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중요한 종교 역사가 고스란히 반영된 세비야 대성당을 세비야 건축가와 함께 만나보세요!
목차
32 트랙1시간 59분
인사말
안녕하세요 세비야의 건축가 박성준입니다.
한국에서 건축 설계를 전공하고 설계사무소에서 일하며 다양한 점을 느낀 뒤 건축 디자인 외에도 역사, 도시, 시공, 구조, 설비, 등을 더욱더 깊게 공부하고 자 스페인 건축 대학으로의 유학을 결정했습니다.
2008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건축대학에 진학 하기 전 우연히 스페인어 어학 연수차 세비야에 왔다가 세비야와 안달루시아의 문화에 매료되어 이후 바르셀로나 건축대학에서의 2년 생활을 정리하고 세비야 건축대학에 제 입학해서 지금은 이렇게 세비야의 건축가가 되었습니다.
세계 이곳 저곳을 다니며 그곳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음식을 맛보고, 건축을 통해서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여행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지인들이 세비야 뿐만 아니라 그 외의 스페인 지역들을 여행 왔을 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능하면 함께 여러번 이고 여행을 다니면서 그곳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건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건 제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곳의 문화와 건축을 알려주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는 그 나라의 국보로 정해져 있는 종교 건축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UNESCO에 등재되어 세계인의 보물로 인정받고 있는 종교 건축물은 매우 드뭅니다.
그중에서도 세비야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중요한 종교 역사가 고스란히 반영된 세비야 대성당을 앞으로 설명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면 저와 함께 세비야 대성당으로의 여행을 시작해 보시지요.
다음 2번 챕터에서는 기독교 성당 건축의 변천사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 드리겠습니다.
세비야로 이동 중이나, 아니면 세비야 대성당 남쪽에 위치한 승리의 광장 Plaza del triunfo 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세비야의 온화한 기후를 즐기면서 들어주세요.
기독교 성당 건축 이야기
승리의 광장에서 들어주세요!
세비야 대성당은 어떻게 생겨났나?
줄 서서 들어주세요!
1. 콜럼버스의 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 Sepulcro de Cristóbal Colón - 콜럼버스는 왜 여기에 묻혀있을까? 입니다.
세비야 대성당 내부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이기도 한 이곳은 대성당 내부의 남쪽에 있는 왕의 문 Puerta del Principe 의 안쪽에 위치합니다.
이곳에서 우선 만난 이유는 앞으로의 세비야 대성당 내부에서의 원활한 이동과 가이드를 위해서 입니다.
잠시 이곳에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에 대해서 설명드리고, 이어서 대성당의 중심부인 대 예배당 la capilla mayor 로 이동하실겁니다.
대 제단에서의 설명 이후에는 북쪽면에 있는 예배당들 부터 시작해서, 서쪽, 남쪽 , 동쪽 이렇게 한바퀴를 쭈 욱 둘러보면서 그곳에 있는 주요 예배당들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세비야의 상징 적인 건축물인 히랄다 탑을 올라가서 세비야 도시의 전경을 한번 보시고 내려와, 마지막으로 오렌지 중정을 설명드리면서 세비야 대성당 내부의 가이드를 마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앞에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를 봐주세요.
네명의 왕들이 콜럼버스의 유골함을 보호하고 있는 거대한 관을 이고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왕들의 앞면을 보시면 성은 까스띠야 왕국, 사자는 레온 왕국, 세로 줄무늬는 아라곤 왕국, 그리고 쇠사슬은 나바라 왕국 이렇게 11세기 부터 당시 스페인을 통치하고 있었던 이슬람 왕국에 대한 국토회복 운동인 레꼰끼스따를 주도했던 네개의 주요 기독교 왕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크리스터퍼 콜럼버스의 무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서 설명드릴려고 합니다.
콜럼버스는 죽어서 항해 했던 거리가 살아서 항해 했던 거리보다 한 4배는 더 길다고 합니다.
1506년에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생을 마감한 뒤, 이후 그의 시신은 세비야의 까르뚜하와 까르모나를 거쳐 생전의 유언대로 1542년에 남미 도미니카 공화국의 산토 도밍고로 그의 시신의 일부가 옮겨지고, 그로부터 253년 뒤인 1795년에 프랑스가 도미니카 공화국을 점령하자 콜럼버스의 무덤은 쿠바의 하바나로 이장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 103년 뒤인 1898년에 미국 스페인 전쟁으로 인해서 쿠바가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하자 스페인 사람들은 콜럼버스의 유해가 스페인으로 옮겨지길 원하게되고, 마침내 1899년에 이곳 세비야 대성당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앞에 보고 계시는 묘는 1902년에 Arturo Melida라는 예술가가 만든 작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러한 여러번의 이장 과정에서 진짜 콜럼버스의 유해 논쟁이 시작된 겁니다.
특히나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스페인으로 유해가 옯겨진 후에 콜럼버스의 유골이 묻혀있던 성당에서 크리스토퍼 콜롬보 라고 적힌 유해 상자를 발견했고, 스페인이 가져간 것은 다른 사람의 유골이라고 주장을 한겁니다!
게다가 1900년도 초부터 관광지로서 도미니카 공화국의 콜럼버스의 묘가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더욱더 이주장이 예민해 지기 시작한 겁니다.
그래서 스페인 정부에서는 2004년 부터 그라나다 대학교를 포함한 다양한 기관에 요청해서 세비야 대성당의 200 그람 밖에 남지 않은 콜럼버스 유골의 DNA 감식을 실시하게 되었고, 콜럼버스의 아들과 콜럼버스의 형의 DNA 뿐만아니라 당시 남겨졌었던 콜럼버스의 의료 기록까지 대조를 한결과!!
지금까지 DNA 감식을 받은 장소중에선 앞에 보고 계시는 세비야 대성당의 콜럼버스의 묘의 유골만 진짜라고 2006년에 밝혀집니다.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산토 도밍고에 DNA감식 요청을 하고 있으나, 산토 도밍고에서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며, 계속해서 유명한 관광지로 알리고 있습니다.
이곳 스페인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과학자들의 생각은 아마도 산토 도밍고의 콜럼버스의 유해도 진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토 도밍고가 DNA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이곳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유일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로 인정될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이어서 세비야 대성당의 중심부인 대 예배당을 설명 드릴텐데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를 정면에서 바라본 상태로 뒤로 돌아서 곧바로 이동하시면 대 예배당 la Capilla Mayor 로 가실 수 있습니다.
첨부된 지도를 확인하면서 이동해주시고, 그곳에서 5번 챕터 대 예배당 la Capilla Mayor 를 들어주세요.
저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2. 대 예배당
대 예배당 la Capilla Mayor 입니다.
지금 서 계시는 곳이 세비야 대성당의 라틴 십자가형 평면의 중심부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장소인 대 예배당 la capilla mayor 입니다.
여기서 37 미터 높이의 천장을 한번 올려다 보시면 이 장소의 중요성에 걸맞게 고딕양식의 특징인 여러 가닥의 볼트 구조를 이용해서 다른 부분의 천장 보다도 훨씬 화려하게 장식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앞쪽의 동쪽을 향하고 있는 르네상스 양식의 황금색 철 격자창 너머의 대 제단을 보시면, 역시나 다른 예배당 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이 28 미터, 폭 18 미터인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번쩍번쩍 빛이나는 황금 제단 벽 장식을 보실 수 있습니다.
1482년 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82년 뒤인 1564년에 완성되었고 가장 최근인 2014년에 대대적인 복원 작업이 있었던 황금 벽 장식은 나무에 황금 박을 입혀서 재작되었으며, 성서의 주요 내용들을 표현하고 있고, 마치 성서가 활짝 펴져있게 보여서 황금의 성서 la Biblia Dorada 라고도 부릅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와는 달리 중세 시기의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성서의 주된 내용들을 표현하는 제단벽 장식을 많이 제작 했었는데요, 그 이유는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 인들이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여서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인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에 보시는 것과 같은 조각 작품이나 그림을 이용해서 성서의 내용을 교육시켰다고 합니다.
이러한 교육의 목적과 예술적인 면이 합쳐져서 기독교가 더욱 쉽고 빨리 서북유럽인들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제작된 총 45개의 부조 작품에는 200개 이상의 인물상 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높은 곳에 위치한 인물상일 수록 점점 더 크게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원근법을 고려해서 제작되었기 때문이며, 아래쪽에 위치한 인물상 부터 가장 윗쪽에 위치한 인물상까지 전체적으로 같은 비율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황금 벽 장식의 가운데 아래쪽을 보시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13세기에 고딕 양식으로 나무와 은박으로 제작된 저 성모 마리아 상은 원래는 세비야 레알 알카사르 내부의 알폰소 10세 왕의 예배당에 있었던 것이며, 13세기에 있었던 성모 마리아 탄생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알폰소 10세 왕이 잠시 빌려줬다가 가지고 간 것을 당시의 기독교 신자들이 교회에 기부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결국엔 그 요구를 수락해서 그 이후부터는 세비야 대성당의 대 예배당에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대 예배당의 반대편에 있는 성가대석 el coro 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대 예배당을 바라본 상태에서 뒤로 돌아 성가대석 앞으로 이동해 6번 챕터 성가대석 el Coro 를 들어주세요.
3. 성가대석
성가대석 el Coro 입니다.
세비야 대성당의 중심부에서 이전 챕터에서 보신 대 예배당과 함께 가장 상징적이고 중요한 장소 입니다.
전체적으로 직사가형의 평면을 가지고 있고, 삼면이 돌을 가공해서 만든 벽으로 둘러싸여있으며, 나머지 한면은 앞에 보이시는 것과 같이 1523년에 완성된 르네상스 양식의 철 격자창으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이 철 격자창 사이로 15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완성된 전체적으로 두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는 성가대석을 보실 수 있는데요, 일층에 50석 이층에 한개의 대주교석을 포함해 67석 이렇게 총 117석이 자리잡고 있으며, 일층 성가대석의 등받침에는 히랄다 탑이 새겨져 있으고, 이층 성가대석의 등받침에는 무데하르 양식의 기하학적인 문양이 여러 종류의 나무 재료를 사용한 상감 기법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성가대석의 중앙을 보시면 르네상스 양식으로 완성된 성서대를 보실 수 있는데요, 1557년에 건축가 Hernán Ruiz 가 설계한 것입니다.
1888년에 대성당의 지붕이 무너지는 큰 사고가 있었는데요, 이곳에 있는 성가대석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이후에 당시 최고의 조각가들을 통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습니다.
정면을 바라보시고 대각선 위쪽으로 살짝 올려다 저 먼 곳을 보시면, 대성당의 서쪽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장미창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어서 성가대석의 양 옆의 위쪽을 올려다 보시면, 화려한 바로크 양식의 목공예로 마감된 파이프 오르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전에 18세기에 만들어진 다른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으나 역시나 1888년에 있었던 대성당 지붕 붕괴 사고로 인해서 이전의 파이프 오르간이 많이 손상되었고, 1901년에 지금 보고 계시는 총 4개의 건반과 한개의 페달, 그리고 7000개 이상의 파이프로 이루어진 새로운 파이프 오르간으로 교체한 것입니다.
이어서 지금 보고계시는 성가대석의 뒤쪽면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첨부된 지도를 확인하면서 그쪽으로 이동해 7번 챕터 성가대석의 뒷면 el trascoro 를 들어주세요.