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도브리 덴!)

자, 투어의 시작점인 ‘말라스트라나 광장’으로 이동해 볼까요? 지하철역에서 광장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어요.
낭만 가득한 트램을 타거나, 프라하의 예쁜 돌길을 따라 걷는 방법이죠. 여러분의 취향껏 골라보세요!
먼저 트램을 타고 가실 분들! 역 출구로 나와서 바로 정면을 보시면 트램 정류장이 보일 거예요. 거기서 프라하 성이나 광장 방향으로 가는 트램을 타시면 되는데요. 딱 한 정거장이면 금방 도착하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짧은 순간이지만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프라하의 아기자기한 풍경을 즐기기에 아주 그만입니다.
이번엔 든든한 두 발로 걸어가실 분들! 프라하의 유서 깊은 돌길을 직접 밟으면서 중세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고 싶으다면 걸어가세요. 트램 정류장을 지나서 나오는 방향 그대로 골목을 향해 쭉 직진해 주세요. 그럼 오른쪽에 아주 거대하고 높은 벽이 길게 늘어져 있는 데 그게 바로 ‘발드슈테인 궁전’의 벽이랍니다. 이 벽을 따라 인도를 쭉 걷다 보면, 오래된 건물 아래로 신비로운 아치형 터널이 짠 하고 나타나요. 참고로 아치형 건물이 바로 나오진 않아요. 좀 걸어야해요. 이곳을 지나 실 때 마치 중세 시대로 쏙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 드실거예요. 안그럴수도 있고요. 이 터널을 지나 조금만 더 길을 따라 걸어가시면, 오른쪽에 멋진 성 니콜라스 성당이 보이면서 탁 트인 말라스트라나 광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걸어서 한 7분에서 10분 정도면 충분해요.
자, 다들 광장에 잘 도착하셨나요? 다음 트랙에서는 본격적인 투어에 앞서 ‘종교개혁’이 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얀 후스’는 누구인지 핵심만 쏙쏙 짚어드릴게요.
여기서 체코 이모가 드리는 꿀팁! 만약 트램을 타고 먼저 도착하셨다면, 광장 벤치에 편하게 앉아서 들으셔도 좋고,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 창가 자리에 앉아 여유롭게 감상하셔도 아주 좋습니다. 혹시 지금 걸어가는 중이시라면, 광장까지 걸어가면서 다음 트랙을 들으셔도 딱 맞을 거예요.
그럼 편안한 방법으로 다음 트랙을 재생해 주세요!

자, 이제 본격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여러분이 중세 유럽의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가장 무서운 게 뭐였을까요?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4세기 유럽은 흑사병이라는 끔찍한 재앙을 겪었거든요. 눈앞에서 가족들이 무참히 죽어 나가고 도시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 매일 목격했으니까요. 그러니 다들 밤마다 잠 못 이루며 이런 질문을 던진 거죠.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갈까?”, “우리 부모님은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하고요.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당시 교회는 사람들의 이 간절함과 불안함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돈을 내면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어', '지금 감옥 같은 연옥에 계신 너희 부모님을 위해 헌금을 많이 해야 천국에 갈 수 있어' 하면서 말이죠.
여러분도 역사 시간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그 유명한 ‘면죄부’가 바로 여기서 등장한 거예요.
처음엔 좋은 뜻이었을지 몰라도, 결국 돈과 권력이 얽히면서 교회가 거대한 사업을 벌인 셈이죠.
교회는 날로 부유해지는데, 우리 평범한 백성들의 삶은 피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어졌던 거예요.
게다가 더 황당한 건, 당시 교회가 내부적으로도 엉망진창이었다는 거예요.
서로 내가 진짜 교황이라며 싸우는 바람에, 교황이 동시에 여러 명이 존재하는 말도 안 되는 일까지 벌어졌거든요.
백성들이 보기에 교회가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곳이 아니라, 그저 밥그릇 싸움하는 정치 집단처럼 보였던 거죠. 완전히 실망해 버린 거예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간절히 새로운 목소리를 기다렸습니다.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성경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줄 사람, 라틴어가 아닌 자기들의 언어로 진리를 풀어줄 사람, 그리고 권력보다 양심을 택할 사람을 원했던 거죠.
바로 그때! 여기 프라하에 아주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학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바로, 우리가 오늘 내내 만나게 될 ‘얀 후스’입니다.
당시 최고의 엘리트 코스인 카를 대학교의 교수이자 신부님이었던 그가 과연 이 프라하에서 어떤 일을 벌였을까요?
그 대단한 얀 후스가 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다음 트랙에서 바로 만나볼게요!

체코에서는 종교를 떠나서 누구나 온 마음을 다해 존경하는 민족의 영웅이 있어요.
바로 오늘의 주인공 ‘얀 후스’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가 대단한 혁명가나 영웅이었던 건 아니에요.
후스는 원래 남부 보헤미아의 아주 작고 가난한 시골 마을인 ‘후시네츠’에서 태어났거든요.
근데 이 마을 이름이 참 재밌어요. 체코어로 ‘후사(Husa)’가 거위라는 뜻인데 ‘후시네츠’는 한국말로 ‘거위 마을’이라는 뜻이예요.
왕실에 진상할 거위를 많이 키우던 곳이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거위 마을에서 온 얀’이라고 불렀는데, 이게 줄어서 지금의 ‘얀 후스’가 된 거예요. 결국 이름이 그냥 ‘거위’가 된 거죠!
그래서 후스 본인도 종종 자신을 ‘시골 거위’라고 낮춰 부르곤 했는데요. 이 ‘거위’라는 이름이 훗날 그의 운명을 바꾸는 아주 소름 돋는 복선이 됩니다.
후스가 나중에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결국 불타 죽게 되는데, 화형대 위에서 이런 예언 같은 유언을 남겼거든요.
“지금 당신들은 연약한 거위 한 마리를 태우지만, 100년 뒤에는 당신들이 절대 태울 수 없는 아름다운 백조가 나타날 것이다!” 하고 말이죠.
그리고 정확히 100년 뒤에 유럽 종교개혁을 완성한 ‘마르틴 루터’가 등장했는데, 신기하게도 이 루터 가문의 문양이 바로 ‘백조’였답니다. 정말 소름 돋지 않나요?
이렇게 이름조차 평범했던 후스의 어린 시절은 참 가난하고 힘들었습니다. 그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서 프라하로 올라왔고, 카를대학교에 들어갔죠.
당시의 많은 청년들처럼 후스 역시 그저 밥 굶지 않고 성공하고 싶어서 안정적인 성직자의 길을 선택했던 거예요.
하지만 대학에서 성경을 정말 깊이 파고들면서 그의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기 시작합니다.
성경 속 아름다운 가르침과 내 눈앞에 보이는 썩어빠진 교회의 현실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죠.
당시 성경은 온통 라틴어로만 적혀 있었어요. 글을 아는 극소수의 특권층만 성경을 독점했고, 글을 모르는 대부분의 평범한 백성들은 성경을 구경조차 못 했던 거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부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교회는 성경 대신 돈과 권력을 좇으며 타락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이런 씁쓸한 모습을 보면서 후스는 점점 더 큰 의문을 품기 시작했답니다. ‘이건 진짜 종교가 아니다’ 하고 말이죠.
그러던 1402년, 후스는 ‘베들레헴 예배당’의 주임 신부이자 설교자로 임명되는데요, 이때부터 프라하에 엄청난 신드롬이 일어납니다.
당시 다른 성당들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라틴어로 중얼중얼 설교를 했는데, 후스는 달랐어요.
누구나 다 알아듣는 ‘체코어’로 당당하게 설교를 시작한 거죠!
평생 교회에 다녀도 무슨 말인지 몰랐던 시민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나라 언어로 생생하게 성경 이야기를 듣게 된 거예요.
후스의 설교는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습니다.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매일 수천 명의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교회의 높은 분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자신들이 짜놓은 기득권의 판을 뒤흔드는 후스가 너무나도 위험해 보였던 거죠.
협박과 압박이 쏟아졌지만, 후스는 끝내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면죄부를 파는 교회를 당당히 꾸짖었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어요.
그리고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이단 재판이 열리는 독일 콘스탄츠 공의회로 향하는 가장 위험하고도 위대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주위에서 다들 죽으러 가는 길이라며 말렸지만, 후스는 당당하게 걸어갔고, 결국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다가 불길 속에서 화형을 당하며 뜨거운 불꽃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자, 이제 체코 이모와 함께 발걸음을 옮겨볼까요?
우리가 잠시 후에 만나게 될 ‘카를교’는요, 종교개혁 이후 체코가 겪게 된 거대한 변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에요.
그럼 함께 프라하의 랜드마크, 카를교로 천천히 걸어가 보실게요!
말로스트란스카 광장에서 카를교까지는 걸어서 약 3분 거리입니다.
신호등을 건널때 자동차와 트램이 같이 다니는 복잡한 길이니 건널 때 주변을 잘 살펴주세요.
영상처럼 신호등을 지나 쭉 직진하시면 카를교 입구가 보이실 거예요.

여러분, 지금 카를교 앞에 잘 도착하셨나요? 지금 여러분 눈앞에 길게 뻗어 있는 이 아름다운 다리가 바로 그 유명한 카를교입니다. 프라하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죠.
자, 그럼 저와 함께 다리 위를 천천히 걸어가 보실까요?
다리 양옆으로 멋진 성인 조각상들이 쫙 늘어서 있는 게 보이시죠?
사실 이 조각상들은 다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있던 게 아니에요. 체코의 종교개혁이 처참하게 실패한 이후인 17~18세기에 세워진 것들입니다.
가톨릭 세력이 민중들의 마음을 어떻게든 다시 가톨릭으로 되돌리려고 일종의 종교적 상징물로 세운 거죠.
눈부시게 아름다운 예술품 이면에, 종교와 권력이 치열하게 격돌했던 역사의 상처가 숨어 있는 셈이에요.
걸을 때 왼쪽, 오른쪽을 보며 천천히 걸어가세요. 그러다 보면 우리가 오늘 꼭 만나게 되는 아주 특별한 성인 조각상이 보이실거예요.
만약 잘 모르시겠다면 화면을 통해 사진을 보세요.
그 조각상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 지루할 수 있는 돌다리에 숨겨진 아주 흥미롭고 귀여운 비밀 두 가지를 이모가 들려드릴게요.
첫 번째 비밀은 바로 '마법의 숫자 배열'인데요.
카를교는 1357년, 카를 4세라는 왕의 명령으로 지어졌어요. 근데 이 왕이 첫 돌을 놓은 날짜와 시간이 진짜 기가 막힙니다.
자, 머릿속으로 숫자를 한번 따라와 보세요. ‘1357년, 7월 9일, 새벽도 아니고 오후 딱 5시 31분’에 돌을 올렸거든요.
이 숫자들을 연도부터 분까지 순서대로 쭉 나열해 볼까요? 1, 3, 5, 7, 9, 7, 5, 3, 1! 어때요? 앞에서 읽으나 뒤에서 읽으나 똑같은 신기한 대칭 구조죠?
당시에 왕이 천문학자들을 총동원해서 ‘다리가 절대 무너지지 않는 명당 시간’을 기어코 찾아낸 거래요. 얼마나 간절했으며 이랬을까 싶죠?
두 번째 비밀은 더 귀여워요. 일명 '달걀과 치즈로 만든 다리'라는 전설입니다.
왕이 다리를 무조건 튼튼하게 지으라고 하니까, 기술자들이 반죽에 프라하의 와인과 날달걀을 막 섞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전국의 달걀이 프라하로 다 모였는데, '벨바리'라는 시골 마을 사람들이 달걀이 배송 중에 깨질까 봐 전부 '삶아서' 보내는 아주 귀여운 짓을 저지르고 말아요. 또 어떤 마을에서는 우유를 보내려다가 실수로 코티지 치즈까지 몽땅 섞어서 보냈대요. 완전 엉망진창이죠? 그런데 이 황당하고 특별한 레시피 덕분인지, 카를교는 6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끄떡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답니다.
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다리 중간쯤까지 오셨죠?
다음 트랙에서는 멋진 사진 스팟 장소와 머리 뒤에 별 다섯 개가 후광처럼 반짝이고 있고, 조각상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빛 부조가 있는 바로 그 조각상에 대해 말해줄게요.

사진에서처럼 앞에 조각상이 보이시나요? 이분이 ‘얀 네포무크’ 신부님이세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아주 흥미로운 역사적 비밀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체코 종교개혁의 중심지인 이곳에, 왜 가톨릭 신부님의 조각상이 이토록 영웅 대접을 받고 있을까?
사실 여기에는 가톨릭 세력의 큰 전략이 숨어 있거든요
아까 체코인들에게는 목숨 바쳐 종교개혁을 외친 위대한 영웅, ‘얀 후스’가 있었다고 말씀드렸죠?
가톨릭 세력은 체코인들의 마음속에서 이 개신교 영웅을 어떻게든 지워내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에 대적할 만한 가톨릭 영웅을 딱 찾아내는데, 신기하게도 이름이 똑같은 성인, 바로 이 ‘얀 네포무크’ 신부님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너희 얀 후스 못지않게 위대하고 신념 있는 성인이 있다!'라면서, 이 조각상을 다리 중심에 가장 먼저 보란 듯이 세운 거죠.
그렇다면 이 얀 네포무크 신부님은 대체 어떤 분이 었을까요? 전설에 따르면 신부님은 당시 체코 왕비의 고해성사를 담당하셨는데요.
의처증과 질투심이 엄청났던 왕이 신부님을 찾아와서 '왕비가 대체 무슨 비밀을 말했냐'라며 잔혹하게 고문을 한 거예요.
하지만 신부님은 '죽음이 닥쳐올지언정 하나님 앞에서의 비밀은 절대 말할 수 없다'라면서 끝까지 침묵을 지키셨습니다.
결국 분노한 왕에 의해, 바로 이 카를교 다리 아래 거친 강물로 던져져서 순교하게 되죠.
권력 대신 양심을 지킨 모습이 어딘가 우리가 배운 얀 후스와 참 많이 닮아있지 않나요?
그럼 이제 조각상 아래를 다시 한번 주목해 주세요.
사진으로 보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때가 타서 유난히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부조가 두 개 있을 거예요.
전설에 따르면, 이곳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언젠가 다시 프라하를 방문하게 되고, 간절한 소원 하나가 꼭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이 반짝반짝 빛나는거예요.
가톨릭의 전략으로 세워진 조각상일지언정, 신념을 지킨 성인의 마음은 종교를 넘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죠.
여러분도 잠시 이 황금빛 부조에 손을 얹고, 마음속 깊이 간직한 소원 하나를 빌어보세요. 체코 이모가 잠시 기다려 드릴게요.
(2~3초 쉬고 소원 비는 시간)
소원 예쁘게 잘 비셨나요? 자, 그럼 이제 사진을 찍어볼까요?
여기는 카를교에서도 손꼽히는 사진 스팟예요. 어디를 배경으로 찍어도 근사하게 나오거든요.
그러니 잠시 투어는 멈추시고 충분히 사진을 찍으신 후 다시 이동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진을 다 찍으셨다면 다시 카를교를 따라 앞으로 쭉 직진해서 다리가 끝나는 곳까지 걸어가도록 하겠어요.
다리 끝까지 쭉 직진하셨다면 사진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서 사진 속 장소가 나올때까지 직진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길 따라 앞으로 직진하시면 프라하의 숨은 찐 맛집 정보를 소개해드리도록 할께요.
만약 STORY OF PRAGUE MUSEUM이 닫혀 있다면 사진에 나와 있듯이 트램이 다니는 인도로 가셔도 괜찮아요.
그럼 다음 트랙에서 만나요!
지금 바로 투어를 경험해보고
첫 후기를 작성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