 영웅 테세우스의 이야기가 다양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스는 여러분들께서도 너무나 잘 아시다시피,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의 영웅이자, 신의 반열에까지 오른 인물이구요. 올림포스 신앙을 섬기던 고대 그리스의 모든 도시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추앙을 받던 영웅이었습니다.
한편, 그리스 신화에서 무시무시한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를 무찌른 장본인이자, 헤라클레스에 버금가는 영웅으로 칭송받던 테세우스는요, 특히 아테네를 대표하는 영웅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이것은 테세우스 자체가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피를 이어받았고, 후에 보위를 물려받아 아테네를 훌륭하게 통치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고 계시는 아테네인의 보물창고뿐만 아니라, 아테네인들의 건축에서는 유독 이 테세우스를 소재로 한 조각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구요. 특히 아테네인들이 이민족들과 큰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에 짓는 건축물에는 대체로 이 테세우스의 이야기들이 건축의 조각으로 새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대의 아테네인들이 장식한 이 메토프 조각들에서는요, 공통적으로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가 짐승을 사냥하거나, 켄타우로스나 미노타우로스 같은 괴물을 무찌르거나, 혹은 아마존의 여전사들과 싸워 승리하는 모습 등의 싸움 장면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요. 놀랍게도 우리는 이러한 메토프 조각 장식을 통해 당시의 고대 아테네인들이 자신들의 세계관과 민족의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고대의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을 문명인으로 묘사하고, 반면에 주변의 이민족들을 모두 야만인이라고 보았는데요. 잘 아시다시피 아테네인들은 고대 서양세계에서 최초로 왕이 없는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한 자유시민들이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 주변의 여러 민족들은 대부분 여전히 왕이나 귀족이 지배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었지요.
따라서 아테네인들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만들어낸 자신들의 사회문화를 문명화된 것으로 여긴 것과 동시에, 자신들을 제외한 주변의 모든 이민족 문화를 야만적인 것으로 여기는, (좋게 말하면 자부심이 넘치고, 나쁘게 말하면 상당히 오만한)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변의 이민족들과 전쟁이 벌어지면, 자신들의 예술작품에서 이를 ‘문명화된 인간’과 ‘야만적인 괴물’ 사이의 대결로 표현하곤 했는데요.
보물창고의 메토프 장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테네들은 사람의 모습을 한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 같은 영웅으로 묘사된 반면에, 이민족들은 짐승이나, 반인반수의 괴물들, 그리고 특이한 인종의 아마존 여전사들로 묘사되고 있음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이민족과는 차별되는 그리스인들의, 특히 아테네 시민들의 문화적 우수성을 드러내려 했다는 의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아테네 시민들의 자부심을 드러내기에 이곳 델피의 아폴론 성역은 너무나도 안성맞춤인 공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잠시 뒤에, 델피 고고학 박물관에 가시게 되면, 7번 방과 8번 방에서 아테네인의 보물창고를 장식하던 수많은 메토프 조각들을 관람하시게 될텐데요. 이번 챕터에서 설명해드린 이야기들을 떠올리시면서 작품을 감상하시면, 좀 더 작품의 의도와 숨을 뜻을 잘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