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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태남입니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스트리아는 아주 작은 나라입니다. 국토는 남한 면적의 85% 정도밖에 되지 않고 전체 인구도 850만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는 매력이 넘치는 아주 아름다운 나라이죠. 이러한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인구가 200만을 넘지 않는 아주 쾌적한 도시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빈은 라틴어와 이탈리아어 표기인 비엔나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비엔나이건 빈이건 도시명에서 느껴지는 어감처럼 빈은 무언가 달콤하고 세련되고 우아한 도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빈에서는 거리 곳곳에 세련되고 귀족적인 기품이 배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이곳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들이 거주하던 거대한 제국의 수도였죠.
또 이곳은 음악, 미술, 건축 등 다양한 예술과 문화의 용광로였습니다. 게다가 빈은 로마 제국 시대부터 지금까지 2천 년 동안 이어지는 장구한 역사가 중첩되어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빈은 수많은 이야기가 곳곳에 비어있는 도시인 것이죠. 자, 이 오디오 가이드는 23일 정도의 한정된 일정으로 빈이라는 도시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여행자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했습니다. 그래서 잘 알려진 빈의 명소 약 20개를 선정하여 그에 관련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 명소들은 세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시내 중심부에 몰려 있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서 모두 돌아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돌아보는 순서는 여러분들의 상황에 맞게 짤 수 있겠죠. 참고로 지명에 Markt, Platz, Straße, Gasse 등이 많이 보이는데요.
Markt는 시장이란 뜻으로 옛날 시장이었던 광장입니다. 그 중에는 물론 아직도 시장의 기능을 유지해오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Platz는 그냥 광장이고요. Straße는 길 또는 거리입니다. Gasse는 좁은길입니다.

빈은 2천 년 전 로마군이 도나우 강변에 세운 요새 Vindobona가 기원이 됩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기원 후 880년경에 이곳은 Wenia라고 불려지는데요. 이것이 나중에 빈이라는 도시명으로 굳어지게 됩니다. 12세기에 들어 이곳은 바벤베르크 가문이 통치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이곳은 바벤베르크 가문을 이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거지가 됩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는 거의 650년 동안 지속되었는데요. 전성기에는 유럽 대륙의 상당 부분을 지배했습니다. 사실 유럽의 어떠한 위대한 왕가도 그토록 오랫동안 광대한 지역에 큰 영향을 끼친 경우는 없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과 통치 시대의 빈은 16, 17세기에 들어 오스만 튀르크, 즉 터키의 침공으로 엄청난 위기를 맞았습니다. 게다가 17세기에는 페스트가 창궐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빈은 이러한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한 다음에는 번영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이에 따라 18세기의 빈과 빈 주변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세워졌습니다. 음악가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활동한 시기가 바로 그때였죠. 하지만 19세기 초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하는 바람에 빈은 다시 한번 큰 위기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 후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많은 세월이 흐른 1848년에 Franz Joseph I가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68년 동안 제국을 통치하면서 빈을 새롭게 개조했습니다.
이때 Ringstrasse라고 하는 순환도로가 건설되었는데요. 이 도로 주변에는 웅대하고 우아한 건물들이 많이 세워져 오늘날 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영원히 타오를 것 같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의 불길은 19세기 후반에 들어 서서히 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핀에서는 역사와 전통의 흐름에 반하는 새로운 불길이 미술, 건축, 음악, 철학, 정신분석학 등 문화 전반에 걸쳐 피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오스트리아가 1918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는 바람에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도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울러, 오스트리아는 바다가 없는 작은 나라로 축소되고 말았던 것이죠.
한편, 빈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시가지가 상당히 많이 파괴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전쟁이 끝난 후 빈의 명소들은 대부분 복구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간직한 이 도시의 심장부는 도심의 순환도로 링슈트라세가 감싸고 있는 지역인데요. 이 지역은 Innere Stadt라고 합니다. Innere Stadt에서도 가장 핵심을 이루는 곳은 슈테판 대성당입니다. 이 고딕 양식의 성당은 빈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죠. 자 그럼 빈에서 가장 유명한 길인 Kärntner Straße를 따라서 빈의 심장부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빈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인 Kärntner Straße는 뮌의 중심지인 제1지구의 중추신경과 같은 거리입니다. 이 거리의 기원은 로마 제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세에는 비엔나와 캐런튼 지방을 연결한다고 해서 이런 도로명이 붙어졌습니다. 캐런튼 지방은 베네티아로 향하는 관문으로 이탈리아 및 슬로베니아 국경과 맞닿아 있죠. 현재의 Kärntner Straße는 빈의 교통의 요지인 칼스플락스와 빈 시가지의 핵심인 슈테판 대광장으로 연결되는 약 800m 구간의 거리입니다. 이 구간에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이 있는데요. 이 오페라 극장 뒤에서 슈테판 광장까지 약 550m에 달하는 보행자 구간은 다양한 고급 매장과 카페들이 늘어서 있는 빈 최고의 번화가 중 하나입니다.
이 보행자 구간은 빈 국립오페라 극장 뒤에 있는 호텔 자흐의 동쪽 코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호텔은 자흐 토르테라는 케이크로 상당히 유명하죠. 이 거리를 따라 북쪽으로 스테판 대성당을 향해 걸어가다 보면은 ‘모스틀리 모차르트’라는 모차르트 관련 기념품을 파는 매장이 눈에 띕니다. 위는 모차르트가 생애 마지막 10년을 살았던 곳이기 때문에 이곳에는 그와 관련된 얘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만약 모차르트가 지금 살아있다면은 음악 저작권 외에도 자기 브랜드를 빌려주고 저런 매장에서도 얼마나 많은 부수입을 올릴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 역사상 저작권이란 개념은 Mozart가 죽은 지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도입되었으니 만약 그가 35살에 죽지 않고 프랑스에 가서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은 만년에 그래도 엄청난 부를 누릴 수 있었겠죠.
이 보행자 구간의 중간쯤 오른쪽에는 Steffl 백화점이 있는데요. 모차르트는 바로 이 건물 뒤쪽 좁은 길Rauhensteingasse 8번지에서 1791년 12월 5일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살던 아파트가 있던 건물은 1849년에 헐리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상업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피아렌트너 슈트라스와 슈테판 광장이 만나는 부분에는 왼쪽으로 또 다른 번화가인 그라벤이 연결이 됩니다. 그라벤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후 별도로 다루겠습니다. 슈테판 광장에는 고딕 양식의 슈테판 대성당이 하늘 높이 솟아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성전 중 하나로 손꼽히죠. 그런데 이 슈테판 대성당 앞에는 주변의 건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이질적인 현대 건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건물의 외벽을 전체적으로 보면 유리와 돌로 곡면으로 처리되어 스테판 광장과 그라벤을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외벽 밖으로 돌출된 원통 아랫부분에는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석재가 비대칭적으로 처리되어 전체적으로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하스하우스라고 불리는데요. 빈 태생의 유명한 포스트모더니즘 건축가 한 솔라이의 디자인에 따라 1985년에 착공, 1990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계획 단계부터 시민들과 언론으로부터 질타를 받았습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슈테판 대성당은 빈의 지리상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빈 시민들의 마음속에도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는 성전인데 바로 그 앞에 너무나 생뚱맞은 건물이 세워지는 것을 사람들은 눈 뜨고 보지 못했던 것이죠.
건축가 한 솔라이는 과거의 역사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 장소에 미래를 고대하며 현대적인 건물을 짓고자 하는 신념이 매우 강했기 때문에 시민들을 설득하며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이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당시 언론은 아니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 자리에 저런 건물을 짓다니 저 꼭대기에는 광장 바닥으로 다이빙이라도 하려고 저런 걸 올려놓았는가 라면서 빈정거렸습니다. 매장, 사무실, 레스토랑 카페 등이 들어선 상업 건축인데 주변의 역사적인 건축물들과는 너무나 심한 대비를 이루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부조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침을 튀겨가며 비난했던 것이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건물은 서서히 빈 중심가의 또 다른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하스하우스의 원통형 유리에 비치는 슈테판 대성당의 모습을 보면은 이 건물은 역사에 묶여 있던 차분한 분위기의 빈의 심장부에 현대라는 새로운 시간 개념을 강하게 불어넣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공인건축사이자 작가인 정태남은 건축 외에도 미술, 음악, 언어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다. 국내에서는 주요 기관과 기업에서 하는 강연과 주요 매체에 기고하는 많은 칼럼을 통하여 유럽 문화와 역사의 현장에서 축적한 ‘앎의 기쁨’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로마역사의 길을 걷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프라하-비엔나-브라티슬라바-부다페스트)』,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외에도 여러 권이 있으며, 특히 EBS의 세계테마기행 『이탈리아, 빛나는 시간을 찾아서』(1~4부)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