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프랑스의 공인 가이드 서안입니다. 지금부터 저와 함께 파리의 영혼을 상징하는 최고의 랜드마크 노트르담 대성당 탐험에 나서겠습니다. 2019년 안타까운 화재 후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5년 안에 복원해 보자고 약속한 후 거짓말처럼 우리 앞에 이전보다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죠. 사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샤르트르 대성당이나 독일의 켈른 대성당 등 노트르담 성당의 규모나 아름다움을 훨씬 능가하는 성당들은 많습니다. 하다못해 같은 시테섬의 생트샤펠 성당만 해도 노트르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압도하는 아름다움을 자랑하죠. 그런데 왜 노트르담 성당은 프랑스인들의 가슴속에, 아니 모든 세계인의 가슴속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장소로 남아 있을까요? 에펠탑보다 매년 2배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비밀을 함께 파헤쳐 보려고 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프라이빗 가이드가 되어 이 거대한 돌로 만든 책을 한 장씩 넘겨볼 겁니다. 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시선으로 더듬으면서 시대와 대화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실 수 있도록 안내해 드릴게요. 준비되셨나요? 그럼 시대를 초월한 감동 속으로 함께 걸어가 보겠습니다.
(여행전듣기) 예약 및 주의사항
이번에는 성당에 들어가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운영 시간과 규칙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먼저 노트르담 대성당은 연중 무휴로 문을 엽니다. 보통 평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7시 전후까지 개방하는데 요일이나 시기별로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니 방문 전 공식 웹사이트에서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인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내부의 남쪽 창으로 넘어가는 곳에 선물을 전시한 방이 있고 입장료가 있지만 여기까지 굳이 입장하실 필요는 없을 듯하고요. 하지만 입구에서 보안 검색을 거쳐야 합니다. 큰 여행, 가방이나 배낭, 당연히 칼이나 가위 같은 위험한 물건 주류나 에어로졸 스프레이는 반입이 금지되니 짐은 최대한 가볍게 하고 오세요. 그리고 요즘 필수품이죠. 셀카봉은 아쉽지만 성당 안에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너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경우 입장이 제한될 수 있으니 어깨가 노출된 옷을 입고 계시다면 가디건 같은 것을 준비하셔도 좋을 듯해요. 이곳은 지금도 미사가 열리는 살아있는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점 꼭 기억해 주세요. 남성분들은 실내에서 모자를 벗어주시고 너무 큰 소리로 떠들거나 휴대폰 통화는 삼가 주세요. 사진 촬영은 대부분 허용되지만 다른 사람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도록 플래시 사용은 절대 금물입니다. 요즘처럼 인파로 복잡할 경우에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고 오시면 긴 줄을 피할 수 있지만 이미 한 달 전부터 예약이 가득 차는 경우가 많으니 그냥 줄 서시면 되세요. 처음에는 이제 엄청난 줄에 겁을 집어먹다가도 워낙 성당 자체 규모가 엄청나고 관광객들이 생각보다 오래 머물지 않기 때문에 줄이 생각보다 빨리 준다는 점 알려드려요. 다음으로, 오시는 길과 화장실 등의 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여행전듣기) 오시는 길 및 화장실 안내
자 그럼 본격적인 탐험에 앞서 노트르담으로 가는 길부터 자세히 알아볼까요? 노트르담은 파리의 발상지인 시테섬 한가운데 있죠? 아마 많은 분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셨을 텐데요. 워낙 파리에서 가장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오는 방법이 다양합니다. 지하철을 이용하신다면 4호선 시떼(cite)역에서 내리시는 게 가장 가깝습니다. 1호선이나 11호선 hotel de ville역(파리시청역) 또는 15선 모베르 미띠알리 때 역에서 내려서 센 강변을 따라 잠시 걷는 것도 아주 낭만적이죠. 파리 시내와 외곽을 잇는 RER 급행 전철을 타셨다면 B선이나 C선 생미셀노트르담역(st-michel notre-dame)을 이용하시면 바로 코앞입니다. 버스 노선도 아주 많고 요즘 많이들 이용하시는 공공자전거 밸리브 정류장도 곳곳에 있답니다. 안타깝게도 성당 내부에는 일반 방문객을 위한 공용 화장실이 없습니다.
방문 전에 성당 서쪽 파사드 정문 왼편의 아르콜 거리에 있는 무료 공중화장실이나 광장의 유료 화장실 위치를 미리 파악해 두시면 급할 때는 도움이 될 듯합니다. 유료 화장실의 경우 이용료가 이유로나 하고 카드 이용은 안 되니 공중화장실을 이용하시거나 공중화장실의 줄이 너무 길 때는 근처의 카페에서 에스프로소 한 잔을 드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다음으로, 관람 순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행전듣기) 노트르담 성당의 여러 상징, 성당을 보는 세가지 팁
(여행전듣기)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와 규모
파리의 상징인 노트르담 성당의 돌바닥 아래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시간이 잠들어 있답니다. 빅토르 위고가 왜 그토록 이 성당을 지키려 했는지 알려면 먼저 이 땅이 품고 있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해요. 이야기는 무려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곳은 이미 신성한 장소로 프랑스 토착 인종인 켈트족의 토착신과 로마의 신들을 함께 모시는 신전이 있었다고 해요. 시간이 흘러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이 자리에는 성에티엔 대성당이라는 이름의 크고 오래된 교회가 수백 년 동안 파리의 신앙 중심지로 서 있었어요. 그러다 12세기에 당시 주교였던 모리스 또 실리가 성모님을 위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전을 짓겠다는 큰 포부를 품게 됩니다.
그렇게 낡은 성당들을 허물고 1163년부터 거의 이제 80년에 걸친 공사를 거친 후 완공되어 마침내 우리가 아는 노트르담의 위대한 역사가 시작된 거예요. 계획은 정말 대담했습니다. 성당의 전체 길이가 무려 128m나 되어 왠만한 축구장보다도 훨씬 더 길다는 뜻이죠. 성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이제 우리를 압도하는 저 천장의 높이만 해도 33m 아파트 10층 높이를 훌쩍 넘는 공간을 오직 돌만으로 쌓아 올린 거예요. 그리고 저 정면의 두 탑은 69m 높이까지 솟아 있죠. 이 거대한 공간에는 자그마치 9천 명의 신도를 한꺼번에 품을 수 있었답니다.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그야말로 신앙심이 빚어낸 거대한 기적이었습니다. 그렇게 600년간 파리의 심장으로 빛나던 노트르담에게 역사상 가장 끔찍한 시련이 닥칩니다.
바로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의 광풍이 몰아친 거죠. 당시 성당은 억압적인 왕과 교회의 상징으로 여겨져 분노한 군중의 첫 번째 공격 목표가 되었습니다. 파사드의 왕조각상들은 목이 잘려나갔고 성당의 종들은 녹여서 대포알을 만드는 데 쓰였습니다. 신성하던 공간은 이성의 신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나중에는 군대에 식량과 와인을 보관하는 창고로 버려지는 신세가 되었죠. 나폴레옹이 황제 대관식을 이곳에서 열기로 했을 때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폐허가 된 성당의 속살을 가리기 위해 그저 겉에다 화려한 휘장들을 덧대어 임시로 꾸몄을 뿐이니까요. 행사가 끝나자 노트르담은 또다시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갔습니다. 결국 19세기 초 노트르담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형편없이 낡은 데다가 아예 파리 지도에서 지워질 뻔한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였죠.
바로 그때 이 모든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왕도 장군도 아닌 30살의 젊은 소설가 바로 빅토르 위고였어요. 그는 이 위대한 유산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1831년 마침내 그의 소설 노트르담 드파리가 세상에 나옵니다. 이 소설에서 진짜 주인공은 우리가 아는 화지모도나 에스메랄다가 아니었어요.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파리를 지켜온 영혼을 가진 노트르담 대성당 그 자체였죠. 소설은 프랑스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소중한 보물을 버려두고 있었는지 깨닫고 부끄러워하기 시작했어요. 노트르담을 살려내라는 목소리가 전국적인 운동으로 번져나갔고 마침내 정부도 대대적인 복원을 약속하게 됩니다.
결국 한 사람의 열정과 이야기가 무너져 가던 돌덩이에 다시 숨을 불어넣고 구해냈고 사실 빅토르 위고 덕에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노트르담이 그가 남긴 유명한 문장인 문명이 잇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롤은 기억한다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시대를 품은 역사의 목격자로서 남아 있기 때문이죠. 독서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모든 것이 인공지능과 인스턴트 문명 속에서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이 시기에 빅토르 위고의 노트르담드 파리를 한번 읽어보시면서 잊혀진 것들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시는 기회로 삼는다면 어떨지 제안해 드립니다.
(여행전듣기) 노트르담의 곱추 이야기
앞서 대성당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투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혹시라도 시간이 없어 소설을 읽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이 아름다운 성당을 구해낸 이야기, 노트르담의 곱추 이야기를 해드릴까 해요. 이야기는 바보들의 축제라는 시끌벅적한 거리 축제에서 시작됩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신나게 놀고 마시던 날이었죠. 그 축제의 중심에 한 남자가 있었어요. 등이 굽고 한쪽 눈은 찌그러진 바로 이 대성당의 종지기 카지모도였죠. 사람들은 그의 흉측한 외모를 보며 손가락질하고 놀려댔어요. 바로 그때 무대 앞으로 아름다운 집시 댄서 에스메랄다가 다가와요. 그녀는 모두가 조롱하던 카지모도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줍니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이 작은 친절 하나가 카지모도의 세상에는 전부가 되었고 그의 마음속에 지울 수 없는 사랑과 헌신의 불씨를 지폈답니다.
하지만 이 예쁜 장면도 잠시 이야기는 곧 질투와 욕망으로 올록져요. 이성당의 높은 신부님인 프롤로가 에스메랄다를 보고는 해서는 안 될 욕망에 사로잡히고 말거든요. 이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었죠. 그는 에스메랄다가 사랑하던 멋쟁이 근위대장 페비스를 몰래 칼로 찌르고는 그 죄를 에스메랄다에게 홀라당 뒤집어 씌워버려요.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 재판은 엉망이었어요. 결국 그녀는 억울하게 마녀로 몰려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약한 자는 진실을 외칠 힘조차 없던 시대였죠. 에스메랄다가 형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바로 그 순간 카지모도가 밧줄을 타고 내려와 그녀를 번쩍 안아들고 성역이다 라고 외칩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중세시대에는 성당 안으로 피신하면 왕의 군대라도 함부로 체포할 수 없는 신성한 피난처라는 의미였어요.
덕분에 에스메랄다는 잠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죠. 하지만 이 마지막 희망마저 왕의 권력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병사들이 신성한 성당으로 쳐들어와 그녀를 다시 끌어내 광장에서 형을 집행하죠. 사랑하는 여인이 눈앞에서 죽는 모습을 종탑 위에서 지켜본 카지모도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는 이 모든 비극을 만들어 놓고도 비웃고 있던 프롤로를 붙잡아 저 높은 종탑 아래로 밀어 떨어뜨립니다. 모든 것이 끝난 뒤 그의 세상에는 깊은 슬픔만이 남았죠. 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각자 당시의 사회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카지모도는 겉모습 때문에 평생을 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에스메랄다는 집시라는 이유만으로 마녀사냥을 당한 사회적 약자를 이선적인 프롤로 신부와 겉만 번지르르한 페비스 대장은 당시 종교와 귀족사회의 썩은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얼굴들이었죠.
빅토르 위고는 이 성당을 무대 삼아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의 불공평함과 편견을 제대로 고발하고 싶었던 거예요. 물론 이건 소설에 불과하지만 작가는 노트람 대성당이 수백 년간 프랑스 사람들의 사랑과 질투, 희망과 절망 같은 온갖 감정들을 묵묵히 지켜본 살아있는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답니다. 파리 시민들의 빅토르 위고에 대한 엄청난 존경과 대성당에 대한 크나큰 사랑을 보여주는 이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